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빌리 홀리데이'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 스포일러 주의 온몸으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한 가수가 있었다. 굴곡진 그의 삶은 그의 목소리에 새겨져 그의 노래를 듣는 모든 이에게 진한 위로와 용기를 전했다. '레이디 데이'로도 불린 영원한 재즈의 초상 빌리 홀리데이는 목소리로, 영혼으로 시대의 폭력에 저항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간 레이디 데이의 삶을 그린다.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꿔 놓은 재즈의 초상 빌리 홀리데이는 무대 위에선 모두의 박수를 받는 '레이디 데이'였지만, 무대 아래에선 시대의 폭력과 광기에 끝없이 시달렸다. 도망칠 곳 없이 어둠으로 내몰린 삶 속에서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세상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 그리고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사랑이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감독 리 다니엘스)는 빌리 홀리데이에게서 목소리와 노래를, 다시 말해 그에게서 영혼을 뺏으려 한,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를 살아간 빌리 홀리데이의 시간을 보여준다.
영화는 빌리의 경력을 회고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인터뷰에 따라 빌리의 과거를 보여주며 그의 삶 깊숙한 곳으로 점점 관객들을 끌고 들어간다.
외화 '빌리 홀리데이'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빌리 홀리데이'라는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빌리 홀리데이의 삶과 그의 목소리와 노래다. 이는 빌리를 이루는 전부이자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레이디 데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그만의 독특한 발음과 프레이징 그리고 노래를 전달하는 뛰어난 표현력은 그를 '영원한 재즈의 초상'으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처럼 노래한다면, 노래할 필요가 없다"고 한 그의 노래는 빌리 홀리데이였기에, 그의 목소리였기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빌리 홀리데이만이 전할 수 있는 울림이다.
빌리는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굴곡지고 고된 삶을 살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의 목소리와 몸짓에 담아 노래에 녹여냈다. 그런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단순히 귀로만 듣는 노래가 아니다. 레이디 데이는 영혼을 담아 온몸으로 노래한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보고 듣고 체험하는 노래다. 영화를 따라 그의 노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홀리데이의 목소리를 따라 마음이 그에게로 흘러가는 느낌마저 받는다.
영화도 그의 노래처럼 그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빌리 홀리데이 개인의 삶 속에 새겨진 굴곡도 모자라 국가 권력마저 빌리의 삶, 가수로서의 삶에 커다란 상처를 내면서 깊고 깊은 굴곡을 추가로 새겨 넣었다. 그럼에도 빌리 홀리데이는 자신을 향한 거대한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외화 '빌리 홀리데이'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정부가 그의 삶을 끊임없이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갔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1939년 뉴욕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부른 노래 '스트레인지 프룻'(Strange Fruit)이다. 이 노래는 빌리를 타임지에 나온 최초의 흑인으로 만들고, 뮤지션으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 잎사귀엔 피, 뿌리에도 피, 검은 시체가 흔들려요, 남부의 산들바람에.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라는 가사의 '스트레인지 프룻'을 두고 정부와 FBI는 그 노래가 폭동을 선동한다는 주장했고, 이 같은 이유로 빌리 홀리데이는 감시와 압박, 음모와 협박 속에 고통받게 된다.
정부는 끊임없이 빌리를 무대에서 끌어 내리는 것도 모자라 치졸한 음모를 꾸며내 감옥에 가둬둔다. 출소 후에도 FBI는 마약과의 전쟁을 이유로 빌리에게서 목소리를 빼앗고자 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자신을 굴종시키려는 권력의 음모에 대해 "내 영혼을 노래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말 그대로 노래는 그의 삶이자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혐오와 차별 한복판에 섰던 빌리는 누구보다 가장 앞에서 시대의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노래를 놓지 않았다. 그런 레이디 데이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여전히 피부색에 따라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시대에 레이디 데이의 노래는 폭력에 맞서자고 이야기한다.
외화 '빌리 홀리데이' 스틸컷. ㈜퍼스트런 제공영화를 보면 빌리 홀리데이의 삶을 알아가는 것 말고도 그의 무대를 간접적이나마 눈앞에서 마주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렇게 마주한 무대 위 레이디 데이의 노래는 눈부시게, 그리고 마음을 향해 곧장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설득력과 몰입을 제공하는 것은 빌리 홀리데이를 연기한 안드라 데이다. 안드라 데이의 고갯짓에 따라, 그의 손끝을 따라 빌리 홀리데이가 눈앞에 되살아남을 목격할 수 있다. 안드라 데이는 빌리 홀리데이 영혼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마저도 자신의 영혼으로 끌고 와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룻'을 반복해서 재생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빌리 홀리데이와 다시 만나게 해 준 안드라 데이의 노래 역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130분 상영, 11월 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빌리 홀리데이' 포스터. ㈜퍼스트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