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추석특집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 사진. MBC 제공 '아이돌 가수들이 스포츠 종목으로 승부를 가린다'라는 목적 아래 2010년 추석부터 명절마다 시청자를 찾는 '아이돌스타 선수권 대회'(처음엔 육상대회로 시작해 '아육대'가 준말이다)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부상'이다. 포털 검색창에 '아육대'라고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아육대 부상'이 뜨고, '아육대 부상'이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된다.
지금까지 샤이니 민호, 씨스타 보라, DMTN 다니엘, 빅스 레오, 엑소 시우민과 전 멤버 타오, 인피니트 성열-우현, AOA 설현, 방탄소년단 진 등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아육대'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서 사고나 부상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사례이거나, 이후 소속사와 방송사의 확인 등을 통해 언론 보도된 사례 중 굵직한 것만 이 정도다.
소속사에서는 염려와 답답함을 토로한다. A 기획사 관계자는 "본인이 정말 좋아하거나 잘하고 싶은 종목이 아니면 너무 승부욕을 부리거나 무리하지 말라고 늘 얘기한다"라고 말했다. B 기획사 관계자 역시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크게 다치면 당장 각종 활동에 빨간불이 켜지는 탓이다. 앞서 거론한 아이돌 중에도 부상 정도가 심해 음악방송에 불참하는 등 피해를 본 경우가 있다.
MBC는 줄곧 '상시 의료진이 대기 중이다' '안전하게 경기를 치르도록 특히 신경 쓰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해당 발언이 무색하게도 '아육대'에선 매년 크고 작은 부상자가 나왔다. 물론, 승부를 겨루는 자리이기에 경쟁심이 앞서 참가자들 스스로 무리할 수 있고 그게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MBC가 안전하고 건강한 경기를 치르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시트지'다. 달리기 경기를 진행할 때 시트지를 바닥에 깔았는데, 이는 달리기에 적합한 재질이 아니기에 참가자들 여럿이 넘어지기 일쑤였다. 지난 1일 열린 '아육대' 녹화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에 따르면, 올해도 바닥은 시트지 처리가 돼 있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는데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기에 상황은 더 엄중하다. 한때 1만 명 미만까지 떨어졌던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점차 늘어 10만 명을 훌쩍 넘겼다. 녹화 시기였던 8월 1일도 4만 명대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여느 예능 프로그램이 그렇듯, '방송 나갈 용도'라는 명분 아래 출연진은 전부 마스크 미착용 상태였다. 출연진 중 가수 김재환은 '아육대' 녹화를 마치고 코로나19 판정을 받아 활동을 쉰 바 있다.
2019 추석특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 대회 사진. MBC 제공고질적인 부상 문제로 아이돌 팬들의 '기피 대상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된 '아육대'는 올해 '인권침해 논란'으로도 입방아를 찧었다. 15시간 전후로 긴 녹화를 하면서도 중도 퇴장과 취식을 금지한다고 공지한 까닭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중도 퇴장해 개별 식사가 가능하다고 공지를 수정했으나, 결국 프로그램을 위해 장시간 녹화에 방청객을 무료로 동원하면서 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는다는 질타가 끊이지 않았다.
잡음 끝에 개별 식사가 허용됐지만 이 또한 소속사가 부담했다. 각 소속사는 팬들을 대상으로 식권이나 도시락을 선물했다. 녹화에 참여한 팬들이 현장에서 올린 '인증 사진'도 큰 화제였다. 이 같은 '역조공'은 가수와 소속사가 팬들이 그동안 보내준 사랑에 보답하는 의미로 여겨지지만, 정작 음식 제공 의무를 지닌 방송사는 뒤로 빠지고 소속사 간 과열 경쟁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C 기획사 관계자는 "식사는 도시락 등으로 방송사에서 동일하게 제공했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소속사 경쟁이 돼서 부담스럽다"라고 털어놨다.
해당 논란에 MBC는 몇몇 매체를 통해 팬을 모집하는 것은 각 소속사 담당이라며 뒤로 빠졌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육대'라는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수십 개의 기획사에서 수백 명의 아이돌이 모이는데, 개별 소속사가 각자의 운영 방침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소속사는 팬들의 안전하고 즐거운 관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방송사의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는다.
B 기획사 관계자는 "모든 주도권과 결정권이 방송사에 있는데, (회사는) 가운데서 방송사와 팬들 양쪽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한다. 아마 전문 인력이 없는 회사라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 행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실수하는 곳들도 봤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러 온 팬분들의 질서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방송사가 정해놓은 규칙을 팬들에게 잘 전해야 하는 게 회사 몫이다. 많이 신경 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잦은 부상을 포함한 안전 문제, 방청객 대우 등 다양한 논란이 불거지고,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폐지' 요구가 나오는 것까지도 이제 '아육대'에겐 연례행사가 됐다. 그러나 비판 속에서도 '아육대'는 10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인기 아이돌부터 신인까지 화려한 출연진이 기본이고, 운동 경기에서 오는 박진감과 예측불허의 재미를 잡아 프로그램 성격도 뚜렷하다. 가요계가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해 무대 밖에서 다채로운 스포츠로 실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장'을 펼친다는 점, 신인의 경우 특히나 캐릭터와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는 점, 나아가 기존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거나 새로운 팬을 유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각각 만족할 만한 부분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년 만에 대면 경기를 재개한 '2022 추석특집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 MBC 제공소속사 관계자들도 '아육대'가 인지도를 올릴 기회가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B 기획사 관계자는 "사실 신인의 경우 '아육대'에 입성하는 것만으로 어떤 단계에 왔다고 의미를 두기도 한다"라고, A 기획사 관계자는 "매번 무대만 보다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아육대'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니까 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폐지가 어렵다면 매번 지적되는 문제를 개선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다.
A 기획사 관계자는 "다만 시청자와 팬들이 비판하는 내용을 좀 보완해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1, 2년째라면 '진행 미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십 년이 넘었는데 경기 운영이 이런다는 게… 최소한 육상(경기)할 때 바닥을 덜 미끄럽게 한다든지. 깔끔하고 건실하게 운영한다면 말 나올 일이 없을 텐데…"라며 "안전 가이드를 잘 지키면서 건강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아육대'는 프로그램을 향한 쓴소리를 수용해 더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코로나 시국에 굳이 대면 행사를 치르고,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중도 퇴장과 취식 금지를 요구하는 데서 실감한 '불통' 때문이다.
녹화를 이미 다 마친 '사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육대'를 둘러싼 여러 논란 사실 여부와 MBC의 입장 및 해명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아무 답도 받을 수 없었다. 어떤 우려와 비판도 한 귀로 흘려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불리한 내용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뚝심이 '아육대'를 지금까지 방송하는 장수 비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