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비(非)영어권 드라마 최초, 한국 드라마 최초, 한국 배우 최초, 아시아 배우 최초….한국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방송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최대 방송 시상식인 프라임타임 에미상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이 연 것은 단순히 '최초'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기회'의 문이다.
에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텔레비전 예술·과학아카데미(The National Academy of Television Arts&Sciences, ATAS)가 12일(현지 시간)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이하 에미상) 후보를 발표한 가운데, 한국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 등 주요 부문 14개 후보에 지명됐다. 특히 연출자 황동혁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 각본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포스터와 제74회 에미상 감독상 후보자들. 넷플릭스·ATAS 제공글로벌 신드롬 '오징어 게임', 에미상 대거 노미네이트
'비영어권 최초'라는 수식어에서 볼 수 있듯이 에미상은 그동안 영어로 제작된 드라마에만 에미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그만큼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전 세계적인 성공이 ATAS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뜻이다.
'오징어 게임'은 그간 제79회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오영수), 제28회 미국 배우 조합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이정재) 포함 3관왕,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상 포함 2관왕, 제5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포함 3관왕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쾌거를 이뤘다.
또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TV(비영어) 부문에서 작품 공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량 기준 16억 5045만 시간을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13일 CBS노컷뉴스에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후보에 오른 의미에 관해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오징어 게임'이 외국에서 어느 정도 평가받고 있는지 에미상 후보에 오른 걸로 다시 한번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에미상에 비영어권 최초로 후보에 올랐다는 건 이후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표현할 때 하나의 사례로 등장할 것"이라며 "한국 콘텐츠와 비영어권 콘텐츠에 대해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여론의 흐름이 미국 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오징어 게임' 전 세계적 위상에 한국 배우들도 인정받아
작품과 감독뿐만이 아니다. 비영어권 작품 속 배우들이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은 프라임타임 에미 역사상 '오징어 게임' 배우들이 '처음'이다. K-콘텐츠에 이어 한국 배우 역시 위상을 재확인한 것이다.
배우 이정재는 아시아인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으며,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는 한국인 최초로 박해수와 오영수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정호연 역시 한국인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유미도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게스트상 후보에 깜짝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정호연은 해당 부문 최초 첫 연기 데뷔작으로 노미네이트 된 배우이자, 네 번째로 후보가 된 아시안 배우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에 관해 하재근 평론가는 "에미상이 그전에도 한국 영화에 대해 제대로 대접을 안 한다고 미국 내 비난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에미상조차도 '오징어 게임'과 한국 배우를 후보로 지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징어 게임'의 위상이 엄청났다는 것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에미상이 변화의 신호를 보임으로써 한국 배우와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미국 내에서는 물론 서구 사회에서 더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고 내다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비영어 콘텐츠 '오징어 게임'이 연 글로벌 기회로의 문
'오징어 게임'은 영어를 사용하는 서구 콘텐츠 중심으로 돌아갔던 에미상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에 미국 내 매체들 역시 '오징어 게임'의 후보 지명을 두고 '새 역사'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나 8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든글로브가 백인 중심의 폐쇄성을 고수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이어가며 비난의 중심에 선 것과 달리 에미상은 한국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을 통해 변화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를 두고 "'오징어 게임'이 후보에 오르면서 에미상은 마침내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루게 됐다"고 의미를 짚었다.
또 다른 매체 버라이어티는 "올해까지 미국배우조합상, 골든글로브 또는 에미상에서 영어 이외의 프로젝트가 주요 부문에서 수상한 적은 없으며 심지어 후보에 오른 적도 없다. 그러나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골든 글로브에서 이미 뛰어난 연기로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며 "거의 모든 상황에서 '오징어 게임'은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에 오른 '오징어 게임'이 K-콘텐츠를 비롯한 비영어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본격적인 포문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는 "넷플릭스는 수년에 걸쳐 외국어 프로그램을 구축해 왔으며, 다른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그 투자의 결과이며 경쟁자들이 다른 언어로 된 쇼에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자극했다"며 "넷플릭스의 고객 대부분은 국제적인 고객들로, 이는 넷플릭스가 외국어 쇼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황동혁 감독은 에미상 후보 지명 소감을 통해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후보 지명을 계기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전 세계가 서로의 콘텐츠를 즐기고 이해할 기회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며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전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이번 후보지명은 일종의 물꼬를 튼 것"이라며 "'오징어 게임'을 시발점으로 문을 연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향후 다른 비영어권 작품들도 에미상이라든가 미국 내 다른 시상식에서 더 많이 인정받는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