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선고를 듣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2022년 4월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하면서 이상민 전 장관(이하 호칭 생략)을 이렇게 소개했다.
"명확한 원칙과 예측 가능한 기준으로 투명하고 효율적인 공직 인사와 행정을 구현할 적임자"
"판사 출신 법조인으로는 드물게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아온 분" 이상민은 사석에서 윤석열 당선인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고교와 대학의 학맥으로 얽힌 그는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정권 초에는 세간에 '좌(左)동훈, 우(右)상민'의 한 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판사 출신 장관에 대한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159명의 꽃다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건만 아무도 책임지는 고위직이 없었다. 재난 안전 주무부처 수장이 밤 11시 20분쯤 사건을 처음 인지해 이튿날 새벽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 일인데 왜 장관에게 보고가 늦게 전달됐는지, 당시 그의 행적은 어땠는지 등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앞서 인사권자가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명확한 원칙과 투명한 행정'은 온데없었다.
이태원 참사 뒤 행정안전부 장관의 문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윤석열은 "당분간 개각은 없다"고 감쌌다. 돌이켜보면 윤 정부 몰락을 재촉한 암세포는 그 때부터 자라고 있었다. 국민 안전보다 측근을 챙기는 불투명한 행정은 국가시스템을 왜곡시켰다. 오송참사와 해병대원 순직 사건 등 안타까운 사회적 죽음이 이어졌다.
윤석열과 이상민은 둘 다 법조인 출신이지만 정의보다는 의리를 중시한 듯 보였다. 의리가 부정적으로 작동하면 서로 밀어주고, 감싸주고, 덮어주는 관계로 변질된다. 이태원 참사 때 윤석열은 이상민을 감쌌고, 탄핵심판 때 이상민은 윤석열을 덮어줬다. 이상민은 헌재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12.3 비상계엄 선포는 윤석열의 '고심'의 결과라고 주장했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고민을 못한 게 상당히 죄송했다"며 의리를 보였다.
이상민, 항소심에서 징역 9년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가 12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등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장관에게 원심보다 2년 늘어난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당시 소방청장에게 후속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지난해 2월 윤석열 탄핵심판 변론에서 위증한 혐의도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1심보다 형량이 늘어난 것은 죄질의 엄중함 때문이다. 판사 출신으로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명백히 알고도 내란에 가담한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특히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해 단전·단수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한 건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언론자유 침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수사기관 단계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계엄 선포를 옹호하거나 자신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태도도 불리한 양형 사유로 작용했다.
재판부가 지적한 것처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민 안전과 재난 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보다 사사건건 책임을 회피하거나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편에 섰다.
반성과 책임 보다는 법기술에 의존했다. 이태원 참사나 내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 앞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본 적이 없다. 혹시 모를 일이다. 그의 행적을 AI에 입력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면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답이 나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