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94 마스크만 잘 쓰고 공연장에 하루종일 있어도 병에 걸릴까 봐 두려워할 일은 없을 겁니다. (…) 떼창, 함성 내년 봄까지는 참아야 한다고 봐요. 손 위생 신경 쓰고 마스크 쓰는 게 공연장에서 (코로나 감염)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감염병 전문가이자 전 질병관리본부장이었던 정기석 한림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 10월 말 열린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2천명대이던 때의 발언이다. 11월 1일부터 시작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이후 확진자 수는 점차 늘어 최근 7천 명대까지 급증했고, '위드 코로나'는 조기 종료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이 재차 강화됐다. 공연장 운영 시간이 앞당겨져 기존 공연마저 취소되거나 줄어드는 현실에서 '떼창'이나 '함성'은 더욱더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는 벌써 2년여간 지속되고 있다. 감염병의 확산세에 따라 방역 수칙은 시시각각 바뀌었고, 가요계는 고스란히 그 여파를 받아안아야 했다. 특히 '오프라인 대면 공연·행사 최소화'는 기약 없이 계속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실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산업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얼굴은 등장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언급된 '4세대 아이돌'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뭉쳐서 세를 불렸고, 팬 플랫폼을 키우고자 했다.
붕괴 위기 맞은 대중음악 공연업계
올해 6월 말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과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 공연 모습. 철저한 방역과 꼼꼼한 준비로 야외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을 들었다. 민트페이퍼 공식 페이스북공연예술통합전산망 코피스(KOPIS) 집계에 따르면, 대중음악 공연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하반기에는 공연 건수 2537건, 매출액 1865억 4300만원, 관객 수 233만 5천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상반기에는 공연 건수 486건, 매출액 249억 8600만원, 관객 수 33만 9천명으로 급감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공연 건수 740건, 매출액 283억 3300만원, 관객 수 32만 8천명으로 소폭 개선됐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각각 671건, 118억 8500만원, 17만명으로 모든 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설령 대면 오프라인 공연이 열리더라도 좌석 띄어 앉기를 통한 관객 수 감소, 체육관이나 야외 경기장 등 비정규 공연장에서의 공연 제한 등으로 수익을 기대할 수 없거나 오히려 적자만 쌓이는 일이 잦았다. '공연 중단·축소'는 단순히 매출 감소만이 아니라 △폐업·휴업 증가 △유관 산업으로까지 피해 확대 △전문 인력 유출 △장비·시설 노후화·감가상각 △창작 기회 감소 등 연쇄효과를 일으키기에 업계의 '붕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음공협) 설명이다.
명료하고 일관된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느라, 영업 금지와 제한이 반복된 탓에 업계인들은 향후 산업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2021년 상반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음악업계의 올 하반기 콘텐츠 기업 경영체감도(Contents Business Index, CBI)는 매출(100.5)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100 이하로 나타나 전반기 대비 업황이 다소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음악 이용자들도 코로나 이후 가장 타격을 받은 부분은 '오프라인 공연 관람'이라고 답했다. '2021 음악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프라인 음악 공연 관람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62.4%로 다른 부문에 비해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업계에서 가장 문제 삼은 것은 유독 대중음악업계에만 엄격했던 잣대와 불공평한 보상이었다. 클래식·연극·뮤지컬 등 타 장르 공연은 '동반자 외 거리 두기'를 지키면 규모와 상관없이 공연을 열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대중음악 공연은 일반적인 모임·행사로 분류, 수용 인원 수가 한때 99명까지 제한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영업 활동이 금지된 기간이 길었음에도 공연업이 '집합금지'나 '영업제한' 업종이 아니라 그보다 낮은 단계인 '경영위기업종'으로 분류돼 중소기업벤처부 희망회복자금 지원 규모가 낮은 것, 문체부 등에서 주관하는 소소티켓·소비쿠폰 혜택도 대중음악 공연은 빠져 있었다는 것, 어렵게 고용을 유지해 온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신규 채용 인력 대상으로만 단기 지원을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음공협은 △K컬처를 이끈 한국 대중음악 공연의 위상과 노고에 맞는 시선과 지원 △대중음악공연에 대한 업의 특수성 이해 △대중음악공연산업도 다른 산업과 공평한 지원 △주관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내에서의 장르 간 공평한 지원(대중음악 부서의 강화로 장르 간 균형 필요) △한 사람도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 아이돌 그룹의 온라인 공연 성공, 월드 투어 재개
그룹 방탄소년단은 지난 11월 27~28일, 12월 1~2일 나흘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대면 오프라인 단독 콘서트를 열어 성황리에 마쳤다.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지난해부터 시작한 온라인 비대면 콘서트는 올해도 계속됐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대형 아이돌 그룹이 연달아 콘서트 흥행을 이끄는 성과를 냈다. 방탄소년단이 10월 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는 전 세계 197개 국가·지역에서 관람했으며, 블랙핑크의 라이브스트림 콘서트 '더 쇼'(THE SHOW)의 관람 인원은 약 28만명으로 집계됐다.
