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브로커 상현 역 배우 송강호.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우리랑 행복해지자꾸나." 낮에는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는 브로커인 상현은 어느 날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 우성을 몰래 데려온다. 하지만 애초의 계획과 달리 이튿날 아기의 엄마 소영(이지은)이 찾아오자 아기를 잘 키워줄 양부모를 찾아주려는 선의였다고 에두르며 거래에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상현은 적자와 빚만 남은 세탁소 운영을 뒤로한 채 낡은 봉고차에 파트너인 동수(강동원), 아기 우성, 아기 엄마 소영을 태우고 거래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거래 불발에 이들의 여정은 점점 길어지고, 그만큼 모두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한국 영화 연출작 '브로커'에서 자칭 선의의 브로커 상현으로 변신한 송강호는 유연하게 위기를 모면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페이소스 짙은 연기로 자연스럽게 표현해 냈다. 지난 8일 화상으로 송강호를 만나 '브로커'의 여정에서 만난 상현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연기한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알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상현
▷ 드디어 '브로커'가 칸에 이어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개봉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떤가? 어떻게 봐주실지 긴장도 되고 설레는 마음도 있다. 아무래도 상업적인 재미보다는 각박하고 어려운 시간을 관통했던 시기에 따뜻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걸 너그러이 즐기고 받아주시면 어떨까 이런 기대는 있다.(웃음) ▷ 직접 연기하며 경험한 상현은 어떤 인물인가? 그를 어떻게 그려내고자 했는지도 궁금하다. 상현은 짐작은 되지만 전사가 구체적으로 소개되거나, 상현이 마지막에 사라지고 나서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묘사되면 재미없을 거 같더라. 상현은 뭔가 알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 인물로 남겨지길 원했다. 그래서 더 가리고 더 궁금해졌으면 했다. 그것이 '브로커'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감성을 표현하는데 가장 충실한 형태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연기하면서 그런 쪽에 초점을 맞췄다.
▷ 인물들의 여정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따라가며 촬영했다.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정을 축적하면서 연기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첫 장면부터, 부산에서부터 거의 똑같은 시차로 진행해 나갔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같이 여행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좀 더 편하고 더 실감되게 쌓아가지 않았나 싶다. 아마 감독님이 그런 지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신 거 같다. 그분의 연출 스타일이다. 배우들에게는 연기하는 데 있어 감정적으로 이점이 있다.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감독의 디테일이 끌어낸 상현의 감정들
▷ 영화 속 소영이 모두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해당 장면 촬영 당시 상현으로서 소영의 대사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내 딸에게 또는 상현이라는 인물이 어릴 때 못 들어봤던 말이라 자신에게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 말 자체가 주는 울림, 여운, 그리고 현장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묘한 떨림들, 이런 것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던 거 같다. 관객분들이 보시고 '저 숨소리와 표정은 뭘까?' '본인에게 한이 맺힌 말처럼 들렸을까?' '아니면 조금 전 만나고 온 딸에게 차마 못 했던 말로 들었을까?' 등 자유롭게 상상하면 된다.
▷ 영화 후반에 카페에서 상현이 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딸이 상현을 향해 "진짜?"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건 감독이 현장에서 만든 대사다. 연기한 후 감독에게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말했다는데, 당시 연기를 하면서 "진짜?"라는 대사 한 마디로 어떤 감정을 느꼈던 건가? 원래는 "진짜?"라는 대사가 없었다. 아마 나도 모르게 감독님이 딸 역할 배우에게 촬영할 때 시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연출을 가끔 하신다고 한다. '어느 가족'에서도 안도 사쿠라 배우의 취조실 신의 경우도 사실 대본에 없는 대사를 현장에서 바로 감독님이 앞에서 불러주니까 사쿠라 배우가 그 대사에 감정을 실어서 명연기가 나왔다. 나도 "진짜?"란 대사를 통해 상현의 잠재된 서러움이랄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달픔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감독님의 디테일한 감정 연출, 상대 배우의 연기가 내가 그렇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 '브로커' 속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배두나 배우와 이주영 배우가 영화 후반부에 잠복 중인 차 안에서 이야기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주영이 배두나에게 "우리가 진짜 브로커인 것 같다"는 내용의 대사를 하는데, 그 대사가 이 작품을 가장 뜨겁게 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인 '진정 브로커는 누굴까'를 봤다.영화 '브로커' 브로커 상현 역 배우 송강호. CJ ENM 제공 송강호가 본 배우 배두나, 강동원 그리고 이지은
▷ 배두나와는 이번 작품까지 총 4개의 작품을 함께했다. '복수는 나의 것'(2002)부터 네 작품을 했다. 여배우 중 제일 많이 함께 작업했다. 20년 전 그때 정말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배우 배두나가 '브로커'를 할 때는 베테랑이 되어 노련한 연기를 선보였다. 20년 동안 배두나 배우가 훌륭한 작품과 연기를 쭉 해왔던 게 차곡차곡 내공으로 쌓였다. 정말 옆에서 지켜보는데 '어떻게 저렇게 노련한 배우가 됐지?' '저 내공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감탄을 정말 많이 했다. (*참고: 송강호와 배두나는 '복수는 나의 것' '괴물'(2006) '마약왕'(2018)에서 호흡을 맞췄다.)
▷ 강동원과도 '의형제'(2010)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강동원 배우는 막냇동생 같다. 외모와 다르게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정말 소탈하고 뚝배기 같은 인간성을 잘 알기에 내가 옛날부터 너무너무 좋아했다. 또 같이 연기하면 정말 즐겁다. '의형제'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고 배우로서도 '의형제'에서도 멋있게 잘했고 좋았지만, '브로커'를 보면 얼마나 성숙하고 깊이감이 생겼는지 알 거다. 그래서 너무너무 뿌듯하고 대견스럽고, 또 멋진 후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행복하다.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소영 역의 이지은과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현장에서 함께한 이지은은 어떤 배우였나?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부터 시작해서 옛날부터 팬이었다. '나의 아저씨'까지 워낙 놀라운 연기를 보여줘서 같이 작업하게 돼서 너무 좋았다. 노래는 잘 모르지만 가수로서의 성공이 그냥 이뤄지지 않았구나 싶었다. 일에 대한 태도, 깊이, 진중함 등이 똘똘 뭉친 친구다. 대사 하나하나가 얼마나 내적으로 많은 준비를 거친 뒤에 입으로 나오는지를 현장에서 분명하게 느꼈다. 아마 이지은 배우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할 거라 장담할 수 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