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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설경구가 '유령'에 빠진 이유, '캐릭터'와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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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무라야마 쥰지 역 배우 설경구 <상>
설경구를 '유령'에 빠지게 만든 요소들에 관한 이야기

영화 '유령' 무라야마 쥰지 역 배우 설경구. CJ ENM 제공영화 '유령' 무라야마 쥰지 역 배우 설경구.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이야기의 중심축의 한 명으로 등장하며 의심과 의심 사이를 오가며 관객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는 건, 그만큼 캐릭터와 극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이해를 연기로 표현해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설경구는 역시나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 그대로 '유령'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설경구는 명문 무라야마 가문 7대이자 조선말과 사정에 능통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군인이었으나 좌천돼 통신과 감독관으로 파견된 무라야마 쥰지 역을 맡았다. 유령을 찾으려는 덫에 걸린 무라야마는 본인 역시 용의자임에도 군인 시절 경쟁자였던 카이토(박해수)보다 먼저 유령을 찾아 화려하게 경무국으로 복귀하고자 한다.
 
설경구는 무라야마를 연기하며 의심받는 자와 잡고자 하는 자의 이중성을 그려내며 관객을 교란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유령'과 무라야마 쥰지의 어떤 매력에 빠져들어 연기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 

처음 만나는 시대적 배경 속 의심을 이어가는 캐릭터

 
수많은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든 설경구지만 그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유령'이 처음이다. 이러한 지점 역시 그를 '유령'으로 빠져들게 했다. 처음 만나는 시대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이해영 감독이 장르적으로 접근하며 특유의 미장센으로 그려낼 세계도 궁금했다.
 
설경구는 "작품마다 모습이 바뀔 수는 없지만, 그 시대의 착장을 하고 연기하면 캐릭터를 만드는 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한 무라야마 쥰지는 '이중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유령으로 의심받는 동시에 유령을 잡고자 하는 인물이자,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한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물려받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성공에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설경구는 "군인 명문가 7대손이라는 것과 어머니의 혈통이 계속 부딪히는 인물이다.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지만, 다른 한쪽은 콤플렉스 덩어리다. 결국 쥰지가 버티고 살아남아 갈 방법은 조선을 지우는 것"이라며 "이를 지우기 위해 쥰지는 끝없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기에 쥰지의 출세욕은 야망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걸 감추기 위해 오는 거라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반은 흐르는 '조선'을 지우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점에서는 연민이 갔다. 그래서 난 악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찍었다"고 설명했다.
 
무라야마가 유령으로 의심받는 상황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밀실 미스터리 추리극의 형태를 띠는 영화 전반부에서 또 다른 유령이 있을 것인지, 혹시 그 유령이 무라야마는 아닐지 하는 의심을 관객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무라야마가 담당한다. 이를 위해 설경구는 처음부터 자신이 '유령'이 된 것처럼 연기했다.
 
그는 "쥰지는 혼선을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령처럼 드러나 보이면 재미없으니까,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했다"며 "영화에서 굉장히 기능적으로 의심 받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그쪽으로도 접근했어야 하는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영화 '유령' 프로덕션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유령' 프로덕션 스틸컷. CJ ENM 제공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닦아낸 화면"

 
일제강점기라는 처음 마주하는 시대적 배경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낼 감독의 세계 역시 설경구에게 중요한 지점이었다.
 
'유령'은 흑백의 기록사진에는 빠져 있는 과감한 컬러를 채택했다. 이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약동했던 '유령'의 인물들의 성격을 더 돋보이게 하는 선택으로, 여성 캐릭터들에게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유행했던 스타일이 폭넓게 적용된 것은 단적인 예다. 컬러 팔레트를 놓고 인물의 성격에 맞는 메인 컬러를 고르고, 캐릭터들의 관계는 보색으로 반영되는 동시에 미술팀과의 협업으로 공간과의 배색도 고려했다.
 
