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여야가 당권 경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이번 당대표는 2024년 총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과거에도 여야 당대표가 공천권을 통해 당 내외 주도권 싸움을 이어가거나 국면 전환을 노렸듯,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특정 계파 간 권력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공천권 쥔 당대표…與 친윤계, 野 친명계 '눈독'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우크라이나 방문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오는 24일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관련해 징계 논의에 착수한다. 당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윤리위 결정에 따라 이 대표의 거취가 결정되면서 내년 6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친윤(親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여의도 세력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친윤으로 불리는 정진석 의원은 연이어 이 대표가 추진하는 '혁신위원회의 공천 개혁 논의'나 '우크라이나 방문'을 "이율배반적, 자기 정치" 등으로 비판하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 패배 이후 당내 구심점이 실종된 상태다. 결국 22대 총선 공천권을 쥔 당대표 자리를 두고 친명(親이재명)계와 친문(親문재인)계가 치열하게 다투는 각축전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의원의 경우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총선을 앞두고 당권을 잡아 여의도에 '자기 사람'을 심은 뒤 차기를 노릴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전당대회를 치를 비상대책위원회에 최근 친문계 인사가 다수 포진한 것도 친명계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3김' 때도 '제왕적 총재'가 공천권 행사
한국 정치에서 공천권은 보스·계파 정치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1963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당시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당헌을 만들었다. 당 지도부가 포함된 공천심사위원회가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투표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공천 구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에도 이들은 '제왕적 총재'로 군림해 사실상 공천권을 행사했고, 지역 정당 구도의 형성으로 특정 지역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금배지'를 달 수 있었다. 3김 시대가 저물고 '계파정치'가 자리 잡으면서 '총재'라는 이름 대신 '당대표'라는 새 직함이 탄생했다.
당대표의 '전략공천', 누군가에는 '공천학살'
'제왕적 공천'은 지금도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황교안 대표는 측근 민경욱 의원을 살리기 위해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까지 번복해가며 인천 연수을 지역구에서 뒤집기 공천, 이른바 '호떡 공천'을 강행했다. '황교안 체제 보호를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당시 문재인 정부 국정안정론과 맞물리며 민 의원은 물론 통합당도 선거에서 대패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시절에는 18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서 친박(親박근혜)계와 친이(親이명박)계가 각각 집단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되면서 당이 내홍에 휩싸이기도 했다.
전략공천이 누구에게는 공천 '학살(배제)'이 돼 당에 화살로 돌아오기도 한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동교동계 인사들이 사실상 공천 결과에 반발해 '정통민주당'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진보 지지층 표심이 분산됐고, 당시 새누리당이 반사 이익을 보는 등 역풍을 맞은 사례도 많다.
행정부 수반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당대표를 '패싱'하고 공천을 좌지우지한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향식 공천(오픈프라이머리)'으로 공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계가 합작해 강성인 이한구 전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에 앉혔다. 그 유명한 '진박감별사', '옥새들고 나르샤' 등의 신조어가 그때 탄생했다. 결국 공천 개혁은 물건너갔고 사실상 전략공천과 다름없는 '우선 추천식 공천'이 이뤄지며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22석을 얻는 데 그쳤다.
'공천권 행사' 옛말이라지만…권력자 입맛 맞게 운용
공천권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최근 벌어지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집안싸움은 결국 공천권을 누가 가지냐의 전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사례처럼 여당은 대통령이 알게 모르게 공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이들로 당을 구성해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당내 최다선 정진석 의원간 감정싸움도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의 서막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여권내 잠룡들이 슬금슬금 공천권에 눈독을 들인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차기 당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가 정해진다는 점에서 친명계와 친문계간 계파 갈등이 치열하다. 특히, 의회 기반이 약한 이재명 의원은 당대표를 맡아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해 내 사람을 심어야 당내 지지기반을 넓히고, 이는 다시 차기 대선 재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으로 구심점을 잃은 친문계 입장에서는 이에 견제구를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천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거지면 각 당은 과거와 달리 공천 시스템이 정비돼 당권을 접수한다고 마음대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직접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공천룰을 어떻게 바꾸느냐, 공천관리위원장을 누구를 세우느냐 등 운영의 묘를 어떻게 살리냐에 따라 얼마든지 당권을 접수한 이의 입맛에 맞게 공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