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_해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_서래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서래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고,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한다.
관객들 사이에서 '또 볼 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칸느 박'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여전히 그의 영화지만, 전작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헤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탕웨이와 박해준의 열연과 케미, 그리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이다.
지난 6월 24일 화상으로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을 만나 '헤어질 결심'과 탕웨이의 매력 등 영화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깊은 감흥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이전 작품들보다는 수위가 낮아졌다. 최소화의 요소를 갖고 간결하게 구사해서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는 처음엔 모르겠더라. 이게 구식으로 보일 수도 있고,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더 새로워 보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 앞서 칸영화제 감독상보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호평들이 엄청나다. 일단 전문가 리뷰가 좋은 건 직업적으로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또 역시 영화 보는 일이 직업이 아닌, 안 봐도 되는데 시간을 내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 만족스러워하느냐가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 탕웨이와 함께 작업하며 느꼈던 배우로서 그의 매력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지독한 프로페셔널이다. 한국어 대사를 소리 나는 대로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흉내 내서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법 기초부터 공부했다. 그렇게 미련하리만큼 우직하게 한국어를 배웠다. 자기 대사만이 아니라 상대 대사도 다 외워서 무슨 말을 해도 그때그때 단어 하나하나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면서 연기하려 노력했다. 그렇기에 탕웨이의 한국어 발음은 우리와 똑같지 않을지라도 단어, 조사, 어미 처리 하나까지도 다 자기의 의도와 해석이 담긴 대사였다.
그리고 좀 우직하다. 뭘 해도 아주 기초부터 한 단계 계단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야지 훅 뛰어넘어 가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뭐든 자기 머리로 스스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성품이다.영화 '헤어질 결심' 비하인드 스틸컷. CJ ENM 제공 ▷ 탕웨이라는 배우에게서 어떤 모습을 발견했기에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건가? 사실 이 경우는 탕웨이가 먼저였다.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정했다. 그래서 탕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사적으로 알지는 못했으니 그저 전작들을 보면서 갖고 있던 막연한 인상과 그의 매력이 뭔지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궁금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의 탕웨이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각본을 썼다.
내가 만난 탕웨이는 '색, 계'와 '만추'와 '황금시대'의 배우였다.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탕웨이를 만나서 캐스팅을 제안했다. 하겠다는 의사를 받은 다음에 각본을 더 썼다. 그러니까 탕웨이를 일대일로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 예를 들면 실제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좀 더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야 잘할 수 있는 사람' '내 작업 방식은 이런 것'이라는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런 면을 각본에 반영했다.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 역시 전형적이지 않고, 박해일과도 닮은 모습이었다. 해준 캐릭터를 구상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나? 당연히 박해일이라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각본 써보자고 작가에게 제안했기에 그와 닮았다. 예를 들면 어느 영화에서 보여준 박해일이 아니라 실제 박해일, 담백하고 깨끗하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그런 인간 박해일을 이 캐릭터에도 입히자는 생각을 하고 썼다. 그렇기에 해준에게 그런 모습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일단 난 해준은 경찰공무원이라는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 그래서 시민에게 봉사하는 사람, 거기에서 모든 게 출발한다고 봤다. 그래서 항상 수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야 한다. 그것이 예의다. 또 용의자일지라도 무죄 확정 전까지는 공정하게 다루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렇지만 막 뛰어다니며 범인을 잡아야 하니까 운동화를 신되 예의상 검정 운동화를 신는다. 좀 고지식한 사람이 자기의 윤리에서 반하게 되는 딜레마와 고통이 커질 거라 봤다.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헤어질 결심'
▷ 영화 삽입곡이자 엔딩 테마곡인 '안개'는 '헤어질 결심'의 분위기를 나타냄과 동시에 중요한 키워드인 듯하다. '안개'라는 곡이 어떤 영감을 줬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게 1960년대 발표된 곡이다. 나는 1963년생인데, 발표된 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요 중 하나다. 정훈희씨는 제일 좋아하는 여자 가수다. 그런데 우연히 송창식씨가 포함된 트윈폴리오도 이 곡을 커버해서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거기서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출발했다.
특히 가사 중에서도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가사가 특히 더 심금을 울렸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시야가 흐릿할 때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열심히 보겠다는 그런 의지, 그런 노력, 그런 걸 느꼈다. 그래서 이 감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안개도 나오고, 녹색인지 파랑인지, 파랑으로 보였다 녹색으로 보였다 하는 색깔도 나오고, 여러 가지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상태나 사물이나 관계나 감정 같은 게 있다. 그것이 다 이 노래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 기자간담회 당시 용의자와 형사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클리셰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피하고자 어떤 점을 고민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1부에서 사실 의심 담당은 고경표가 맡은 수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해준은 그 경계선에 있다. 어떤 사람이 의심스럽다고 해서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벗어나 부당하게 대하면 안 된다, 특히 어떤 증거도 없이 선입견에 근거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공무원으로서 굉장히 바람직하고 공정한 태도 그리고 사적으로 '뭔가 좀 끌린다' '저 사람이 궁금하다' 그래서 생기는 부적절한 감정의 해이 같은 것이 그사이 어딘가에 있는 거다.
그리고 분명히 자신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고,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사람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가서 관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참 애매한 상태에 있는 거다. 그게 이 관계의 매력이라고 봤다. 관객도 보기에 따라 다른 거다. 관객이 자신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에 따라 해준의 행동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하면서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서래는 정말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남편이 죽어도 놀라지도 않고 바로 일하러 나가고 반지도 빼고 있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의심 가는 사람이지만, 그 남편은 아내를 폭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죽은 남편이 삶을 방해할 수 없다는 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당한 말이다. 오히려 해준은 그런 데서 서래에게 더 끌리게 된다. 직업윤리가 투철하고 프로페셔널한, 자기 자신과 같은 종족인 거다. 의심이 가게 하는 요인인 동시에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적으로 끌리게 하는 요인이 되는 거다.
이 영화가 만약에 굳이 나누자면 1부, 부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끝났다면 많이 보아온 장르영화가 됐을 거다. 보통 하나의 필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영화의 2부가 새롭게 시작된다. 수사관을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했던 또는 팜므 파탈이라고 생각했던 서래가 장르의 관습, 클리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차별화를 하려고 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