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역세권과 재개발 지역. 멀리 여의도가 보인다. 연합뉴스새 정부의 청와대 완전개방과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종로의 '정치1번지' 명성은 불투명해질 운명이지만,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여야 중앙 당사가 위치해 또다른 '정치1번지'로 불리는 영등포는 서울 민심의 변화를 새롭게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지역이다.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들어선 영등포역은 '서울로 가는' 핵심 관문이자 서울 위성 공업단지의 핵심 공장들이 즐비하던 곳이다. 수 많은 자재들과 지역 산물들이 남도 지방의 사람들과 함께 인근 노량진역과 영등포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던 지역 토박이와 꿈을 싣고 상경하려는 지방 사람들이 섞여 이 곳은 영등포구 설치 이후 인구는 47만 명에 달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공장 이전과 재개발, 인구감소로 인해 약 37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신 편리한 교통과 지리적 특성, 아파트와 쇼핑센터 등 편익시설이 들어서며 그 빈 자리를 젊은층이 메워가고 있다.
채현일 현 구청장 단수공천…국민의힘, 단수·경선 놓고 내홍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21일 재선출마를 결정한 채현일 현 영등포구청장과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정태 전 시의원 중에서 채 구청장을 단수 후보로 공천하면서 민주당은 영등포 수성을 위한 채비를 갖췄다. 채 구청장도 22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채 구청장은 출마 입장문에서 "서울 서남권을 대표하는 영등포구의 미래 100년의 완성을 위해 재선에 도전한다"며 "구정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해 영등포구가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현역 구청장으로 영등포구 골목골목, 사업 하나하나를 모두 꿰고 있다"며 "업무 파악에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재선 즉시 구정 업무가 가능한 유일한 후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국회 보좌관, 박원순 서울시장 정무보좌관 등을 역임한 그는 문재인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에 발탁되어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았다. 민선7기 6·13 지방선거에서 영등포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선거 후보. 채 후보 측 제공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최호권 전 청와대 행정관, 양창호 전 청와대 행정관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공천을 두고 내홍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번 지방선거는 경선을 기본으로 한다는 당론과 달리 영등포구청장 후보에 단수공천한다는 소식이 확산하자 당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호권 예비후보와 양창호 예비후보간 경선이 예고됐지만, 22일 서울시당의 A 공관위원이 "지역당협 위원장들의 의견이 최호권 후보 추천으로 모아져 공관위가 단수공천을 논의 중"이라는 발언이 흘러나오면서 양창호 예비후보 측에서 반발했기 때문이다.
CBS노컷뉴스가 해당 발언 당사자로 알려진 A 공관위원에게 사실관계를 문의하자 해당 공관위원은 "누구에게도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누군가 조작했거나 추정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이어 "공관위원 9명이 중앙당의 공천운영지침에 따라 엄중한 심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심사가 진행 중이어서 "경선이나 단수공천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양 후보 측은 국민의힘 중앙당에 재심청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계파간 갈등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최호권·양창호 영등포구청장 선거 예비후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최 예비후보는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제34회 행정고시 합격, 영등포구 문화공보실장, 서울시 시장 정책비서관, 이명박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2014년 주인도대한민국대사관 총영사를 역임했다.
양 예비후보는 연세대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6년 서울시의원을 거쳐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2010년, 2014년, 2018년 내리 영등포구청장에 도전했다 낙마했지만 오랜 지역 활동이 강점인 후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란…영등포 20대 대선서 보수색 뚜렷
영등포의 최대 화두는 KDB산업은행 여의도 본점의 부산 이전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기간 부산을 방문해 기존 공약에 없던 산업은행 이전을 약속한 것이다. 정치권과 지역 민심이 요동쳤다.
당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는 반대 입장"이라고 했지만, 윤 당선인을 만나 "가급적 옮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피치 못하게 옮겨야 한다면 미래 금융시설과 기능을 여의도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여의도가 금융허브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며 다소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채현일 구청장도 "금융은 분산이 아닌 집중이 절실함에도 과거 한국거래소 등 금융기관의 지방 이전 사례와 같이 금융 분산화는 업무 비효율만 낳고 국제금융경쟁력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며 이전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각종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밀집한 여의도. 영등포구청 제공2009년 정부는 서울과 함께 부산을 '금융 중심지'로 선정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함구하고 있다. 윤 당선인도 지난 22일 부산을 방문해 관련 질의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지방선거에 민감한 이슈에 대해 정작 '가타부타' 말을 아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등포 민심은 지난 선거전을 돌아보면 판세를 가늠해볼 수 있다.
20대 대선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11만6443표에 그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13만4846표에 미치지 못했다. 정권교체 바람이 더 컸다는 반증이다. 다만 보수정당이 우세일때 국회의원과 지방선거에서도 우위를 점했고 진보정당이 우세일때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였다.
현재 영등포구의회는 민주당이 8석, 국민의힘 7석, 무소속 1석, 공석 1석으로 팽팽하다. 실제 13~18대 총선에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결과는 3:3(갑구) 또는 4:2(을구)로 보수정당이 경합우세를 보였지만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이후 대부분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며 진보정당계가 경합 우세를 나타내고 있다. 인구가 밀집한 당산동과 문래동에 젊은층의 유입이 늘면서 팽팽한 균형을 깨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부동산에 민감…2030 젊은층 유입 증가 '변수'
이번 20대 대선에서 2030 '이대남'의 보수화가 주목을 받은 가운데 지역 민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거리다. 강남3구, 용산구, 성동구에 이어 6번째로 국민의힘 지지세가 뚜렷해졌다. 재건축을 앞둔 구축 아파트가 즐비하고 초과이익환수제 등 부동산 정책에 민감한 여론이 반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정권교체의 높은 열망에도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가 내놓은 장관 후보자들이 대부분 60대, 이명박 정권시절 인사, 부동산 논란, 자녀 허위 스펙과 불공정 논란이 잇따라 터져나오자 윤 당선인이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의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새롭게 떠오른 젊은층의 핫플레이스 '영등포' 민심도 출렁일 전망이다.
영등포 쪽방촌의 모습. 황진환 기자
채현일 민주당 후보는 가장 시급한 영등포구 지역 현안으로 코로나19 이후 지역 경제 회복과 함께 신속한 재개발·재건축 추진 및 쪽방촌 공공주택 건립,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메낙공 공원화 추진 등을 꼽았다.
최호권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민주당 구청장 독주를 마감시키겠다"며 "고품질·고품격 주거타운 조성, 여의도 LH부지 국제학교(외국인학교) 유치, 서울시립과학관 건립, 목동선 경전철 선유도역 신설"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양창호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주거 기능 강화로 산업 기능이 기존보다 약화된 당산·양평·문래동 지역의 준공업지역 규제를 해제하고 대림동 지역에 구로·가산디지털단지와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칭)대림디지털단지를 지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