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귀족 노조' 타파와 전방위적인 노동개혁을 선포하면서 올해 노정 갈등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당장 성과를 담보하기 어려운데도 '노동개혁'을 간판으로 내걸은 뒷배경에는 정부의 정치적인 노림수가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대 개혁 중 선두 주자로 치고 나온 노동개혁…尹, 새해 벽두부터 '노동 개혁' 직접 강조
신년사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 내용 가운데 성과급 체계를 강조하며 기존 연공 중심 임금체계은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지난 3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는 "각 부처는 개혁 과제와 국정과제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로드맵을 만들고 그 이행 과정을 수시로 저와 대통령실에 보고해주기 바란다"며 '3대 개혁'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3대 개혁 가운데 노동개혁은 유독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제시한 권고안으로 밑그림은 공개됐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업무보고를 통해 구체적인 노동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이다.
使 "주52시간제, 중소기업 부담↑ 노동개혁 시급"VS勞 "장시간 노동, 임금 하향 평준화 부를 '노동 개악'"
연합뉴스문제는 연구회의 권고안이 발표된 시점부터 노사 양측의 찬반이 극심히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계는 연구회 권고안에 담긴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이명로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현재 주52시간제인데, 추가 연장근로 8시간도 일몰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일할 수 없게 됐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연장근로수당이 감소해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부가 30인 미만 기업에 계도기간 1년을 부여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권고안의 노동시간 유연화는 '과로사'를 부르는 노동개악이고, 임금체계 개편 역시 진정한 임금 격차 원인을 감출 뿐이라고 비판한다.
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은 "임금과 노동시간의 결정권을 사용자에게 주면서 노동자들을 주당 짧게는 69시간, 길게는 90시간 일하도록 하는 장시간 노동체계로 진입하겠다는 '노동 개악'에 다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임금 체계에 대해 정부는 공정을 얘기하지만, 실제 현장의 요구는 공정한 분배에서 비롯했고 이것은 연공급과 무관하다"며 "오히려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2021년 말 기준 노조 조직률이 15%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용자의 장시간 근무를 요구해도 자신있게 쉴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개혁 대부분 법 개정 사안인데…'여소야대'에 '시행령 정치' 반복될 듯
스마트이미지 제공이처럼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 속에 노동개혁이 정부 계획대로 추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연구회 권고안의 개혁 과제 중 최대 '히트 상품'이었던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1주일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는 등 노동시간에 대한 대부분의 과제는 근로기준법 개정 사항이다.
당사자인 노동계가 강력히 반대하는 사안인데다, 이전 정부 시절 추진됐던 주52시간제를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마당에 야당이 법 개정에 협조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이러한 노동 난제(難題)에는 법 개정 작업의 추진력을 더하기 위한 우회로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애용했지만, 이번에는 '김문수 변수'로 상황이 달라졌다.
비록 노동계 출신 인사라지만 노동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된 김 위원장이 노사 양측을 아우르는 중재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극우 성향으로 널리 알려진 김 위원장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야권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기도 했다.
결국 여소야대 국면 속에 윤석열 정부에서 반복됐던 것처럼, 법 개정 사항이 필요한 과제들을 국회에 맡긴 채 정부는 직접 바꿀 수 있는 시행령 개정 작업부터 집중하는 '시행령 정치'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勞·野 반대할수록 지지율 결집? 꽃놀이패 쥔 정부…"노동계, 진짜 '노동개혁' 선보여야"
류영주 기자그럼에도 정작 정부는 노동계에 노동개혁의 정당성을 설득하기보다는 벌써부터 정면 대결을 선택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강도 높게 압박을 펼친 데 이어 건설노조의 채용 비리 의혹과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 등을 제기하면서 '노동개혁의 일환'이라며 오히려 노동계와 더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림수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이해관계는 노동개혁의 결과물을 거두기 이전에,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해석이다.
얼핏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며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 세력'인 '귀족 노조'에 양보 없이 압박하는 정부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이미 노동개혁의 정치적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당장 위의 화물연대 2차 파업에서 정부가 강경 대응을 선택한 결과 보수층 결집을 부르며 정부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바 있다.
정부로서는 물론 노동개혁이 계획대로 추진돼도 좋지만, 야당과 노동계가 반발해 개혁 작업이 늦어질수록 내년 총선에서 "노조와 야당의 반대 없이 일하게 해달라"고 지지세력에 호소할 명분이 갖춰지는 '꽃놀이패'를 쥐는 셈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 유니온센터 김종진 소장은 "현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 투자를 유치하도록 기업의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인데, 대표 상품이 노동개혁"이라며 "노동개혁 자체가 기업 경영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비용 합리화, 조직 효율화를 위해 추진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1980년대 영국, 미국에서도 정부가 유사한 노동개혁을 추진할 때 사회적 대화, 논의 대신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강도 높게 추진했다"며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 '장애요인'이라고 생각하는 노조에 법과 원칙, 무관용 태도를 천명하는 것도 이러한 연장선 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노동계가 직접 '진짜 노동개혁'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실장은 "어차피 정부의 노동개혁이 빠른 시간 안에 추진되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노동계로서는 정부가 제기하는 회계 부정 논란이나 포스코 노조 탈퇴 논란 등에 일일이 대응하며 이전 투구를 벌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란봉투법이나 안전운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재보험의 전속성 기준 폐지 등 노동자들의 고유한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며 "자신들의 권리를 갖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진짜 필요한 제도 개혁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알리고, 쟁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