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올 한 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에서 촉발된 국내 고(高)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이른바 '3중고' 상황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나왔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고물가에 대응해온 한국은행은 내년에도 당분간 물가 목표 2%대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방향도 재확인했다.
하지만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 가뜩이나 한국 경제에 부담인 가계부채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는 데다, 급격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하는 등 경기 침체 터널에 들어설 수 있는 만큼 한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기준금리, 16개월 새 2.75%p나 올랐지만 고물가 '여전'
이창용 한은 총재. 연합뉴스"11월 전망 때는 (내년도) 전기요금이 올해 인상 폭 정도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더 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국제유가는 11월 전망 당시보다 낮아졌는데, 낮은 수준이 계속될지는 불확실성이 큽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 총재는 "내년에는 물가상승률이 '상고하저'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낮아지더라도 물가 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이라며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유가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7월보다는 한풀 꺾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향후 유가 변동폭도 예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대외변수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고물가의 고착화'를 막기 위한 한은의 그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물가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올린 기준금리 폭은 2.75%포인트에 달한다.
'빅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 2차례를 포함해 총 9차례나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0.5%였던 기준금리는 1년 4개월만에 연 3.25%까지 치솟았다.
추세적 흐름 보여주는 근원물가 꾸준히 상승 '비상'
고물가에 간편식 인기 상승. 연합뉴스올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기대비 4.1%를 기록하며 10년 3개월 만에 4%를 돌파했다.
이후 7월에는 6.3%까지 급등했던 소비자물가는 8월(5.7%), 9월(5.6%), 10월(5.7%), 11월(5.0%)에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5%대를 기록 중이다.
고물가가 고착화되면 향후 경기회복 여력도 상실된다고 판단한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며 대응했다.
하지만 식료품과 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총재가 "물가 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이라고 언급한 배경에도 근원물가의 좋지 않은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한은이 전날 발표한 11월 근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4.3% 오르면서 4개월 연속(8월 4.0%, 9월 4.1%, 10월 4.2%) 상승세를 이어갔다.
근원물가는 식료품과 에너지와 같이 계절적 요인이나 외부 충격에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을 제외한 물가지수로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로 쓰인다.
특히 근원물가에서 공공서비스, 전기·가스·수도 요금, 휴대전화료 등 정부가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관리물가'를 빼면,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은 5.1%까지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만큼 고물가 상황이 앞으로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누적된 공공요금 인상압력, 국제유가 대외변수 '여전'
연합뉴스관리물가는 정부가 46개 품목을 모아 산출하는데, 문제는 내년에 전기·가스요금, 택시비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내년에 기준연료비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폭을 1킬로와트시(㎾h)당 51.6원으로 산정했다. 올해 인상분(㎾h당 19.3원)에 비해 2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다.
서울에서는 당장 이달부터 택시요금 심야할증 시간이 밤 10시로 앞당겨지고 할증률도 인상된다. 각 지자체들도 택시요금 인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 총재가 이날 "(내년도 전기료 인상 관련) 기재부에서 경제 운용방안 발표를 앞두고 있어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 인상폭보다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도 향후 관리물가 상승에 우려를 표한 대목으로 읽힌다.
이 총재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았다", "지난 4월 만해도 11월쯤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봤지만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유류세는 우리 정부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했다. 유가가 떨어질 때 공공요금 정상화에 따라 물가(둔화)를 더디게 하는 반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국제유가 등의 대외변수가 상존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그간 관리해 오면서 누적된 공공물가 인상 압력도 거세질 수 있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재차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 경계선에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연합뉴스지난달 금통위 직후 나온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해서도 결이 다른 발언이 나왔다.
이 총재는 최종 기준금리 수준에 대해 "기준금리 3.5%는 전제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 3.5%를 예상한 것은 11월 금통위 당시 금통위원들의 의견으로 소통의 차원이지 약속이 아니다"라며 "한은이 그렇게 간다든지, 정책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또 "11월 경제 데이터만 볼 때는 다수 금통위원들이 3.5%면 과소나 과잉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경제 상황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까지 물가잡기를 정책 최우선 순위에 둬야하는 만큼,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가 향후 데이터 변화에 따라 일부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이 총재는 그간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시장 위축, 금융시장 불안, 가계부채 부실화 등 우리 경제 각 부문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각별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2024년에야 목표치인 2.5%로 물가상승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긴축 기조를 이어가야 하는 데,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급격한 경기둔화 우려에 대한 관리의 끈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경기 전망에 대해 "경기침체 증거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면서도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또 "경기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