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자위대 사열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 연합뉴스일본이 적 기지 공격(반격) 능력 확보 등을 비롯해 안보전략에 일대 수정을 가하면서 명문상의 헌법 개정 없이도 정규군을 보유하는 사실상의 개헌 효과를 거두게 됐다.
헌법 조문을 교묘하게 해석하는 이른바 '해석개헌'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헌법 9조의 군대 보유 금지 등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5위의 막강 전력을 갖출 수 있었다.
특히 공격 능력 확보와 국방비 2배 증액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대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존 조치들과도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 미국은 '담대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지지함으로써 일본의 추동력은 더욱 커졌다.
'해석개헌'으로 경찰예비대 → 보안대 → 자위대…계속된 위헌의 역사
지난 5월 2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연합뉴스잘 알려졌다시피 일본은 1945년 패망 이후 점령군 미군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완전 무장 해제되고 일명 '평화헌법'을 강요받았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육해공군 등의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한다.
1946년 당시 요시다 수상은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도 자위라는 명분하에 이뤄졌음을 지적하며 "어떠한 명의로서도 전쟁을 할 수 없도록 이를 포기"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헌법 9조를 순순히 수용했다.
2차 대전의 끔찍한 참상을 경험한 일본의 다수 국민들도 전쟁 공포로부터 해방된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했다.
이에 따라 패망 직후의 일본은 유엔을 통한 안전 보장을 기대하며 자위권 차원의 전쟁도 포기하겠다고 할 만큼 평화애호국가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 입장은 불과 수년 만에 바뀌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미‧소 냉전이 막 시작된 1950년 1월 신년사에서 마치 몇 달 후 한국전쟁을 예견한 듯 일본 헌법이 자위권마저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입장을 수정했다.
이후 한국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미 군정의 지시로 그해 7월 경찰예비대를 창설했고, 1952년 10월에는 군대 성격을 띤 보안대를 신설해 경찰예비대를 흡수통합했다.
1954년에는 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을 기초로 방위청과 함께 자위대를 창설해 실질적인 군대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기까지 채 10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자위대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위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위권이 허용되자 이제는 그 행사 범위를 서서히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뉴스일본 정부는 일단 1972년 자위권 행사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세웠다. 일본 방위백서에 따르면 전수방위는 상대의 공격을 받은 이후에야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나마 필요 최소한도에 그치는 수동적 방위전략이다.
하지만 이 원칙도 걸프전쟁에 따른 미국의 다국적군 참여 요청을 빌미로 1992년 평화유지활동(PKO) 차원의 해외파병이 이뤄지며 허물어졌다.
강경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아베 내각이 들어선 뒤에는 2015년 집단 자위권 법안을 발효하며 활동 범주를 확대했다. 패전 70년만의 일이다.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북한) 진출은 불가하다는 한국 측 언급에 "한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나카타니 겐 방위상)는 위험한 발언이 나온 것도 이때의 일이다.
일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베의 유지를 이어받았다는 기시다 내각에서 급기야 안보전략의 '역사적' 전환을 통해 결국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의 숙원에 거의 다다랐다.
과거사 청산 없이 군사대국 위험한 질주…세계 3위 군사력으로 압도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연합뉴스결과적으로 일본은 미‧소 냉전을 계기로 자위대를 보유한데 이어 미‧중러 신냉전을 또 다른 기회로 삼아 정식 군대, 즉 명실상부한 일본군의 탄생을 앞두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순수 비무장 국가에서 경찰예비대 → 보안대 → 자위대로의 점진적 진화를 이뤘고 해외파병과 집단 자위권을 확보하는 집요함을 보여줬다.
냉전 시기에는 안보는 미국에 의탁한 채 경제 성장에 매진했고, 냉전이 끝나자 그간 축적한 해외자산 보호 및 국력 과시를 위해 활동 반경을 넓혔으며, 신냉전과 더불어서는 아예 군사대국으로 내달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전쟁과 상시적 위기가 언제나처럼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1%인 일본 방위비가 수년 내 2%로 증액되면 이미 세계 5위의 군사력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가공할 수준으로 올라선다.
이제 일본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걸림돌은 어려운 재정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막강한 경제력과 집권세력의 오랜 집념으로 미뤄 현실화는 단지 시간 문제로 보인다. 방위산업 육성만으로도 경기 진작 효과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더 중요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 진출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5개 공식 핵보유국에 필적하는 무력이 필요하다. 안보전략 변경에는 단지 공격능력 여부를 떠나 이런 큰 그림이 깔려 있다.
모든 것을 막는 방패와 모든 것을 뚫는 창까지 갖춘 일본은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다. 과거사 반성과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채 스스로 전범국가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이미 위험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수방위 개념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표명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할 뿐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위태로워 보인다. 일본의 선의 외에는 뾰족한 제동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재 역할에 기댈 수 있다고 하나 그조차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