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쁘띠 마망' 스틸컷. 찬란 제공※ 스포일러 주의 사람을 향한 배려 어린 시선으로 관객 마음을 세심하게 보듬으며 감동을 전해 온 셀린 시아마 감독이 이번에도 어린 두 소녀를 통해 현실의 존재와 그들의 마음을 마법처럼 신비롭고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영화 '쁘띠 마망'을 통해서 말이다.
넬리(조세핀 산스)는 외할머니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니나 뫼리스)과 함께 어린 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는 먼저 시골집으로 떠나고, 아빠와 남은 넬리는 혼자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러던 어느 날 넬리는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가브리엘 산스)을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낀 넬리와 마리옹은 함께 오두막도 만드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반짝이는 비밀을 알게 되고, 마리옹에게 자신이 발견한 비밀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외화 '쁘띠 마망' 스틸컷. 찬란 제공'워터 릴리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으로 '시아마 열풍'을 일으킨 셀린 시아마 감독이 이번에는 한 소녀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 엄마와 만난다는 내용의 '쁘띠 마망'으로 국내 팬들을 찾았다.
나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 엄마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은 판타지적이지만, 어린 엄마와 만난 아이의 시간을 그려내는 감독의 시선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 그러나 셀린 시아마 감독이 발 디딘 현실은 차갑고 이성적인 어른의 땅이 아니라 넬리와 작은 마리옹은 물론 큰 마리옹 모두를 끌어안는 따뜻한 감성의 땅이다. 시아마 감독은 작지만, 누구보다 넓은 마음으로 주변을 보듬는 넬리의 눈높이에서 넬리의 세상을 바라본다.
각각 할머니와 엄마를 잃은 상실의 시간과 아픔, 그리고 어린 시절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신비롭고 마법 같은 만남으로 포근하게 감싸며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포용하는 감독의 시선에 다시금 '역시 시아마'를 외치게 된다.
영화에서 넬리는 '진짜 이야기'란 무서워하는 걸 이야기하는 일이라 말한다. 무서워하는 것이란 어른이 되어서는 숨기고 싶은 어릴 적 두려움 내지 트라우마다. 어른들은 이를 넬리에게 쉽게 꺼내지 못한다. 두려움을 꺼내는 것을 가로막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넬리의 순수하고 무해한 질문은 어른들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간다. 아이라서 할 수 있는 직접적인 물음은 때론 어른들의 내면을 콕콕 찌르지만, 넬리의 질문은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도 함께 전한다.
외화 '쁘띠 마망' 스틸컷. 찬란 제공자신의 부모에게 두려움을 묻던 넬리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먼저 떠난 엄마처럼 밖에서 놀다 돌아온 시골집에 아빠마저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자신을 두고 부모가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엄마가 먼저 떠난 건 혹시 자신 때문은 아닐까, 엄마는 혹시 어린 나이에 자신을 낳은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닐까, 엄마가 종종 우울해하는 것 역시 자신 때문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두려움을 차마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넬리는 어린 마리옹에게 당신이 나의 엄마라는 비밀을 털어놓은 뒤, 마리옹과 이야기를 하며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두려움을 마음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 어린 마리옹을 통해 큰 마리옹의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건 '넬리' 때문이 아닐 것이라는 확답을 받는다. 비록 자신과 같은 나이의 어린 엄마지만 넬리는 마리옹의 단호한 대답에 위로를 얻는다. 정작 어른들에게 두려움에 관해 질문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는 데 어려웠던 넬리는 어린 엄마를 만나 치유 받는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때, 특히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 온 타인과의 사이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낄 때, 문득 내가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그의 시간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두고 시골집을 먼저 떠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넬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외화 '쁘띠 마망' 스틸컷. 찬란 제공이러한 관계와 이해의 어려움 사이로 셀린 시아마의 마법이 비집고 들어온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동시에 진솔할 수 있는 눈높이에서 만난 넬리와 어린 마리옹은 서로를 정면에서 마주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넬리와 마리옹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마음의 거리를 좁힌다.
또한 마법 같은 시간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마주한 넬리는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며 자기만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사람과도, 두려움과도 제대로 이별하는 법을 배운 넬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 엄마 마리옹과 마주한 뒤 그를 마음으로 마주 안아 준다. 마음속 후회와 두려움을 모두 털어냈기에 가능한 마주 안기다. 그렇기에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포옹하는 넬리와 큰 마리옹의 모습은 깊고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넬리, 그리고 넬리와 마리옹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다 보면 그 자체로도 이미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자체가 어쩌면 셀린 시아마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경험인지 모른다. 귀엽고 따뜻하고 애틋한 '쁘띠 마망'인 어린 마리옹과 넬리의 만남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내면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넬리와 어린 마리옹을 연기한 조세핀 산스, 가브리엘 산스 쌍둥이 배우의 연기는 오롯이 마음으로 두 인물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온다.
72분 상영, 10월 7일 개봉, 전체관람가.
외화 '쁘띠 마망' 포스터. 찬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