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이스'에서 곽 프로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무열.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보이스피싱은 상대방의 무식과 무지를 파고드는 게 아니야. 상대방의 희망과 두려움을 파고드는 거지." 보이스피싱 본거지, 일명 콜센터의 기획실 에이스이자 총책인 곽 프로(김무열)가 말하는 수십, 수백억원 단위 보이스피싱 성공 비결은 희망과 두려움이다. 곽 프로는 피해자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파고들어 수십, 수백억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취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침입자' '정직한 후보' '악인전' '기억의 밤' 등 여러 작품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김무열이 현재진행형 범죄인 보이스피싱을 다룬 '보이스'(감독 김선·김곡, 15일 개봉) 속 악역 곽 프로로 돌아왔다.
연출을 맡은 김선, 김곡 감독은 "김무열 배우가 오면서 곽 프로가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왔다"고 할 정도로 김무열은 곽 프로를 스크린에 살아 숨 쉬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고민을 담아 완성해냈다. 그 결과 영화 속 곽 프로는 소름과 분노를 동시에 유발하는 인물로 표현됐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무열에게서 곽 프로를 통해 경험한 '보이스' 현장과 보이스 피싱 범죄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 '보이스' 스틸컷. CJ ENM 제공▷ 영화에서 보이스피싱 본거지 기획실 총책인 곽 프로 역을 맡아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곽 프로는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접근해 나갔나?
김무열 : 곽 프로는 넉넉하게 이야기해도 이해가 겨우 되는 나쁜 놈이다. 감독님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공의 적을 롤 모델로 만들어놓고, 거길 향해 갔다. 나도 나름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아주 나조차도 밉고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을 극대화했고,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그럴 것인가라는 상상을 많이 가미했다. 그런 감정을 재료로 많이 사용했다. ▷ 시나리오를 보고 곽 프로에게서 처음 받은 인상은 어땠나?
김무열 :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이스피싱이라는 게 이렇게 규모가 큰 데다 우리 사회 아주 깊숙한 곳에 넓게 퍼져있는 범죄라는 걸 내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어느 정도 남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시나리오를 읽은 후 체크카드 1회 출금 한도 상향 때문에 은행 창구에 직접 가서 은행 직원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이때다 싶어 은행 직원분을 인터뷰했다. 체크카드 1회 출금 한도를 30만원으로 제한을 둔 것도 보이스피싱 때문이라고 하더라. 이게 정말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고, 사회에서 되게 심각한 범죄라는 걸 그때 알았다. 곽 프로라는 인물이 그때부터 나에게도 조금씩 실체적으로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이게 첫인상이라면 첫인상이자 에피소드다. 영화 '보이스' 스틸컷. CJ ENM 제공▷ 곽 프로의 멀끔한 듯 이질적이면서도 서늘한 모습이 극악무도한 곽 프로의 모습을 더욱 극대화했다.
김무열 : 일단은 아주 잠깐 나오는데, 멀끔하게 입은 곽 프로가 콜센터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예를 들어 위에는 정장을 입었는데, 아래는 전혀 맞지 않는 반바지를 입는 등 곽 프로는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된다. 콜센터는 자신만의 왕국이니까. 누군가를 사칭해서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처럼 속여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이 곽 프로다. 언밸런스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편안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 곽 프로의 옷차림이나 생김새, 말투 등에서 곽 프로가 어떤 인물인지도 얼핏 비치는 것 같다.
김무열 : 곽 프로는 잘나갔다 밑바닥을 친 후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인물이다. 잘 나가던 시절과 밑바닥을 친 것, 이것이 항상 곽 프로라는 인물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잘 나갔던 시절을 잊지 못해서 콜센터 안에서도 머리를 그렇게 하고 있고, 사람들을 무시한다. 이런 것들이 또 아이러니하게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본인의 배경이 무의식적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한 인물 안에서 충돌하다 보니 묘하게 삐뚤어져 나가면서 그런 괴물이 탄생했던 것 같다. 영화 '보이스' 스틸컷. CJ ENM 제공▷ 2020년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3만 9713건, 이에 따른 피해 금액은 무려 7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현재진행형 범죄를 다룬 영화에서 보이스피싱을 진두지휘하는 역을 맡았다. 간접적으로 경험해 봤을 때, 실제 속을 수밖에 없을 것 같나?
김무열 : 그럴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실제 보이스피싱 사례를 찾아보고 오디오를 들어보며 충격을 받았던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희화화됐던 보이스피싱과 결이 너무 달랐다는 점이다. 수사기관, 금융기관 등을 사칭한다고 하면 해당 분야 전문지식을 정확히 알고 전문 분야에 오래 종사했던 사람인 것처럼 목소리 톤과 단어 선택, 상황별 대처가 너무 진짜 같았다. 나는 검사 사칭 보이스 피싱을 오디오로 들었는데, 이걸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들었는데도 정말 검사 같아서 너무 놀랐다.
영화에서 보다시피 어느 순간 악성 앱이 휴대폰에 깔리고, 확인 전화를 해도 깔때기 앱을 통해 보이스피싱 일당이 있는 쪽으로 전화가 간다. 심지어 금융기관을 사칭한 후 금융기관 안에서 직접 만나는 사기 수법까지 만들어 넣기도 한다. 그런데 수사기관에 피해를 알리지 않은 잠정적 피해자가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희화화되어 온 것도 있고, 창피해서 혼자 끙끙 앓은 분이 많다고 하더라.
극 중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이규호(김희원)의 대사처럼 피해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정말 거대하면서도 점조직화 된, 아주 전문적인, 그리고 범죄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잘 할 수 있을지 분석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치밀하게 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만약 표적이 된다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범죄인 것 같다. 영화 '보이스' 스틸컷. CJ ENM 제공▷ 곽 프로는 보이스피싱 본거지에 잠입한 피해자 서준과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인물이다. 현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변요한은 어떤 배우였나?
김무열 : 연기를 잘하는 건 이미 검증이 됐고, 내가 가장 놀라고 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해줬던 모습은 바로 상대 배우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건 본인이 하는 일이 본인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를 대변해주는 행동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음에도 요한이만큼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존중이 상대방이 연기할 때 '내가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그래서 더 신나고 즐겁게, 그리고 하면서도 성취감이라는 걸 갖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요새는 일주일에 촬영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성취감이나 직업으로서의 소명 같은 것들을 느끼며 일하기 쉽지 않다. 배우라는 직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하며 캐릭터를 표현하거나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한이가 보인 상대방 배우에 대한 존중이 큰 힘이 됐다. 나보다 동생이지만 많이 배웠다. 영화 '보이스'에서 곽 프로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무열. CJ ENM 제공▷ '보이스'에서는 정말 보이스피싱 범죄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찍으면서도 경각심이 생겼을 것 같다.
김무열 : 나는 특히 깔때기 앱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과 보이스피싱에 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우리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다. 확인 전화를 하고 싶으면 꼭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전화로 확인하라고 말이다. ▷ 변요한씨는 100만 관객 돌파 공약으로 엠넷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스를 내걸었다. 김무열씨는 어떤 공약을 준비했나?
김무열 : 요한이랑 같이 팀을 결성해서 할 거다.(웃음) 요한이 때문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봤다. 재밌다고 꼭 보라고 해서 촬영가기 30분 전에 잠깐 틀었다가 촬영을 못 갈 뻔했다. 그래서 요한이랑 나랑 박명훈 선배님이랑 셋이 팀을 결성해서 한 번 해보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