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참사 장소에서 4분여 거리 떨어진 '퀴논길'을 두 차례 둘러봤다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행적이 인근 CCTV를 통해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경찰 수사와 책임 사퇴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고향인 경남 의령군 집안 시제에 참석한 뒤 오후 8시20분 용산구청에서 도보로 약 5분거리 떨어진 이태원 엔틱가구거리 외빈주차장에 도착해 도보로 퀴논길 인근 자택으로 향했다. '압사 위험', '도와달라'는 112신고가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CCTV로 드러난 박희영 행적…'퀴논길 순찰점검' 시각 자택에
박 구청장의 이날 동선이 CCTV를 통해 드러난 가운데 애초 밝힌 첫 번째 '오후 8시 20분 퀴논길 순찰·점검'은 없었다. 엔틱가구거리에서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성과 함께 곧장 집으로 가는 모습이었다. 오후 8시 22분 집 앞에 도착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오후 9시 30분 퀴논길 순찰·점검' 역시 거짓말로 확인됐다. 해당 시각 박 구청장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이에 대해 박 구청장 측은 "기억에 혼선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용산구청은 지난 4일 박 구청장 측이 해명했던 '퀴논길 순찰'에 대해 "순시나 순찰 목적은 아니었고 마침 그 시간 지나가면서 현장을 본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참사가 발생한 10시 15분을 기준으로 박 구청장은 이로부터 44분이 지난 오후 10시 59분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후 10시 51분경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 관계자로부터 현장 상황을 문자로 전달받고 참사 현장으로 곧바로 나갔다는 설명이다. CCTV 행적에서 비슷한 시각 자신의 자택 출입문으로 나와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힌 시각은 오후 10시 59분경. 자택에서 약 4분거리다. 이태원로를 횡단해 해밀톤호텔 쪽으로 넘어가야 하는 부분까지 감안하면 비슷한 시각 도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튿날 오전 7시 30분까지 현장 지휘를 했다는 용산구 측의 당초 설명과 달리 박 구청장은 CCTV 행적에서 오전 5시 38분 귀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현장은 소방대응 3단계가 유지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박 구청장은 자택에서 드문불출했다. 참사 발생 이후부터 30일 오전 6시 35분까지 서울소방재난본부 주재 상황판단회의가 6차례 열렸지만 박 구청장은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30일 오전 8시 49분 수행원과 집을 나서는 CCTV 장면이었다.
당초 용산구가 밝힌 박 구청장의 행적을 두고 책임 회피를 하기 위한 거짓 해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9일 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턴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에 인파가 몰려 있다. 연합뉴스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박희영 용산구청장 동선용산구 수 차례 뒤바낀 해명의 끝…"참사 트라우마로 부정확한 기억"
용산구는 이에 대해 11일 입장문에서 29일 이태원 엔틱가구 외빈주차장에서 하차한 후 도보로 귀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평소 귀가 동선이 퀴논길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같은 길로 기억했다"며 "지난 6일 당시 동행했던 직원과 이야기 하던 중 실제 하차지점을 기억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참사 당일 현장에서 구조 활동과 사상자 이송을 도왔고 참사 충격과 트라우마로 경황이 없어 부정확한 기억으로 '퀴논길 주변 현장을 점검했다'고 잘못 해명했다"며 "거짓말 의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태원에 자택을 두고 생활하며 지역 지리를 꿰뚫고 있고 박 구청장이 당선 이후에도 도보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명의 무게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엔틱가구거리 외빈주차장에서 자택으로 가는 동선은 퀴논길과 겹치지 않는다. 실제 CCTV 동선에서는 퀴논길의 번잡한 인파와 달리 도보 이동경로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길목이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상황판단회의 불참 지적에 대해서도 용산구는 "소방 상황판단회의 참석 대상은 자치구는 보건소장"이라며 "1·2차 회의는 용산구청 보건소장이 참석했고, 3차 회의는 상황실 업무 때문에 소장이 불참했다"며 구청장 참석을 요청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참사가 발생한 그 시각 용산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100여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2차 회의에는 소방 지휘부 및 해외 출장 중인 서울시장을 대신해 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30일 오전 1시 9분에 열린 4차 회의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 발생 지역의 자치구청장으로서 현장 지휘부에 속하는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에 매진하느라 재난 대응 회의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어 진실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관계자들이 8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용산구는 박 구청장이 30일 새벽 3시 직원의 50%에게 동원 명령을 하달하고 오전 7시 30분까지도 다목적 체육관의 소독을 지시하는 등 사고 수습을 위해 잠도 자지 않고 근무했다고 설명했지만 CCTV 행적은 그가 집에 돌아간 5시 38분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용산구가 최초 상황전파를 위해 재난문자를 보낸 시각은 자정을 넘은 0시 11분 한 차례, 오전 1시 37분 총 두 차례다. 이 마저 행안부와 서울시의 통보를 최초 인지한 시점에서 78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이 때는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있던 시점인데 이후로도 용산구청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핼러윈 데이 대응을 위해 참사 3일 전 설치했다고 밝힌 '상황실'도 사실은 '직원 당직실'로 드러났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제출받은 '10월29일 용산구청 당직일지'에 따르면 구청 당직실에는 총 8명이 근무를 했는데 당직일지에 당시 당직실은 상황실에서 연락을 받지도 못했고 당직실의 주요 역할인 비상연락망 또한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용산구청이 밝힌 종합상황실의 전화번호 2개도 한 곳은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을 통해 재난문자방송을 송출하는 재난안전과와 당직실이었다. 관할 구역 순찰 내용도 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 정작 당직근무자들은 자신의 근무장소를 상황실로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박 구청장이 29일 고향인 경북 의령군 초청으로 지역축제 참석했다며 공식 일정인 것처럼 밝힌 내용도 실제로는 집안 시제에 참석하기 위해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일 오전 6시 30분 서울을 출발해 11시 반쯤 집안 행사인 '시제'에 참석한 뒤 오후 2시 쯤 의령군수를 만나 10여분간 티타임을 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7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용혜인 의원은 "의령군 지역 축제 개막식은 전일(28일)이었고 박 구청장은 이에 맞춰 영상축사를 보냈다"며 29일 의령 방문은 자매도시 축제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안일인 시제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의령군청의 답변자료를 공개했다.
박 구청장이 구조활동을 했다고 주장한 시각, 심정지 환자가 100여명이 발생한 시각에도 용산구청은 조용했다. 박 구청장이 참사 직후 어떤 지휘력을 발휘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만 보면 박 구청장과 용산구청 윗선이 조직적으로 상황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