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천 박사 역 배우 강동원.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박찬욱 감독은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을 본 후 이렇게 말했다.
"강동원 배우가 코믹한 대사를 할 때 예전보다 능청스러워진 것 같다." 박 감독의 말처럼 '천박사' 속 강동원은 어딘지 영화 '전우치'(감독 최동훈) 속 전우치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때보다 한층 더 능청스러워졌다. 삔죽삔죽 느물거리는 것 같다가도 귀신을 관통하는 무기 칠성검을 휘두를 때의 액션은 유려하고 시원시원하다. 한마디로 오랜만에 강동원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맞춤옷을 입고 나타난 셈이다.
화려한 언변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겸비한 모습, 막강한 상대와 맞붙는 위기 속에서도 여유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 가짜 퇴마를 하는 와중에도 설경의 비밀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 등 다양한 천 박사의 모습을 리듬감 있게 오가는 강동원의 모습은 왜 그가 천 박사여야 했는지를 입증한다.
강동원이 영화 안에서 뛰어놀 수 있었던 데는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천박사'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천 박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 '현대판 전우치' 천 박사의 시작
강동원이 '천박사'를 만나게 된 건 류승완 감독 덕분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임필성 감독이 있었다. 임 감독으로부터 류승완 감독을 소개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류 감독이 강동원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그게 바로 '천박사'다.
시나리오를 읽은 후 강동원은 "시나리오는 전체적으로 호러를 가장한 액션이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류 감독님에게 연락해서 '이게 무슨 호러냐, 액션이지' 그랬더니 '맞다'고 하셨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만화란 만화는 다 읽고 자란지라 만화적인 걸 좋아하는 그의 성정도 '천박사'를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그는 "(천 박사는) 내가 되게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능글맞으면서도 아픔이 있고, 보이는 것과 내면이 다른 캐릭터였다"며 "'전우치'와 비슷한 느낌도 있어서 '현대판 전우치'라는 생각도 들고, '검사외전'의 느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둘 중간쯤에서 캐릭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최대한 비슷하지 않고 새롭게 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의형제'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등 유독 신인 감독과 작업을 많이 해 온 강동원은 이번 '천박사'에서도 신예 김성식 감독의 손을 잡았다. 강동원은 "그냥 시나리오를 보고 '신선하고 재밌는데?'라고 하는 걸 보면 신인 감독일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또 신인 감독이구나, 내 운명인가보다 했다"며 웃었다.
그는 "김성식 감독님은 원래도 '에이스 조감독'으로 알려졌던 분"이라며 김성식 감독과의 재밌는 인연을 들려줬다.
"알고 봤더니 '화이' 현장에서 본 적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화이' 현장에 놀러 갔을 때 자기한테 한마디 했었대요. '여기는 스크립터가 남자네?' 보통 여성분이 많아서 그랬는데, 그때 봤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웃음) 강동원은 그러면서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작품에는 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며 "조감독 생활을 한 분은 현장 진행이 빠르다. 뭐가 되고 안 되고를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되게 편했다"고 말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천 박사와 '천박사' 위한 강동원의 아이디어
오컬트를 가장한 '액션'이라는 말처럼 '천박사'에는 천 박사의 다양한 액션 신이 많이 나온다.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영력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허준호)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인물로 빙의되어 나타날지 짐작할 수 없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해 오는 인물들에게 대항하는 천 박사의 액션 역시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주 무기인 칠성검을 든 천 박사는 빠른 속도감을 바탕으로 시원시원한 액션을 선보인다. 강동원은 검술은 물론 와이어 액션 등 대부분의 액션 신을 직접 소화했다.
그는 "천 박사의 액션 콘셉트 자체는 칼이 힘을 빌려준다는 정도다. 칼의 힘을 받고, 칼의 힘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액션이 되고 없을 때는 두들겨 맞는다"며 "이번 영화의 액션은 내가 많이 맞으면 맞을수록 관객들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거의 다 내가 했다. 날아가서 지붕에 부딪히고 떨어지는 것도 다 내가 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가짜 퇴마사긴 해도 역할이 역할인지라 무당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천 박사에 입혀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영화 초반 가짜 굿을 하는 장면에서 과장된 듯 보이는 천 박사의 행동은 모두 그의 아이디어다.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현장에서도 실제 든든한 선배였던 황 사장 역 김종수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강동원은 "종수 선배님이 북을 치는 건 원래 엔딩에만 있었는데, 감독님에게 내가 사당에 들어갔을 때도 치는 걸로 하자고 제안했다"며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것 중 제일 무거운 북을 선배님이 계속 들고 뛰어다니시는데 안 치니까 한 번 더 치자고 했다. 감독님도 좋다고 하셔서 들어간 장면"이라고 알려줬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천 박사 역 배우 강동원. CJ ENM 제공
벚꽃 휘날리고 후광 비치는 '강동원 효과'
천 박사의 주 무기가 칠성검이라면, 강동원의 주 무기는 '외모'다. 얼마 전 출연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도 언급됐지만 '강동원 효과'라는 게 있다. 강동원을 비롯한 하정우에게도 벚꽃이 날렸지만 왜 강동원에게만 벚꽃을 뿌려줬냐는 이야기('군도: 민란의 시대')부터 강동원 뒤로 후광이 비쳤다('검은 사제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처럼 매 작품 외모가 조명되는 만큼 '천박사'에서도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강동원은 빼지 않고 솔직하게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
"그 이야기('강동원 효과')가 나왔을 때, 이를테면, 벚꽃이 날렸다는 장면에 관해 윤종빈 감독님에게 물어봤더니 감독님이 진짜로 정색하면서 '제가 미친놈이에요?' 그랬어요. '검은 사제들' 때는 아예 기억도 안 나서 영화 캡처된 걸 봤는데, 저도 조명 쳤나 했더니 없었다고 해서….(웃음) 제 의도로 뭘 한 적은 없어요. 이번에는 천 박사가 그렇게 멋있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글쎄요. 그런데 모르죠. 개봉하고 또 뭐가 얻어걸릴지…." (웃음)
강동원이 '천박사'를 선택한 건 영화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노린 게 아니다. 오로지 시나리오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배우로서 연기하는 게 재밌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기하는 게 그에겐 가장 행복한 일이다.
강동원은 "너무 재밌다. 일이 너무 재밌다. 갈수록 더 재밌어서,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내 직업 자체가 너무 좋다"며 "데뷔했을 때도 좋긴 했는데 그땐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고 너무 즐겁다. 달리 설명할 게 없고, 너무 좋아서 이 마음은 앞으로도 안 꺾일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CJ ENM 제공마지막으로 그는 예비 관객들을 위해 '천박사'를 왜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우선 CG? 전 CG를 흥미롭게 봤어요. 극장에서 볼만한 거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액션이 많은 영화니까 아무래도 극장에서 보면 더 재밌겠죠? 조명의 다양한 활용과 서라운드 사운드(시그널 과정과 스피커의 위치를 거쳐 다양한 방향으로 소리의 환청을 만드는 소리 시스템) 등 색다른 시도들이 많기에 극장에서 보시면 신나는 영화, 스릴 있는 영화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