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두고 '봉이 김선달'에 비유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 1월 2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논란 발언에 사과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검찰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받은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고 내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대 논란이 된 사건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표면적으로 현직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한계, 종교계의 반발을 샀던 사안 등 첨예한 쟁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면책특권의 예외로 규정한 판례가 이번 사건에 적용 가능한지 이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실제 현직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에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때문에 검경의 엇갈린 판단은 또 다른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후의 시점에서 보완수사 요구가 주된 무기가 된 검찰과 수사권의 상당부분을 갖게 된 경찰 사이의 기싸움 아니냐는 것이다.
정청래 사건 검경 엇갈린 판단…'검수완박' 시기 묘한 기싸움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정 의원을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고발한 사건과 관련 지난 3일 불송치 결정했다. 하지만 서울 남부지검은 정 의원 사건을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며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종민 기자
지난해 검경수사권조정 시행에 따라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하더라도 기록을 검사에게 송부해야 하고, 검사는 90일 동안 기록을 검토한 뒤 불송치가 부당할 때는 재수사 요청을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에,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대면서 불교계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에 서민민생대책위는 지난해 11월 정 의원을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남부지검에 고발했으며 사건은 영등포서로 이첩돼 수사가 진행돼 왔다.
경찰의 불송치 근거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친고죄'다. 명예훼손의 경우 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인 만큼, 면책특권에 해당되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또 모욕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직접 피해자 고소가 없이 6개월이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 제45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른바 '면책특권' 규정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행위가 모두 면책특권에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대법원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명예를 훼손 당했다며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면책특권을 인정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면책특권 범위에 한계를 규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발언 내용이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정 의원이 자신의 발언이 명백히 허위라는 점을 알았다면 면책특권 범위에서 벗어나 명예훼손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검경이 맞부딪히는 지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의원의 발언의 '허위성'과 '의도성'을 따지기 위해선 당시 발언을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 의원은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 매표소의 위치를 문제 삼으며, "매표소에서 해인사 거리가 3.5km, 매표소에서 내장사까지 거리가 2.5km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있는 곳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다 돈을 내야 하나. 합리적인가. 제가 봤을 때 이건 말이 안 된다"며 "3.5km 밖에서 표를 끊고 통행세를 내고 들어간다. 그 절에 안 들어가더라도 내야 한다.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요"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됐지만, 국립공원 내 일부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계속 받아 일부 등산객들의 반발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에 대해 해인사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은 합법적으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며 "해인사는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지방문화재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인사를 포함한 가야산 일원 1000만평이 모두 '명승 62호'로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라고 밝혔다.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된 합법적 일을 마치 부당하게 돈을 받는 것처럼 주장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해인사는 또 "해인사 매표소는 문화재구역을 초입에서 1km 지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며 정 의원의 거리 주장도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의 발언이 오류가 있고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 행위를 '불법'처럼 주장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논리와, 등산객 등의 주관적인 불만 사안을 전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일 뿐 명예를 훼손할 의도나 허위성은 없었다는 논리가 대립하는 셈이다.
발언 맥락과 의미로 판가름 날듯…반의사불벌죄도 '변수'
전문가들은 명예훼손 요건이나 면책특권 범위를 따져보기 위해선 세세한 발언 내용보다는 발언 자체의 의미와 취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박경신 로스쿨 교수는 "검찰이 정 의원이 의도성을 갖고 발언을 했는지 알아보라는 취지를 갖는 것 같다"며 "일부러 사찰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게 하려고 발언했는지 여부 등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박 교수는 "정 의원의 발언은 허위사실이라기 보다는 의견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허위사실의 적시라기보다 문화재 관람료로 인해 폭리를 취한다는 일종의 '가치 판단' 영역이기에 면책특권에 해당하고 명예훼손에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허위성과 의도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기에 애매모호한 지점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라는 점도 또 하나의 변수다. 대부분 반의사불벌죄의 경우엔 수사기관에 처벌 불원서가 제출되었는지 여부로 결론이 가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찰이나 스님들이 직접 고발을 하지 않은 제3자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다. 피해자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처벌 불원서를 받는다면 결론은 더욱 깔끔해지지만, 이 사건에서 피해자로 분류되는 사찰이나 스님들 중 누구에게 처벌 불원서를 받아야 하는지도 경찰로선 난감한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재수사 요구가 이러한 부분을 확인하라는 취지 아니냐는 분석도 잇따른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윤창원 기자
앞서 정 의원은 사건 당시 논란이 되자 사과의 뜻을 밝히기 위해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아 왔지만, 조계사 측은 "사전 약속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 발길을 돌렸다.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정감사 기간에 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표현상 과했던 부분에 대해 불교계와 스님들께 심심한 유감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지만, 불교계 측이 공식적으로 수용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결국 정 의원 사건을 둘러싼 검경의 줄다리기는 '검수완박' 국면이 더해지며 묘한 기류를 풍기는 모습이다. '검수완박'으로 인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6대 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부패·경제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대폭 축소됐다. 법안이 시행되는 오는 9월부터는 경찰이 수사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검찰이 선제적으로 기싸움을 택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