설경구는 이러한 미장센에 관해 "감독님이 그 시대 흑백사진에 더 과감하게 색을 입히지 않았나 싶다"며 "한 컷 한 컷 정말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닦아낸 듯한 화면을 보니까, 이해영 감독이 영화에 끝까지 애정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감탄했다.
 
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그는 "이해영 감독님은 색감에 대해 다른 눈을 가진 거 같다. 과감한 색깔을 쓰는 게 장점이고 또 되게 꼼꼼하다"며 "정확하게 딱 떨어지길 바란다. 어떻게 보면 계산적인 연출을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렬한 컬러, 벼랑 끝 위압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외딴 서양식 호텔 등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더 풍성하게 구현된 공간과 소품, 의상 역시 '유령'의 서사와 캐릭터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설경구는 "어떻게 보면 넉넉한 예산이 아닌데, 김보묵 미술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벽이 여닫이가 되고, 양면을 다 무대 면으로 쓸 수 있게 했다"며 "블루매트를 보고 연기하는 것보다 세트에서 오는 게 있다. 세트장이 그럴싸해지면 연기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며 프로덕션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냈다.

영화 '유령' 무라야마 쥰지 역 배우 설경구. CJ ENM 제공영화 '유령' 무라야마 쥰지 역 배우 설경구. CJ ENM 제공 

'유령'에서 빠질 수 없는 이하늬·박해수와의 액션 신

 
'유령'은 설정만 보면 의심과 견제가 주가 되는 심리 위주의 첩보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이내믹한 액션이 끌고 가는 멀티 캐릭터 영화다. 잡고자 하는 사람, 잡혀선 안 될 사람, 의심하는 사람,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 반드시 뚫고 나가서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 사람까지, 상충하는 의지는 필연적으로 생사를 걸고 격돌하는 액션으로 이어진다.
 
특히 '유령'에서 무라야마와 박차경(이하늬)의 맞대결, 무라야마와 카이토의 맞대결은 빼놓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설경구는 이하늬와 액션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할까 봐 조심스러웠지만, 촬영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 이하늬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편하게 받아줬기 때문이다.
 
설경구는 "사실 액션을 하다 보면 상대 배우가 힘들어하거나 지치거나 한숨 쉬면 신경이 쓰인다. 함부로도 못하고, 자신 있게 (손발을) 뻗지도 못한다"며 "그런데 이하늬는 액션도 참 밝게 찍는다. 촬영할 때는 심각하게, '컷'하면 모니터를 확인하며 즐겁게 촬영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줘서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했다.
 
다카하라 카이토 역의 박해수와의 맞대결을 두고 설경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완전 개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진짜 여기서 지면 죽음이라는 개싸움이어서 박해수와의 싸움은 진짜 처절했다"며 "이하늬와의 싸움은 합이 있는 싸움인데, 박해수와는 거의 합이 없는 거 같은 개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유령' 스틸컷. CJ ENM 제공그렇기에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던 장면이 바로 박해수와의 액션이다. 감정적으로는 영화의 마지막 공회당에서의 신이 설경구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부담감을 안고 한 만큼, 영화 속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역시 설경구'라는 말이 나오게끔 한다.
 
그는 "공회당 신에서 혼자 다 끌고 가야 하는 것과 쥰지가 뱉는 말들이 표현되고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 그런지 힘들었다기보다 부담스러웠다"며 "그래서 시나리오에 나온 모자도 우겨서라도 못 쓰겠다고 할 만큼 다른 신경 쓰이는 것들을 다 치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예비 관객들에게 온 가족과 함께 극장으로 와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설날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설날 같은 느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연 뒤 "한국 영화가 아직 힘들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화를 완성하는 건 관객이라는 말이 있지만, 다시 세울 수 있는 것도 관객이라 생각합니다. 가족분과 극장을 찾으셔서 '유령'을 보며 좋은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오락적인 기능도 분명 있는 영화라 가족끼리 봐도 괜찮을 겁니다."(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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