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제공그동안 취재 경험을 살려 엔진 소리가 시끄러울 줄 알고 귀마개를 준비해 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40톤이 넘는 '레드백(Redback, 붉은배과부거미)' 장갑차가 시동을 거는 소음은 귀가 아프지 않을 정도였다. 전쟁터는 원래 시끄럽다지만 장갑차가 내는 소음이 적어야 살아남기도 좋은 법이다.
취재진 앞에서 기동시범을 보이는 레드백 장갑차는 승무원이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유자재로 장애물을 타고 넘었다. 장갑차 꽁무니가 보이는가 싶더니 해치가 열리고 기계화보병 8명이 완전무장 상태로 튀어나왔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27일 강원도 홍천 11기동사단 매봉산 훈련장에서 한화디펜스 주최로 열린 레드백 장갑차 공개행사에 참석해 기동시범을 보고, 장갑차 위에도 직접 올라가 보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아쉽게도 취재진이 안에 탄 상태로 주행을 하지는 못했다.
호주군 시험평가 완료, 미군 차기 장갑차 사업에도 도전장
레드백 장갑차 앞쪽에 달린 독거미 모양 카메라. 김형준 기자레드백은 우리 육군 K21 보병전투장갑차의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궤도장갑차다. 현재 호주 육군이 진행하는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인 Land 400 Phase 3 요구사항에 맞게 제작해, 독일 라인메탈 디펜스 '링스' KF41과 함께 최종 후보로 선정된 상태다.
'코알라 지키는 독거미'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호주 정부는 납품받는 시제품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10개월 정도 시험평가를 진행했고, 최종 승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올해 가을쯤으로 예상된다. 차량·부품 직접 획득비용과 훈련 등 지원 부문, 시설 투자·건립, 추가 성능개량 등을 모두 포함해 호주 정부가 배정해 둔 예산은 14~20조원 정도다.
국방일보 제공
이 사업은 표면적으론 호주 육군 장갑차를 도입하는 사업일 뿐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미군이 기존 M2/M3 브래들리 장갑차를 대체하기 위해 진행하려는 50조원 규모 OMFV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호주 육군에 채택되면 당연히 미군에 채택되기에도 유리하다. 방산은 사람 목숨이 달린 무기를 다루는 만큼 신뢰성을 매우 중시해 보수적이며, 한 나라 군대가 채택하면 다른 나라 군대에 채택되기도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여름 '수출용 무기체계 군 시범운용'의 일환으로 레드백을 올 4월부터 2개월 정도 현역 육군 부대에서 시범운용하는 계획을 확정하고, 육군 11기동사단이 선정돼 약 두 달 정도 직접 부대원들이 몰아 봤다.
호주 요구는 '생존성'…소음 적은 고무 궤도, 열 차단, 사방에 카메라와 레이더
국방일보 제공한화디펜스는 레드백을 개발하면서 '생존성'을 중요한 코드로 삼았다. 일단 호주에서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비는 망가지면 새로 도입해도 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 때문이다.
먼저 소음을 낮췄다. 장갑차량은 '시끄럽다'는 선입견이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레드백은 K9 자주포가 사용하는 파워팩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을 켠 장갑차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도 대화가 가능했다.
한화디펜스 제공궤도도 고무를 사용했다. 철제 궤도는 손상되면 현장에서 그 부분만 곧바로 교체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끄럽고 무겁다. 금속피로가 쌓이는 탓에 일정 거리를 주행하면 궤도를 교체해야 한다. 물론 교체해야 하는 점은 고무 궤도도 마찬가지지만 버틸 수 있는 주행거리가 훨씬 길고, 조용하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1년 가까이 진행된 시험평가 당시 KF41은 궤도를 몇 차례 교환했는데, 레드백은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며 "시험평가 당시 1만km 정도를 주행했기 때문에 한국에 가져온 뒤에는 한 번 교환했다"고 귀띔했다. 업체는 파워팩과 현수장치, 그리고 고무 궤도를 조합해 철제 궤도 대비 약 70% 정도 소음이 줄어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방위사업청 조현기 기동사업부장(육군준장)도
"우리 장병들이 이 장비를 운용해봤는데 기존 장비들보다는 좀더 부드럽다, 그리고 실내에서 느끼는 소음 또한 많이 적다고 이야기했었다"고 말했다.
