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인천 계양구 오조산공원에서 열린 '이재명 후보 낙선운동 집회' 참가자들이 손펫말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주영민 기자인천 계양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상대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낙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홍보해 논란이 예상된다.
박상은·오성규 등 국힘 정치인 참여·연설한 '이재명 낙선운동 집회'
윤형선 후보는 지난 17일 언론에 "계양구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낙선 운동 집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기자 여러분 취재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며 문자를 배포했다.
윤 후보가 문자에서 밝힌 집회는 지난 18일 오후 6시 인천 계양구 오조산공원에서 열린 '계양구 주민 집회·행진'이란 명칭으로 열렸다. 주최 측은 집회 목적을 '계양구민의 화합'이라고 적었다. 집회 신고를 접수한 인천 계양경찰서 측은 "해당 집회 신고는 특정 단체가 아닌 계양구 주민 개인이 신청했다"고 말했다. 오조산공원은 이재명 후보 선거사무소로부터 직선거리로 25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형집회가 가능한 장소다.
20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회에는 오성규(69) 전 자유한국당 인천 계양구 갑 당협위원장과 그의 친형인 오영규(74) 전 새마을운동 계양구지회장, 박상은(72) 전 한나라당 인천 중구동구옹진군 국회의원 등이 참여해 연설했다. 대부분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연설은 주로 이재명 후보를 연상케 하는 사례를 들며 비난하거나 보수 정치이념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들 중 일부는 "우리와 함께 그들을 낙선운동하자고 말하면 선거법 위반이니 그 사람이 이 지역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텃새가 되지 않게 끔 여러분께 호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 전 위원장은 행진하는 참가자들을 인솔했다.
'법인카드 NO·방탄출마 반대' 등 손팻말 들고 행진한 참가자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명분도 연고도 없는 후보, 진실을 덮고 방패 삼으려는 후보를 원래 사는 곳으로 보내자", "계양구와 영원토록 삶을 함께할 후보, 계양구를 골목골목 누빈 내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후보, 이 지역 정서를 잘 아는 후보를 지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이들은 "계양은 법인카드 NO, 계양은 피의자 NO", "계양이 호구냐! 방탄출마 반대", "대장동게이트 수사거부하는 자가 범인" 등이 적힌 손펫말을 들고 주변을 행진했다.
이 집회는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신자유연대 김상진(53) 대표가 야외스피커 등 음향장비를 지원한 행사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선관위 조사원에게 "선거운동하러 나온 게 아니다. 돈 받고 장비지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신자유연대는 다음 달 11일까지 이재명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윤석열 정부는 범죄자들을 소탕하라'는 내용의 집회를 열겠다고 계양경찰서에 신고한 상태다.
이 단체는 지난 18일 밤 이 후보 캠프 선거사무소 인근에 "윤석열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하라", "법인카드 도둑X, 도둑X 구속수사하라"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대거 내걸어 주민들의 민원을 야기하기도 했다.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들 현수막의 불법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언론에 보낸 문자 캡처선관위 "특정후보 지칭 아닌 듯…선거법 위반 아냐"
이 집회는 사실상 이 후보의 낙선을 선동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주최 측이 공식 행사 명칭을 '계양구 주민 집회·행진'으로 정한 건 이 행사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자가 선거운동을 한 경우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은 낙선운동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운동 과정에서 후보의 소속정당과 이름, 사진 또는 그 명칭이나 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나타내는 현수막이나 인쇄물, 어깨띠 등의 표시물을 드러내거나 서명운동, 불법행렬 등의 행위를 수반할 경우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 집회는 "범죄자 도망자 구속촉구 집회" 등의 제목으로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법원은 낙선운동에 대해 특정 후보를 선거에 떨어뜨리는 목적으로 행하는 활동이지만 실제 효과나 행동방식에 있어서는 다른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운동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낙선운동의 선거법 위반 여부는 해당 행위를 통해 유권자들이 낙선시키고자 하는 후보를 연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인천선관위는 해당 집회에 대해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해당 집회에 사용된 손펫말이나 현수막이 특정 후보를 지칭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발언도 특정 후보의 낙선을 위한 선거운동 발언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하루 앞두고 열린 행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했지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이런 집회가 열린다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는 000 안 찍어 손팻말'도 선거법 위반"…봐주기 의혹도
일각에서는 선관위의 판단이 봐주기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해당 집회에 사용된 손펫말의 문구라면 충분히 특정 후보를 연상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낙선운동을 했다가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확정받은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기본적으로 선거운동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면서도 "이번 선관위의 판단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이 이같은 주장을 하는 건 2016년 총선 당시 낙선운동을 유죄라고 판단한 활동이 손펫말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평화복지연대, 참여연대 등 전국 1천여개의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집중낙선대상자 35명를 선정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최악의 후보 10인'을 선정하는 여론조사를 했다.
이후 최악의 후보로 선정된 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 앞길에서 '현수막, 확성장치, 손펫말' 등을 사용해 12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빙자한 선거운동을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총선 당시 낙선운동을 벌인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가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총선넷 유권자위원회 종합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나는 000 안 찍어!"라는 손팻말이 보인다. 황진환 기자이들은 사실상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구멍 뚫린 손팻말'은 마지막까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쟁점은 구멍 뚫린 손팻말이 특정 후보를 지칭한 인쇄물이었냐는 거였다. 당시 이들은 특정 후보자의 이름이나 사진없이 창문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형태의 손팻말에 "나는 000 안 찍어"라는 문구를 넣어 활동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피켓을 든 목적이나 장소, 피켓을 들면서 발언한 내용 등을 종합하면 반대의 대상도 특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즉 낙선운동을 하는 대상자 또는 그 특징을 손팻말에 전혀 특정하지 않았지만 집회가 열린 장소 등을 종합하면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광호 사무처장은 "당시 선관위의 안내에 따라 낙선운동을 벌였고 선관위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이후 갑자기 검찰 수사가 이뤄지면서 기소됐고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여당 후보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면서 겪은 일인데, 윤석열 정부 아래 처음 치른 이번 선거에서 야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고발했을 때는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이재명 낙선운동 집회'가 인천 계양구 오조산공원에 상대후보인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행사를 마친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주영민 기자 윤형선 "집회 몰랐다…참모진이 자체 판단해 문자 보낸 듯"
윤 후보 측이 낙선운동 계획을 미리 알고 이를 언론에 알린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이 집회가 윤 후보 입장에서 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직전에 열린 사전선거운동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윤 후보에게 유리한 집회라고 판단하지 않고서야 선거운동이 아닌 집회를 언론에 미리 알릴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윤 후보와 캠프 관계자는 모두 해당 집회에 대해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해당 집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집회 장소를 지나간 건 우연"이라며 "캠프 참모진이 정보를 미리 알고 자체적으로 판단해 문자를 보낸 것인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윤 후보의 일정관리 담당자는 "후보가 직접 방문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집회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