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 당시 가수 현미의 모습"100살 되도록 노래하자고 했는데 그 약속도 안 지키고 떠나셨어요…"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인과의 일화를 전하며 울컥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와 통화 직전에도 계속 '통화 중'이었던 이 회장의 통화 상대는 고(故) 현미의 유족이었다. 장례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전화 중이었다고 한다.
현미는 대한가수협회에서 준비한 공연에 섭외돼 오는 13일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이 회장은 "그 자리에 후배님들이 추모식 개념으로 노래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2월에 열린 협회 총회에서 현미는 공로상을 받았다. 협회를 빛낸 회원에게 주는 상이다. 이 회장은 "2월 24일 총회 때 오셔서 공로상도 받으시고 (협회가) 공로 상금이랄까 조금 드렸는데 굉장히 기뻐하셨다"라며 "평소 협회에도 여러 번 오시고 방송 촬영도 협회에서 종종 할 만큼 협회를 사랑해 주셨다. 그동안 이런 게 없었다고, 차 한잔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있어서 제게 너무 고맙다고도 하셨다"라고 전했다.
"선배님의 무대에 대한 열정은 후배들이 본받아야 한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이 회장은 현미가 사망 전날에도 지방 공연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회장은 "돌아가시기 전날 김천에서 공연하고 오셨다. 여러 곡 신나게 부르고 오셔서 (지인에게) 피곤하다는 말씀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지인이 다음 날 아침에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가보니까 돌아가셨다는 거다. 전날까진 건강하셨는데…"라고 말했다.
현미가 생전 형편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 회장은 "많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생활고에 시달리셨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믿으셨다, 너무 착하셔서. 가수들에게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 회장은 "선배님은 선배님 노래처럼 수많은 별 중에 최고 큰 별이다. 하늘나라 가셔도 그 별의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노래처럼 사시면 된다"라고 밝혔다.
현미가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 당시 손녀에게 뽀뽀를 받고 있다. 올해 1월 아리랑TV에서 방송한 '더 K-레전드: 가수 현미의 쉬즈 스틸 싱잉' 제작에 참여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도 현미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임 평론가는 "현미씨 특집을 해서 제가 평론가로 멘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시고 감사하다고 직접 전화를 주셨다. '젊은이가 어떻게 미8군 당시를 그렇게 잘 알고 해석하냐'고, 너무 고맙고 꼭 보고 식사 대접하겠다고 연락하셨는데 결국 못 뵀다.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부고 소식 듣고 놀랐다"라고 전했다.
가수 김완선은 5일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사진을 올린 후 "누구에게나 늘 따뜻한 미소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친이모 같은 선배님. 부디 평안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김수찬도 본인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사진을 게시한 후 "항상 '우리 예쁜 수찬이 예쁜 수찬이' 하셨던 현미 쌤. '무대 오르내리실 때 잡아주는 거, 밥 챙겨주는 거 수찬이밖에 없다'며 항상 고맙다시던 현미 쌤. 제대하고 꼭 다시 뵙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꼭 더 행복하세요 쌤"라고 애도했다.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실향민 1세대 가수'다. 1962년 발표한 '밤안개'로 큰 사랑을 받았고 작곡가 이봉조와 함께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등 여러 히트곡을 냈다. 한국에 스탠더드 팝을 전파한 당대 최고의 스타로 평가받는다.
현미가 사망 하루 전인 지난 3일 한국나눔연맹의 홍보대사로서 소외·독거노인들을 위한 '효도콘서트'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현미는 남편 이봉조 사이에 두 아들이 있고, 가족들이 미국에 체류 중이어서 귀국하는 대로 장례 일정이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