회차당 관람 인원이 묶여 있던 국내와 달리, 해외는 '위드 코로나' 기조에 맞춰 한 발 더 빠르게 오프라인 대면 공연을 시작했다. 라이브네이션코리아 발표에 따르면, 미국 '오스틴 리미츠 페스티벌'(7만 5천명), 덴마크 '더 마인즈 오브 99'(5만 2천명), 스코틀랜드 TRNSMT(5만명) 등 해외에서는 9~10월 중에 이미 수만명 규모 공연이 개최된 바 있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10월 서울 공연 이후 2년여 만에 '오프라인 대면 콘서트'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최했다. 마스크를 써야 했고, 백신 접종 완료 혹은 PCR 검사 결과 '음성' 확인 중 1개를 입증해야 했지만, 좌석 간 띄어 앉기나 입장객 제한이 없었기에 총 4회(11월 27~28일, 12월 1~2일)에 걸친 공연에서 20만명 이상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미국 콘서트 투어 박스오피스 집계 회사 '투어링 데이터'에 따르면 4번의 현장 공연으로 판매된 표는 21만 3752장, 수익은 3331만 6345달러(약 394억원)였다. 유튜브 시어터로 실시간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라이브 플레이 인 LA'와, 마지막 공연의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까지 포함하면 팔린 표 수는 81만 3141장, 수익은 6175만 3601달러(약 730억원)에 이른다.
아이돌 그룹 위주로 월드 투어 역시 하나둘 재개되고 있다. 베리베리는 이달 5일(현지 시간) 미국 투어를 시작해 그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템피·댈러스·휴스턴·세인트루이스·포트웨인 등에서 공연을 열었다. 트와이스는 내년 2월부터 네 번째 월드 투어 '쓰리'(Ⅲ)를 통해 로스앤젤레스·뉴욕 등 미국 도시를 돈다.
에이티즈는 미국 5개 도시뿐 아니라 유럽 6개 도시에서 월드 투어를 열며, 신인 보이그룹 블리처스 역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시카고에서 끝나는 투어를 2월 중 진행한다. 회당 4천명 규모 공연을 사흘 동안 잘 마친 NCT 127도 내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월드 투어를 열 계획이다.
인디 라이브 공연장을 지키기 위한 온라인 뮤직 페스티벌도 열렸다. 올해 3월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마포구 홍대 부근 인디 라이브 공연장 5곳(롤링홀·웨스트브릿지·프리즘홀·라디오가가·드림홀)에서 열린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에는 총 67팀이 참여해 2680분 동안 474곡의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티켓 판매금은 약 5475만원으로 목표한 금액 5천만원을 넘긴 바 있다.
