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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영웅 홍범도, 대한민국이 배척하다[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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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은 봉오동 전투를 보도하며 홍범도 장군이 지휘한 독립군 부대를 '아군'으로 명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따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합니다. 임정이 '아군'으로 부른 독립군은 '대한민국 군대'로 해석됩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2021년 광복절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여러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홍범도함' 명칭변경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타임라인에선 봉오동 전투 전개 과정부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론 보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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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06-22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봉오동 전투' 보도

1920년 6월 7일에 일어난 봉오동 전투는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로 임시정부는 대승리를 쟁취한 우리 독립군을 '아군'으로 불렀다. 대한민국 군대의 승리라는 것이다. 홍범도와 최진동이 지휘한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거두자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85호에서 봉오동 전투를 조명했다. 신문은 "6월 7일 상오 7시에 북간도의 주둔한 우리 군 700명이 북로사령소재지인 왕청현(汪淸縣) 봉오동을 향하여 행군할 새 불의에 동 지점을 향하는 적군 300명을 발견한지라. 동군을 지휘하는 홍범도, 최명록 양 장군은 직접 적을 공격하여 급 사격으로 적의 120여의 사상자를 출(나오게)케 했다"고 보도했다. 임정은 해당 보도에서도 이들을 '아군'으로 불렀다. 같은해 12월 25일 임정 군무부는 독립신문에 북간도 독립군 승전보를 발표하기도 했다. 봉오동전투의 시작인 삼둔자전투와 봉오동에서의 전투 전개, 청산리 일대 독립전쟁에 대해 전반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신문에는 "연대장 홍범도는 2개 중대를 인솔하고 서산 중북단에 점위했다", "적군의 사망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자 100여 명이요, 아군의 사망 장교 1인 병원 3인, 중상자 2인" 등이 기록돼 있다. 자료=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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