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칼럼]'노나메기' 故 백기완 선생을 추억하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핵심요약

사망 1주기 맞아 다양한 추모 행사 진행 중
민주·민중·통일운동에 앞장서 온 '거리의 투사'
누구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 꿈꾼 '큰 어른'
순 우리말 애정 남달라…'님을 위한 행진곡' 모태 詩 작성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기념관'으로 조성키로

故 백기완 선생. 연합뉴스故 백기완 선생. 연합뉴스지난해 2월 15일 투병 끝에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기완 선생의 1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기일인 15일에는 경기 남양주 마석의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고인의 추도식이 열렸고, 추모 산문집 <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도 출간됐다고 한다.
 
고인의 1주기를 앞둔 지난 8일에는 노동자와 시민운동가 등이 모인 가운데 '백기완노나메기재단'출범식도 열렸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선생이 가장 힘주어 외쳐 온 말이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창립보고 및 1주기 추모주간 행사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모습. 이한형 기자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창립보고 및 1주기 추모주간 행사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모습. 이한형 기자재단은 앞으로 백기완 선생 추모사업, 백기완 선생 정신계승, 백기완 예술제를 추진하는 등 '노나메기' 정신을 기리고 이어나갈 예정이다.
 
늘 추상같은 목소리로 '사자후'(獅子吼)를 내뿜던 선생은 돌아가셨으나 그 분과 함께해 온 이들이 선생의 뜻을 계승한다고 하니 반가울 따름이다.
 
재단은 창립 첫 문화행사로 '백기완을 사모하는 화가 18인전'을 16일 개최해 오는 3월 17일까지 이어갈 방침이다.
 
전시장소인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는 선생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이자 재야 민주인사들이 시국선언문 등을 썼던 뜻 깊은 장소로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둘러보면 좋을 듯싶다.
 
故 백기완 선생 집필실 책상. 연합뉴스故 백기완 선생 집필실 책상. 연합뉴스민주화와 민중운동의 산실인 통일문제연구소는 대학로 골목길에 있는 평범한 단독주택으로 재단 측은 이번 추모 전시회 이후 재건축해 '백기완 기념관'으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큰 어른'이자 '거리의 투사'였던 선생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 운동을 시작했고 1960년 4.19혁명 이후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유신독재에 저항하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첫 위반 사례로 체포됐다.
 
이후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지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린 서울 대학로에서 연설하는 故 백기완 선생. 통일문제연구소지난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린 서울 대학로에서 연설하는 故 백기완 선생. 통일문제연구소1987년과 1992년 대통령 선거에는 재야운동권의 민중후보로 추대돼 출마했다.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김용균 노동자 사망 등 최근까지 굵직한 사회 현안마다 시위 현장을 지켰다.
 
선생은 민중의 삶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어 좋다며 유독 순 우리말을 즐겨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때로는 옆 사람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순 우리말을 사용해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도 했으나 '달동네·새내기·동아리' 등은 사회에 잘 안착해 지금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됐다.
 
대표적인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역시 선생의 '묏비나리'라는 시에서 유래됐다.
 
하얀 모시적삼에 선 굵은 얼굴, 멋진 백발을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던 선생이 떠난 지 한해가 흘렀으나 고인이 꿈꿔 온 '노나메기' 세상은 여전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 한 가지가 있다.
 
1993년 당시 재야 단체가 운집해있던 종로5가의 동대문 경찰서(현 혜화 경찰서)를 출입하던 사건기자 시절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았을 때다.
 
故 백기완 선생 집필실 책장. 연합뉴스故 백기완 선생 집필실 책장. 연합뉴스8월 삼복더위 탓에 땀을 뻘뻘 흘리며 꾸벅 인사를 드리고 선생의 집필실에 마주 앉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가 무서워요?"라고 물으셨다.
 
가뜩이나 긴장한 데다 느닷없는 질문에 멍하니 쳐다보자 "이런 무더위 속에 가방을 메고 비지땀을 흘리며 취재를 다니는 젊은 기자를 보니 기분이 좋아요"라며 빙긋이 웃었다.
 
이 한 마디에 큰 어른을 인터뷰한다는 신참 기자의 긴장감은 사라졌고 한 시간 가량 선생과 나눈 이런 저런 얘기와 그 당시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