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세상을 떠난 가수 현미. 사진은 지난 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 당시 모습'밤안개'라는 공전의 히트곡을 남긴 '디바' 현미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불과 하루 전날 지방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평소 지병도 없었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느끼는 반응이 많다.
1938년 북한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대표적인 '실향민 1세대 가수'로 꼽히기도 한다. 미8군을 통해 미국 음악이 유입되던 시기, 그는 미8군 가수로 활동한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스탠더드 팝'을 널리 알린 주인공이기도 했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으나 일정을 펑크낸 어느 가수 대신 우연히 노래를 부르게 되어 실력을 인정받아 가수의 길을 걸었다.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인 냇 킹 콜의 곡을 번안한 '밤안개'(1962)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아, 목동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다양한 히트곡을 남겼다.
최지선 음악평론가는 "'현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미8군 쇼 무대에서 활동했고,이후 손석우라는 작곡가가 세운 음반사 뷔너스 레코드에서 '밤안개'라는 히트곡을 발매했다. 이 곡을 통해 악단장이자 작곡가인 이봉조 선생과 부부가 됐다"라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트로트, 스탠더드 팝, 로큰롤, 포크 송까지 네 가지 장르가 큰 사랑을 받았다. 로큰롤과 포크 송을 젊은이들이 좋아했다면,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은 기성세대 음악이었다. 현미씨는 미8군을 통해 유입된 미국 음악의 사실상 '마지막 전달자', 마지막 '스타 전달자'라고 보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김도헌 음악평론가 역시 "한국 대중음악사를 보면 1960년대에 미8군 출신 디바로 이미자, 패티김, 현미를 들 수 있는데, 현미는 스탠더드 팝, 재즈를 했다는 점이 차별화 지점이고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 '밤안개'나 '떠날 때는 말 없이' 등을 들어보면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로, 아주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를 부른다"라며 "미8군 가수들이 서구 대중음악을 한국에 소개한 교차로 같은 역할을 했는데 현미는 스탠더드 팝과 재즈를 소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미는 미8군 가수 출신으로, 한국에 미국의 대중음악 장르인 스탠다드 팝을 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듣는다. 현미는 1960~1970년대 최고의 스타였다. 임 평론가는 "스탠더드 팝 스타로 최희준, 패티김, 한명숙, 이금희 등 많은 가수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현미는 압권이었다. 트로트라는 장르를 제외하고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보통 여성에게는 고음역을 기대하지만 허스키한 중저음이 매력이었고 굉장히 우렁찬 발성이었다. 무드가 있고 시원시원했다"라고 전했다.
개성이 뚜렷한 음색, 파워풀한 발성은 현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최 평론가는 "사실 현미 스타일의 허스키하고 굵직한 목소리는 꾀꼬리 같은 여성 보컬의 지향했던 때에 다소 다른 색깔의 목소리였을 것이라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미8군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굉장히 활기찬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당차다'라고 바라보는 반응이 많았다고 안다. 댄서로 출발했는데, 성량이 엄청나게 컸다. 우렁차고 시원시원하게 노래를 부르는 호탕하고 강한 여성이었는데 그런 여성상이 1960~1970년대에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셈"이라고 바라봤다.
미8군 시절 현미의 일화도 여럿이다. 임 평론가는 극장 쇼를 하던 시절, 현미의 노래를 들은 쇼 MC들이 감격한 나머지 진행을 잠시 멈출 정도로 노래에 푹 빠진 일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임 평론가는 "저도 어릴 때 TV로 현미씨 무대를 보는데 정말 무드가 일품이었다. 나이가 드셨어도 계속 활동하셨고 함께 일하면서 뵌 적이 있는데 그때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셨다"라고 부연했다. 김 평론가는 현미가 워낙 성량이 좋아서 마이크와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 노래한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임 평론가는 "미8군의 스타로 시작해 가요계로 넘어와 잊을 수 없는 명작들을 우리에게 선사한 인물이다. 또한 당대 모든 히트 영화의 OST를 부른 가수이기도 했다. 유명 작·편곡가였던 이봉조 선생님과 음악 작업을 했고, 나중에 부부가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현미-이봉조가 국내 '스타 커플 1호'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평소 고인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던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우리 가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다. 무대의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파워풀한 선배님이다. 아마 (돌아가시기) 하루 전까지 노래한 분은 이분 한 분밖에 없을 것"이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아리랑TV는 가수 현미의 66년 노래 인생을 올해 1월 신년 특집 프로그램 '더 K-레전드: 가수 현미의 쉬즈 스틸 싱잉'으로 방송한 바 있다. 아리랑TV 제공 현미의 66년 노래 인생은 올해 1월 아리랑TV에서 '더 K-레전드: 가수 현미의 쉬즈 스틸 싱잉'(She's Still Singing)이라는 새해 특집으로 방송됐다. 프로그램에서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보통 디바라고 이야기하는데 현미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최초로 그런 역할에 부합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한 바 있다. 아리랑TV는 해당 프로그램을 오는 6일 오전 10시 30분, 7일 밤 11시에 특별 편성할 예정이다.
주로 가수 역할이긴 했지만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1964) '마지막 정열'(1965) '관광열차'(1967) '강산에 꽃이 피네'(1968)를 포함해 총 8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했다. '웰컴 투 시:월드' '고부스캔들' '아궁이' '내 몸 사용 설명서' '한솥밥' '나의 펀타스틱 장례식' 등 2010년대를 지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다양한 예능에서 활약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실향민 1세대 가수이자 미8군 출신인 현미는 국제가요제 수상을 계기로 미국 백악관에 초청받고, 월남전 위문공연을 하는 등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김도헌 평론가는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장면을 거치면서 그때마다 항상 존재했던 어떤 전설적인 가수라고 볼 수 있다"라고 짚었다. 현미는 생전 문체부장관 표창장, 제11회 예총예술문화상 대상,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등을 받았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미국에 체류 중인 두 아들과 조카인 배우 한상진 등은 귀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장례 일정은 가족이 귀국한 뒤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