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포일러 주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들었고,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그 결과에 주목했다. 원작 소설의 팬이기도 한 감독은 선택과 집중, 압축과 생략을 거쳐 원작 팬은 물론 영화 팬들마저 매료시킬 장중하면서도 품격 있는 SF 영화 '듄'을 완성했다.
서기 1만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유일한 구원자인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폴은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귀족들이 지지하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대한 황제의 질투는 폴과 그의 가문을 죽음이 기다리는 스파이스 생산지 아라키스로 내몬다. 그 후 폴과 레토 공작(오스카 아이삭),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 그리고 아트레이데스의 사람들은 음모가 격돌하는 전쟁터가 된 아라키스에서 위대한 시작을 위한 여정에 나선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현대 대중문화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인 고전인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의 1부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스크린에 구현됐다. 영화화가 부침을 겪는 동안 기술은 발전했고, 결국 이번 영화에 이르러서야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감독은 원작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줄지 선택과 집중, 압축과 생략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스크린에 구현된 '듄'을 보면 감독이 얼마나 원작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장중하고 우아하면서도 거대한 서사시이자 많은 스페이스 오페라와 메시아 서사에 영향을 미친 작품인 만큼, 영화의 질감에서도 이러한 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트1이기도 한 영화 '듄'은 주인공 폴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까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워낙 방대한 세계관과 얽히고설킨 이야기, 감정 묘사가 복잡하게 어우러진 작품인지라 단 한 편의 영화로 풀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파트1에서는 폴의 여정이 시작하는 지점에 집중한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무엇보다 '듄'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영화다. 원작 소설의 거대한 세계를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이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한 감독의 노력이 영화 내내 엿보인다. 시각, 청각 등 감각적인 부분에서 온 신경이 집중되며 스크린에 펼쳐진 모든 것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아이맥스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라키스의 스파이스가 포함된 모래, 그 속에 담긴 스파이스가 모래 사이에서 반짝이며 흩날리는 모습, '샤이 훌루드'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벌레의 위압적인 모습, 미래의 줄기를 체험하는 폴의 모습 등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필름 영화적인 질감마저 느껴지는 화면을 통해 폴의 고뇌와 아라키스를 둘러싼 욕망과 정치적 음모 등이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 사이 음모와 계략이 사납게 맞부딪히는 가운데 위치한 폴, 지도자이자 메시아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캐릭터 해석과 열연이 돋보인다. 가문과 아라키스의 미래를 짊어진 폴이 자신을 둘러싼 위협 앞에 소년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변화를 자신의 얼굴과 행동 곳곳에 새겨 넣은 티모시 샬라메는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지닌다.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듄'의 세계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신비롭고 비밀에 둘러싸인 아라키스, 그곳에서 펼쳐지는 폴의 여정, 척박한 사막 위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음모와 전쟁의 분위기가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피부로까지 전해진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원작 팬들은 어쩌면 소설 속에서 유에 박사(장첸) 대신 배신자로 의심받는 레이디 제시카, 그런 제시카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던컨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와 투피르 하와트(스티븐 맥킨리 헨더슨) 사이 반목하는 장면이 생략된 데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독은 폴과 레이디 제시카 사이 미묘한 삐걱거림을 포착하는 것을 잊지 않고 정확히 짚고 넘어간다.
감독의 변주 속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소설과 달리 리예트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를 남성이 아닌 여성, 그것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한 점이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와중에 감독은 고전에서 현대로 오면서 변해 온 시대정신의 한 자락을 영화에도 담아냈다.
외화 '듄'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155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 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긴장감이 이어지고 몰입도가 높지만, 조명과 색을 절제한 화면이 다소 어둡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파트2를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쉬움과 동시에 영화 내내 축적하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여운이 진하게 남게 된다. 다음 장을 향한 여정의 시작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무리다. "이제 시작이야"라는 챠니의 말처럼, '듄'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파트2를 기다리기까지가 힘든 관객이라면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소설 1부와 '조도로프스키의 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소설은 듄의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다큐멘터리는 왜 이 소설의 영화화가 '독이 든 성배'가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영화화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지난한 과정과 완벽주의가 영화화를 험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들을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원작소설과 다큐멘터리 자체가 가진 재미도 만만치 않다.
155분 상영, 10월 20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듄'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