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한국의 정당은 강성 지지층에게 휘둘리는 순간, 종국에는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따로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법칙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가 용산 집무실로 뻥축구를 날리자 마자, 민주당은 대선 패배에 대한 절절한 반성도 없이 다시 강성세력에게 점령되고 있다. 그들은 '졌잘싸'를 외치고 딥러닝으로 스스로를 강화시키더니 돌연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방안'을 들고 나왔다. 내일 의총에서 통과여부를 결의를 한다고 한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는 당연하다. 진작에 마무리했어야 할 검찰개혁이다. 후진적 사법구조를 탈피하고 민주주의의 더 성숙한 발전을 위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한국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을 견제와 균형원리로 제어해야 한다. 군인들이 국민을 향해 총칼을 내려 놓은지가 벌써 30년이나 흘렀다. 그런데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거의 매일 '입장문'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언론은 그대로 실어주고 자기를 비판했다는 사람은 모두 손 보겠다는 식으로 달려가는 것은 상식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개인의 취미라고 치부하기는 더더욱 그렇다.
수사·기소권 분리 반대 집단은 '검수완박', 즉 검찰 수사권 완적 박탈이라고 기막히게 '네이밍'을 하고 검찰 개혁 명분을 오염시켜 왔다. 수사권 분리 없는 검찰개혁은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개혁은 시기와 환경,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더욱이 검찰에서 떼낸 국가 수사권을 어떻게 분배하고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수사권 분리 만큼이나 중요하다.
윤창원 기자무엇보다 정권이양을 30일도 채 남기지 않고, 민주당이 수사·기소권 분리를 강행하는 것은 위선적 행위라는 비판을 다시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은 부동산 정책과 내로남불로 대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내로남불의 대표적 브랜드가 검찰개혁이다. 노무현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검찰개혁을 제 1과제로 추진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통절한 비극 속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했건만, 결과는 '검찰총장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초현실적이며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선거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등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2019년 말, 검찰개혁에 뜻 있는 사람들은 '검찰에서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그것이 바로 검찰개혁'이라고 그렇게 누누이 외쳐댔다. 그러나 대표 발의자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뭐라 했는가. "특수부 축소 또는 폐지안을 입법에 포함시킬 계획이 없다. 그렇게 하면 국가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일시적인 시스템 마비가 올 수 있고,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잘랐다.
애초 조국 전 민정수석이 검찰 직접수사권을 이른바 6대 분야로 한정한 것이 문제였다. 원래 그 여지를 주면 안 되었다. 검찰은 직접수사를 하지 않는 대신, 강화된 수사지휘를 철저히 하며 사건을 송치 받아 기소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정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그때 주장해 놓고 이제 와서 서두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거야 말로 내로남불의 또 다른 전형이다.
민주당 강성세력이 수사권 분리를 들고 나온 논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검찰을 이대로 두면 '윤석열 검찰 권위주의 정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 때 윤석열 당시 팀장과 함께 했던 서울 북부지검의 부장급 검사가 상관인 김오수 검찰총장 체제를 "나카무라 스미스"라고 조롱하는 현실은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윤석열 정부로 정권 이양 전 무조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고 지방선거에서 지지자를 결집시킬 수 있다고 보는 판단인 것 같다.
박종민 기자그러나 세상 이치는 작용과 반작용이다. 민주당이 지지자를 결집시키면 윤석열의 국민의힘 또한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까먹은 지지세를 회복할 수 있다. 단독처리하면 국민의힘은 '야당 때문에 일 못하겠다. 심판해 달라"고 '야당 심판론'을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백신조차도 사람에게 일방적 이익을 주지 않는 현실이다. 백신을 맞는 이득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제로섬 게임은 있을 수 없다.
지방선거 투표율이 아무리 낮다 한들 지지 세력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도 민주당에게 큰 해독이다. 0.7%차이로 낙선한 이재명 후보는 선거 때 "제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가치가 있지만, 정치는 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강성 팬그룹에 점령됨으로써 중도층을 사실상 포기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제대로 된 당이라면 쇄신과 반성이 먼저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이제 민주당은 검찰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탄압'을 감수해야 할 때다. 소나기가 내리면 소나기를 맞고 견뎌내야 하는 시점이다. 절치부심(切齒腐心), 말 그대로 이를 갈고 마음을 썩여야 하는 시점이다. 강경파가 완장차고 '문재인.이재명을 지키겠다'고 하는 건 너무 취약한 것이다. 때로는 두드려 맞고 얻어 터져야 할 때도 있다.
대신 민주당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민생에 집중하고 민생을 더 잘 챙겨서 정말 제대로 한다는 평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검찰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보호막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문재인과 이재명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당이 아니고 국민들이 지켜주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꾸 권력기관을 동원해 못살게 구는 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 눈물 흘리는 민주당에 그들은 손길을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