음반 판매 강세 계속·4세대 아이돌 시작…덩치 키우는 기획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테이씨, 에스파, 엔하이픈, 있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각 소속사 제공실물 음반 판매량은 올해 새롭게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1일 공개된 가온차트 톱 400 음반 판매량은 5459만 4222장으로 전년 동기 4170만 7301장 대비 31% 증가했다. 가온차트가 올해 1주차부터 50주차까지 아티스트의 모든 앨범 판매량 합계를 분석한 결과 방탄소년단·NCT 127·NCT 드림·세븐틴·스트레이 키즈·엔하이픈·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이티즈·트와이스·엑소·더보이즈·백현까지 총 12팀이 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방탄소년단은 720만 8920장으로 단연 선두였다.
2021년은 지난해에 이어 '4세대 아이돌'을 표방하고 가요계에 끊임없이 새 얼굴이 쏟아졌던 해다. 올해 T1419·트라이비·킹덤·픽시·퍼플키스·미래소년·싸이퍼·핫이슈·블리처스·이펙스·라잇썸·오메가엑스·저스트비·아이칠린·버가부·빌리·아이브 등 많은 아이돌 그룹이 출사표를 냈다.
이미 입지를 다진 팀도 있다. 2020년 11월 데뷔한 에스파는 '넥스트 레벨'(Next Level)이라는 메가 히트곡을 탄생시켰고, 올해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신인상과 대상 격인 '올해의 레코드'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비슷한 시기 데뷔한 스테이씨 역시 '에이셉'(ASAP)이라는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있지는 첫 정규앨범으로 첫 주에만 25만장을 팔았고, 해외 15개 지역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로 탄생한 엔하이픈은 대규모 해외 팬덤에 힘입어 발매 첫 주에 첫 정규 앨범을 80만장 이상 팔아치웠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첫 정규앨범으로 '포브스'와 '타임' 등 유수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고, 미국 빌보드 '톱 커런트 앨범 세일즈' '톱 앨범 세일즈' 등 다양한 부문에 장기 진입해 눈길을 끌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세 불리기'에 집중했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하이브다. 하이브는 자회사 비엔엑스를 통해 네이버 브이라이브 사업부를 영업 양수했고, 양사는 장차 위버스(하이브)와 브이라이브(네이버) 플랫폼을 통합할 예정이다. 하이브는 YG엔터테인먼트·유니버설 뮤직 그룹·키스위와 합작한 디지털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베뉴라이브'를 출범하고, 저스틴 비버 등이 속한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와 확장에 나섰다.
SM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콘텐츠 제작사 MGM과 함께 미국을 기반으로 글로벌 활동을 할 K팝 그룹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고 올해 5월 밝혔다. 하이브 역시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손잡고 2022년을 목표로 K팝 남성 아이돌을 만드는 공개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한 복합 플랫폼을 꾀하는 시도도 일어났다.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디어유는 아티스트와 팬이 1대 1 프라이빗 메시지로 소통하는 디어유 버블을 내놨고, 올해 반기 기준 영업이익 66억원, 당기 순이익 53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디어유 버블에는 SM뿐 아니라 JYP·젤리피쉬·브랜뉴뮤직·웨이크원 등 다양한 회사 소속 아티스트가 입점해 있다.
하이브의 글로벌 팬덤 커뮤니티 위버스가 23일 공개한 팬덤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기준 커뮤니티 누적 가입자 3600만명, 가입 국가·지역 수 238곳, 총 포스팅 2억 4천만건, 누적 댓글 4억 6천만건, 아티스트 모먼트·포스팅·댓글은 12만건에 달했다. 하이브·위버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블랙핑크·아이콘·위너·트레저도 위버스에 입점해 있다.
엔씨소프트 자회사 클랩이 만든 유니버스는 론칭한 지 10개월 만인 이달 7일 누적 다운로드 2천만회를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더보이즈·(여자)아이들·오마이걸·우주소녀·SF9 등 30팀 아티스트가 활동 중인 유니버스는 전 세계 233개국 월간 활성 이용자 약 440만명을 기록했고, 자체 제작 콘텐츠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