레드백 장갑차 포탑 옆면. 연막탄 발사기와 대전차미사일 등이 보인다. 김형준 기자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대전차미사일은 큰 역할을 했다. 전차에 위협적이면 당연히 장갑차에도 위협적이다. 한화디펜스는 레드백을 개발하면서 열 차단 장치도 장착, 열상장비나 미사일의 시커(열추적장치)가 장갑차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방에 카메라를 달아 주변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운전을 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차 바로 옆 상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레드백에 장착된 상황인식 카메라와 '아이언 비전' 헬멧 전시기는 차 주변 360도 상황을 촬영해,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합성한 뒤 지휘관이 쓴 헬멧으로 전송한다.
전투기 레이더로 활용되는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이용해 적 대전차미사일 등을 사전에 포착해 요격하는 '아이언 피스트' 능동방어기술도 탑재돼 있다. 이 기술은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의 기술인데, 국내에서도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호주군이 탑재를 요구했다고 한다.
레드백 장갑차 포탑에 있는 광학장비와 대전차미사일. 광학장비는 적외선(IR) 야간투시, 열상, 거리측정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김형준 기자K21보다 두 배 가까이 무거운 만큼, K21에는 없는 대전차지뢰 방호 능력도 갖추고 있다. 주요 무장은 미국 노스롭 그루먼의 MK44S 부시마스터 2 30mm 기관포와 7.62mm 기관총, 이스라엘 라파엘의 스파이크 LR2 대전차미사일이다.
취재진은 화려한 기동시범을 지켜본 뒤 장갑차 위에 직접 올라가 봤다. 광학장비와 승무원 해치, 대전차미사일이 눈에 띄었다. 대전차미사일 2발은 평소에는 포탑 안에 수납돼 있다가 필요할 때 튀어나오는 방식이었다.
레드백 승무원들이 탑승하는 해치.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트 높이가 낮아, 앉으면 바깥에 노출되지 않는다. 김형준 기자곧이어 승무원들이 앉는 시트에 앉아보려고 했는데, 시트 높이가 생각보다 낮았다. 그전 장갑차들처럼 해치를 열고 바깥을 내다보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없었지만 근접방어용 7.62mm 기관총도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로 작동된다. 요구에 따라 12.7mm 기관총도 장착할 수 있지만, 호주군 시험평가 때 호주군 기관총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국내로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래 다른 장갑차들도 2003년 이라크전 전까지는 단차장이 직접 장갑차 위로 몸을 내밀고 시야를 확보하며 지휘하곤 했다. 도시 게릴라전에서 몸을 내밀었다가 저격당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너무 많아지고, IT기술이 발전하면서 RCWS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호주군 선정 여부는 '몰라'…그래도 레드백 개발한 기술로 다른 곳도 도전
김형준 기자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어떤 결단을 내릴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독일 KF41도 상당히 좋은 장갑차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은 국가가 구매자인 만큼, 정치적 배려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가 우위를 장담할 수는 없다.
때문에 한화디펜스는 레드백을 개발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들로 현행 K21 장갑차의 성능개량, 또는 이를 대체할 차기 장갑차까지 노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짜고 있다. 무기체계는 한 번 도입했다고 끝이 아니라 꾸준히 성능개량을 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현대 전장에 뒤처진다.
국방일보 제공
조현기 기동사업부장은 "레드백 획득을 육군본부와 함께 검토하고 있는데, 만약 신속 연구개발 제도를 활용해서 우리 요구사항을 반영해 개발한다면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해서 운용할 수 있다"며 "레드백은 K21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개발했고, 수출형이라지만 우리 요구를 반영해서 한국형 레드백 Block 1 같은 형태로 개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디펜스 이부환 해외사업본부장도 "(레드백에는 이스라엘 기술이 들어갔지만) 능동방어 기술을 현재 개발하고 있고 우리 장갑차에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세대 장갑차에는 아마 국내산 능동방어 시스템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미국 OMFV 사업에 도전할 때는 이스라엘 라파엘의 '트로피' 능동방어 시스템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각 나라별로 요구조건이 다르기에 그 나라에 맞는 능동방어 시스템을 적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