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할 수 있어야 시도라도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단념하게 돼요"장애인 이동권을 말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등 장애인 단체들은 이동권은 곧 교육권, 노동권과 연결돼 있어 이동권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다른 권리 역시 보장받을 수 없다고 한다.
CBS노컷뉴스가 만난 장애인들은 '이동이 곧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교육받을 권리와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려면 자유로운 이동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와 면담이 진행되는 시각 서울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학교 가는 데 매일 2시간"… "이동 자유로워야 교육도"
20살 자녀를 둔 정모씨는 매일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편도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매일 직접 운전한다. 정씨의 자녀는 지적 장애도 가지고 있어서 전동 휠체어를 끄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매일 아침 직접 통학을 돕는 이유다.
그는 "이전 학교에 있을 땐 학교까지 통학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아침 7시 10분에 나와서 대기하라고 했다"며 "비장애인 성인도 그 시간대에 버스를 타고 2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하는 게 힘든데 아이에게 너무 부담돼 그때도 결국 직접 통학을 시켰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서울만 해도 특수 학교가 몇개 없어 늘 통학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덧붙였다 .
작년 교육부의 특수학교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특수학교 학생 2만 6068명 가운데 통학시간(편도 기준)이 30분~2시간인 학생은 1만 1471명 (44%)이나 됐다. 통학을 위해 매일 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학생도 11명 있었다.
문제는 이런 통학조차 어려운 장애 학생들이 있다는 점이다. 정씨는 "데려다줄 여건이 안되는 엄마들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낸다"며 "대신 순회학급을 다니는데 이 경우 교육을 일주일에 2번, 2시간씩밖에 못 받는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의 이동 여건이 마땅치 않을 경우,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교육의 시간과 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순회학급이란, 수업이 필요하지만 중복 장애 등으로 학교 시설 이용이 어려울 경우 이들을 대상으로 가정, 복지시설, 의료기관 등에 선생님이 직접 방문해 특수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기준 전국 특수 학교의 순회 학급은 272개이며 이를 이용하는 학생은 516명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경미 국장은 "초·중·고 학교가 보통 거리순으로 배정되는데 특수학교의 경우 학교가 많지 않다 보니 원거리 이동을 해야한다"며 "이마저도 어려운 경우 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을 살펴 줄 누군가가 없다면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게 되고 이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요원해지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전체 인구 대비 장애인의 학력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등록장애인 252만여 명 중 약 56.9%가 중졸 이하 학력이다. 장애인은 중졸 이하, 고졸, 대졸 이상 순으로 비중이 높은 데 반해, 전체 인구는 대졸 이상, 고졸, 중졸 이하 순으로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이미지 제공노들장애인야학 박누리 선생님은 "이동이 자유로워야 교육을 받거나 일을 하기 위한 시도라도 할 수 있다"며 "학원에 다닌다든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이동은 무조건적이고, 발이 묶이면 시도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박 선생님은 "이곳 야학은 휠체어를 탄 성인 이상의 장애인들이 다니는 곳인데, 대부분 늦깎이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동 휠체어도 없고 특수 교육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졌던 약 20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서는 이동하기 어려운 사람은 교육을 받을 수 조차 없었다"며 "지금 야학에 다니는 분들 대다수는 그러한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휠체어를 타고 활동 지원사 등의 도움을 받으며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낮은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도입률 그리고 지하철을 통한 이동의 제약은 이들이 온전히 배움에 집중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은 '시작과 끝'…일할 수 있는 권리와도 맞닿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영애 (57)씨도 교육을 받으러 집 밖을 나가는 길이 매번 고되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데 지하철 틈에 바퀴가 끼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등 갑작스러운 변수가 많다"며 "그래서 이동에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언제 한 번은 활동지원사와 동선이 멀어져 활동지원사만 지하철을 타고 떠나버린 적이 있다. 승강장에 혼자 남게 돼 당황했는데 그때 큰 공포를 느꼈다"며 "바로 전화해 활동지원사와 만난 후 이동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을 받게 되면서 일자리를 함께 얻기도 한다. 이씨는 야학에서 공부하며 일도 하게 됐다. 그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작년 10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권익 옹호, 인권강사 양성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취재진과 만난 시각장애인들도 이동권 자체가 노동권과 맞닿아있다고 했다. 실로암장애인자립센터 최재호 활동가는 "'이동'이 곧 시작과 끝"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탑승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진행한 장애인권리예산 및 관련법 개정 요구에 대한 인수위 답변 촉구 삭발 투쟁 결의식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어 "시각장애인은 안마사나 목회자, 활동가로 직업이 한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래도 안마사가 제한된 공간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손님을 맞이하는 형태로 일을 하다보니 이동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근길 이동수단 확보에도 제약이 있다고 했다. 최씨는 "출퇴근 하는 장애인도 많아 장애인 콜택시도 잘 안잡히는 경우가 흔하다"며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 못하고 밀리는 걸 알면서도 택시를 대기해야 하는 걸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현 센터 소장은 이동권에 제약이 있어 일을 하며 발생하는 변수에 대처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엔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동권에 제약에 걸리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며 "활동보조인과 사전에 약속이 안됐거나 요즘 같이 갑자기 코로나19에 확진이라도 되면 일정을 조정하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배재현(42)씨는 "이동을 하고 학교에서 배워야지 사회에서 관련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며 "무언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매일 길을 가다 턱에 걸린다면 어떻겠나. 이동과 배움, 노동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