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장기화에 윤석열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 30% 회복을 요구하며 '극한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그 배경엔 '원청의 갑질' 문제가 내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청회사는 하청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면 되기 때문에 하청업체를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다. 원청회사인 대우조선 해양이 도급비를 줄이면 하청업체는 사람을 자르거나 월급을 깎을 수밖에 없고, 안전관리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 산업재해 사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른바 갑질 중의 갑질은 '원청 갑질'"이라며 "원청회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시간, 복지, 직장 내 괴롭힘 등 등 모든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청회사의 갑질을 막기 위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개정해 원청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무엇보다 원청회사에게 하청노동자의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도록 국회가 '원청회사 공동 사용자 책임'을 법제화해 원청 갑질을 예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들은 조선소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자, 철강, 병원, 마트 등 여러 산업군 '원청 갑질' 사례를 들며 "원청회사 관리자는 하청업체 사장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원청회사에서 하청업체에 인원을 줄이라고 통보하거나 누군가를 해고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조선기자재 업체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원청에서 납품 단가를 깎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마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수주를 받았는데 대표가 제대로 수주 받지 못했다고 월급을 매달 50만원씩 감봉하겠다고 했다"며 "대표는 작업하는 동안 '남는 것도 없다'며 볼 때마다 화를 내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하청 노동자는 "토요일 휴무로 월 2일만 쉬고 명절 당일 하루 빼고 법정공휴일도 전부 출근한다"며 "원청의 업무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하면서 휴게시간을 2시간으로 지정해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연장근로수당에 모든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월급이 250만원도 되지 않는다. 원청에서 도급비를 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대한 학계, 노동법률가 단체 긴급 기자간담회'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한 전자회사의 하청 노동자는 "1년 가까이 원청사 안전과장의 갑질 때문에 너무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얼마 전 대표가 전화해 한 사람을 감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원청사 과장이 저를 지목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사에서 인원을 줄이라고 통보하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인원을 줄이거나 일을 돌아가며 했다. 노동부에서는 원청사와 하청업체 간의 괴롭힘은 법으로 성립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단체는 "하청노동자가 원청회사나 원청 관리자에게 갑질을 당해도 신고는 불가능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계약관계를 맺은 회사에 신고하도록 돼있어 하청 노동자는 하청회사에 신고해야 하지만 하청 노동자가 원청회사나 관리자를 조사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청노동자는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사업장내 노조활동, 노동안전을 좌우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제3자라며 노동법상 책임은 회피하는 원청회사들의 갑질을 멈춰야 한다"며 "원청 사업주에게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해야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