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8일 오전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돈봉투 살포의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돈봉투 살포의혹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검찰이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국회의원 10여명 등을 포함해 총 9400만원을 뿌린 정황을 잡고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돈봉투 전달에 관여한 송영길 캠프 관계자는 물론, 돈을 받은 민주당 의원 다수가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법원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고작' 300만원의 돈봉투가 전달된 사건에서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며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2월 14일 당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전당대회 유감'이라는 제목의 한 언론 칼럼에서 "어느 당이든 당내 선거에서는 아직 돈 봉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한번은 전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필자에게 봉투가 배달됐다. 상당한 돈이 담겨있었다"면서 "필자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소신에 따라 봉투를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의 전당대회 돈봉투 '폭로'는 처음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듬해 1월 초 한 방송사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돈봉투 사건의 진위 여부를 묻고, 고 의원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며 파문이 일었다.
한나라당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1월 8일 고 의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 47일 만에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수석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2008년 전당대회 직전 박 의장이 1억9천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고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1억8700만원의 용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2011년 12월 15일 당시 고승덕 의원이 한 언론사 칼럼에서 이를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서울경제신문 캡처현직 국회의장으로는 최초로 재판에 넘겨진 박 의장은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다 정식 공판에 들어가자 입장을 바꿨다. 박 의장은 당시 혐의를 인정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변호인들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기소 넉 달 만인 같은해 6월 25일 1심 판결이 선고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는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박 의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수석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대의원들의 지지후보자 결정 및 투표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그 자신도 선거인인 당원협의회 위원장에게 돈을 지급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위법성 및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범행은 대의제 민주주의 및 정당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피고인들과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2심에서 서울고법 형사2부는 6개월 만인 같은해 12월 27일 피고인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며 같은 형을 선고했다. 박 의장 측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금품 제공행위가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정당의 대표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후보자의 지역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에 대한 금품제공행위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용지원의 측면이 일부 있었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은 당내 경선이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금권의 영향력도 배제한 채 공정한 선거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당협 위원장에게 돈을 교부한 범행은 정당제 민주주의 및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2년 1월 25일 오후 한나라당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휩싸인 박희태 국회의장이 국회 본관 국회의장실에서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황진환 기자재판부는 특히 "정당법의 '당대표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 규정은 정당의 대표자 선출과 관련해 금권의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궁극적으로 공명정대한 선거를 보장하고, 금권선거운동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명확히 했다"고 지적했다.
정당법 50조는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특정인의 선출을 위해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거나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런 일을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무겁게 처벌한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이후 15년 만에 민주당 전당대회 불법 금품수수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금품을 공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송영길 캠프 관계자 9명과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국회의원 10여명 등 민주당 관계자 수십명에게 이 조항을 의율하고 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박 전 의장 판결을 언급하며 "300만원 최소 (국회의원) 10명, 50만원 최소 (선거관계자) 수십명이라고 하면 최소한 집행유예 2년보다 훨씬 더 세지 않겠냐"고 우려하기도 했다.
검찰은 자금을 조달하거나 금품 전달에 관여한 캠프 관계자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수수자들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 의원 다수가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