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49재이자 '공교육 정상화의 날'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희영 기자"예전에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우리나라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 그 마음만으로는 교사로서 버티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교사가 정말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데 함께 하고 싶습니다"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49재를 맞은 4일, 서울교육대학교(서울교대) 총학생회는 예정됐던 대학 축제를 취소하는 대신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고인의 49재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날 서울교대 외에도 전주교대·춘천교대·공주교대 등 전국 곳곳의 교육대학들이 추모 물결에 동참했다.
촛불문화제에는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검은 옷을 입은 서울교대 재학생과 교수, 현장 교사, 시민 등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해 오후 7시 무렵 미리 마련된 500여개 좌석이 가득 찼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서울교대 1학년 김길현(20)씨는 "(집회에 나선 교사들이) 사적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학생들과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서 교사들을 지키겠다는 것"이라며 현직 교사들이 이날 진행한 '공교육 정상화의 날'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행사 시작에 앞서 서울교대 임채성 총장은 "한껏 즐거워야 할 축제 기간인데 추도 기간으로 정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결정을 한 여러분, 잘하셨다"며 격려했다.
단상에 오른 서울교대 초등교육과 3학년 박준휘씨는 "예비교사로서 선배 교사의 안타까운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았다"며 "실제 현장에 계신 선생님이 겪은 학부모의 무차별적 폭언,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권 침해 실태에 공감하며 교사 인권 실태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런 현실이 예비 교사로서 감내할 미래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며 "부디 저희 예비 교사 혹은 교사들이 아이들과 희망찬 꿈을 꿀 수 있게 해달라. 교사와 학생의 인권이 함께 존중받는 사회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싶다"고 밝혔다.
서이초 교사 49재이자 '공교육 정상화의 날'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무너진 교권 저희가 힘써 세우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겹겹이 붙어있었다. 박희영 기자자신을 서울의 한 초등학교 9년 차 교사라고 소개한 한모(31)씨는 최근 현직 교사들이 연이어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 "특정한 선생님만의 일이 아닌 한국 모든 선생님의 일이라는 것에 동감하며, 49재인 선생님을 잘 보내드리기 위해 왔다"며 "49일이 지났지만 크게 변한 게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낀 선생님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고, (교사들의 처우가)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하시는 분들은 계속 나올 것"이라며 울음을 삼켰다.
동료 교사들과 함께 온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 김모씨는 "(숨진 교사들이) 겪었던 일을 어떤 강도로 느꼈을지 모르지만 사실 비슷한 경험을 모든 교사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겪었을 억울함, 답답함, 그리고 왠지 모를 압박감이 공감돼 힘들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에서 함께 불을 밝힌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이인재 교수는 "현장에서 고생하는 교사들이 결국은 우리 제자들"이라며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인해 교사들이 오죽했으면 극단적 선택을 했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교육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고, 교사가 본연의 업무로서 가르치는 행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친구와 함께 맨 뒷줄에 앉아 있던 시민 박미자(76)씨는 "나도 자녀를 갖고 있는데, (숨진 교사도) 학생을 가르치지만 우리한테는 자녀 같다"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슬퍼서 이 자리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교육부는 안전한 교육환경 요구하는 교사 탄압 중단하라", "교육부와 국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개정에 앞장서라", "힘듦을 교사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교육 현장 바꿔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문화제를 이어갔다.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추모 공간. 서울교대 총학생회에서는 오는 7일까지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49재 학내 추모 주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박희영 기자서울교대 총학생회에서는 오는 7일까지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49재 학내 추모 주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앞서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자발적 추모 모임인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의 추모 집회가 열렸다.
추모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현장에 모인 4만명(주최 측 추산)은 △서이초 교사 사망 진상규명 △교원보호 법안 발의 공동안 의결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환경 조성 등을 요구했다.
또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교권보호합의안'의 조속한 의결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는 서이초 교사를 포함해 서울과 경기, 전북 군산의 교사 3명이 잇달아 숨지면서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공교육 멈춤의 날' 공동행동의 하나로 마련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임시휴업한 학교가 38곳이다. 오후 1시 기준 37곳에서 서울 초등학교 1곳이 추가됐다.
당초 이날 임시휴업에는 더 많은 학교가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교육부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을 예고하자 많은 교사는 연가·병가·재량휴업 등 '우회 파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부산 북구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한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교육 멈춤의 날' 지지 성명에는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 2만 343명이 참여했다. 학부모는 지지성명문을 통해 "교육부는 9월 4일과 관련해 교사들의 의지를 불법 집단행동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교사들의 손발을 묶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