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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근로자에게 극형 '갑질살인'…작년 78명, 전수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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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과로·괴롭힘에 등 떠밀린 죽음, 작년 직장인 98명 숨졌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자살' 사례 전수 분석①]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근로자 간 갈등 아닌 회사·사용자의 책임
강제 골프 연습, 전신 탈의시켜 문신 검사…갑질 난무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연합뉴스
#재무 업무를 담당했던 ㄱ씨는 동료들로부터 "일에 열정적이고 자기관리가 투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이직을 고민할 정도로 상사와의 업무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컸다. 상사는 일을 받는 대로 다 ㄱ씨에게 넘겼다. ㄱ씨는 일로 바쁜 와중에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적인' 골프 연습도 해야 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대출을 받아 골프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그는 상사들과 골프를 치러 갔다. 그의 자살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처음 시행됐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등이 개정되면서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 정의가 명시되고, 업무상 질병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이 포함됐다.

16일 '직장 갑질'은 법적으로 금지된 지 4년째가 됐지만, 여전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정신질환 사망(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1차로 산재를 인정받은 78건을 전수 분석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최종 집계한 정신질환 사망자(자살) 산재 통계는 △2017년 77건 신청, 44건 승인 △2018년 95건 신청, 76건 승인 △2019년 72건 신청, 47건 승인 △2020년 87건 신청, 61건 승인 △2021년 158건 신청, 88건 승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근로자에 국한된 수치다. 산재 보상 대상은 사기업과 공기업 소속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데, 별도 기관에서 산재 조사를 받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군인, 어선원 등을 포함하면 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 숫자는 더 늘어난다. 지난해의 경우 산재보험법상 노동자 88명, 공무원 10명, 군인 16명 등 총 114명이 '자살 산재'로 인정됐다.

일반 노동자 집계에서 지난해 산재 신청이 전년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이유는 법 시행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용 의원은 "3년 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범죄가 될 수 있으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며 "이번 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 판정서 분석은 직장 내 괴롭힘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태블릿 펜 빨리 못찾으면 월급 깎는다"…각종 '갑질 살인'



ㄴ씨는 2019년 2월 병원에 입사해 접수·수납, 고객 상담 등 업무를 맡았다. 동료 간호사와 갈등이 생긴 건 두 달쯤 뒤였다. 간호사는 ㄴ씨에게 업무 시작 1시간 전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하고, 늦으면 화를 냈다. 또 점심시간에 상담 예약을 잡거나 의료인이 아닌 ㄴ씨에게 주사 연결을 시키는 등 부당한 업무 지시를 했다.

입사 7개월이 지나고 어느날 간호사는 ㄴ씨가 사무실에서 쓰는 태블릿 PC 펜을 잃어버렸다며, 3~4일 동안 수시로 "펜을 빨리 찾아라. 못찾으면 월급에서 10만원 깎는다"는 등 협박을 했다. 이에 B씨는 사망 당일까지 환청이 들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이 산재 보상을 신청함에 따라 심의에 나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사망 전까지 부당한 업무지시와 괴롭힘이 있던 걸로 보인다"며 "사망 전 상당 부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ㄴ씨의 자살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또 산재 보상이 승인된 사례인 ㄷ씨는 콜센터 상담사였다. 회사 업무 교육에서 담당자는 ㄷ씨의 상담 응대 내용을 전체 상담사에게 공개하면서 일일이 지적했다. ㄷ씨가 응대 콜 수가 적고 안내 오류가 평균보다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ㄷ씨에게 따로 테스트를 실시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ㄷ씨를 업무에서 배제했다. ㄷ씨는 위축되고 모멸감을 느꼈다. 휴직을 마치고 복직 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며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생을 마감했다.

직장 내 괴롭힘엔 부당한 업무 지시와 함께 성범죄도 있다. ㄹ씨는 수직적·권위적 분위기인 제강팀 주조파트에서 일하며 성희롱을 당하고 주·야간 교대 근무로 인한 업무적 스트레스가 컸다. 상급자들은 신입사원들을 전신 탈의시켜 문신 검사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이유없이 질책하곤 했다. 또 강한 소음 작업으로 귀 건강이 나빠진 ㄹ씨는 비소음 부서로 이동시켜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울증세가 심해진 ㄹ씨는 자살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겪는 괴로움,  넓은 의미 '직장 갑질'…노조가 괴롭힌 경우도 '산재'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사측)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규정한다. 근로자만이 아니라 사용자, 즉 회사 측의 행위도 포함되는 셈이다.

관련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공통적으로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했는데, 모두 광의(廣意)의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납품 관계가 끊겨 일이 많아지거나 과로시키는 것도 스트레스를 사용자가 주기 때문에 괴롭힘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조 따돌림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예방 업무는 사용자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33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한 지점장 ㅁ씨는 사망하기 전 약 5개월 동안 노조에서 집단 따돌림을 겪고 전보 요구를 받았다. 퇴진 요구를 받은 그는 전 직원 앞에서 사과했지만 노조 측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전보를 요구했다. ㅁ씨는 정년을 1년 앞두고 시행될 인사 발령 때 좌천성 인사로 명예가 떨어질 것을 걱정했다. 질판위는 이같이 직원 및 노조와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생긴 정신적 스트레스로 ㅁ씨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ㅂ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출근 중 대형 교통사고가 난 뒤 급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를 겪었다. 허리통증 및 불면증, 불안감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후 회사 업무에 복귀한 그는 진급하면서 업무량이 많아지고 출장 시 운전하기도 하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자신의 차량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그는 "정상적인 인식 능력과 정신적 억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해 사망하게 됐다"는 판단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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