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김남국 의원 자리가 비어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수십억 코인(가상자산) 투자' 논란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에 가상자산을 포함시키는 법제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5년 전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국회 소위 단계에서 무산됐던 사항이 김 의원 사태를 맞아 급물살을 타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후폭풍에 대한 고려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해외 거래소나 USB 같은 실물 지갑을 쓸 경우 쉽게 은닉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재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는 국회의원 당선인의 재산에 가상자산도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회의원의 '사적 이해관계 등록' 대상에 가상자산도 포함해 이해충돌을 방지하자는 것이 골자다.
또 정개특위는 개정안에 특례조항을 신설, 21대 현역 국회의원들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과 변동 내역을 다음 달 말까지 윤리심사자문위에 등록하도록 했다. 윤리심사자문위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이해충돌 여부를 검토한 뒤 7월 말까지 해당 의원과 소속 교섭단체 원내대표에게 검토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정개특위 제1법안심사소위원장인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금이나 주식은 직계존비속을 합산해 1천만원 이상만 등록하게 돼 있는데, 가상자산은 등락 폭이 커 단돈 1원이라도 전부 신고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위원회 또한 이날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열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재산 신고 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금껏 현행법에서는 1천만원 이상의 현금·증권·채권 등을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에 관한 별도 조항은 없었다.
여야는 오는 24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심사, 의결할 예정이다. 이후 공직자 윤리법과 함께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쳐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할 방침이다. 여야가 별다른 이견이 없는 사항이라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과 관련해 검찰이 15일 가상화폐 거래소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이로써 공직자 재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이 5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게 됐다. 앞서 2018년 제20대 국회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공직자 등록 대상 재산 범위에 가상자산을 포함하자는 취지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가상자산 관련 정책 및 법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통과되지 못한 바 있다.
당시 행안위는 "입법 타당성이 인정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아직 암호화폐(가상자산) 관련 법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었다. 여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가상자산을 주식 등 다른 금융자산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였다.
문제는 여전히 가상자산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의원 사태로 인해 관련 법안이 일부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가상자산이 주식·부동산과 같은 '재산'으로 취급될 경우, 그 여파가 정치권을 넘어 여러 곳에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인 자체에 과도한 변동성이 있는 데다가, '투기 수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안정적인 자산 역할을 수행하기엔 무리라는 의견이 있다. 여전히 일부 학계와 업계 등에서는 코인의 자산 인정 여부를 두고 찬반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국회의원 재산 신고할 때 가상자산을 써내라, 이 얘기는 곧 재산으로 본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거기에 세금을 메겨야 하고, 세금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회사가 이걸 보유하고 있을 때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만들어 져야 한다. 후속 입법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가상자산을)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급한 불을 꺼야 하니까 일단 재산 등록할 때부터 포함하자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더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졸속으로 처리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공직자 재산 공개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법안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지려면 익명성·은닉성 등 코인의 특징을 고려한 구체적인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주식·부동산 등과는 달리 숨기려고 마음 먹으면 충분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의 경우 재산공개 기간에 해외 거래소로 잠시 빼돌리거나, USB와 같은 실물 지갑으로 거래할 경우 추적이 불가능하다. 코인을 현금으로 구입하지 않고 '에어 드롭'이나 P2P(개인 간 거래) 등으로 얻을 경우에도 추적이 어렵다.
실제 국회 사무처가 올해 '재산 변동' 신고 과정에서 가상자산을 기재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를 기재한 국회의원은 0명이었다.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상자산 보유·거래 내역을 신고한 공직자 역시 단 2명 뿐이었다.
행안위 법안소위위원장인 민주당 김교흥 의원은 "가상자산은 전액 등록하고 가액 산정 방법은 등락폭이 있어서 거래 방식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하도록 했다"며 "프로그램을 짜고 해야해서 공포 후 시행일을 6개월로 했다. 12월 초쯤 시행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거래소가 해외에 있거나 개인간 거래는 밝히기 어렵다. 지금도 현물은 본인이 신고 안하면 밝히기 어렵다.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거래소를 통해서 하는 건 다 밝힐 수 있다. 거래소가 크게 5개 있는데, 다 공유돼서 나온다. 보유 거래 정보를 가상자산 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넣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