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이 갈등이 때 아닌 '녹취록' 진실공방으로 번지며 곳곳에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선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내홍이 심화되면서 당내에선 자칫 야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녹취록 진실공방의 핵심은 '저거'란 용어가 윤 전 총장을 지칭했는지 여부다. 지난 10일 이 대표와 대선주자 원희룡 전 제주지사 간 전화 통화에서 이 대표가 언급한 "저거 곧 정리된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양측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당시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며
당내 경선을 둘러싼 갈등이 곧 정리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원 전 지사는 18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고 반박에 나섰다. 원 전 지사는 이 자리에서
"제 기억과 양심을 걸고 해당 표현이 지칭하는 대상이 윤석열 후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의 기자회견 직후 SNS를 통해 "참 딱하네요"라고 반박했고, 원 전 지사 측은 재차 "어물쩍 넘어갈 만큼 가벼운 문제냐"며 공방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또 다른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사적 통화 내용을, 그것도 확대과장해서 공개하고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원 전 지사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하태경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대권주자인 원희룡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전날 경선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토론회를 취소하고 오는 25일 비전 발표회를 한 차례만 개최하기로 확정하며 당내 갈등이 봉합되는 듯 했지만, 이날 의원총회 분위기는 달랐다. 월권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공개 발언에서 이 대표를 두둔하며 "
당내 권력 투쟁에 제발 좀 몰두하지 말자"고 하자,
곽상도‧김정재 의원 등이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오히려 서 위원장이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반격을 가했다. 비공개 회의에서도 각 대선캠프에 합류한 의원들이 발언을 신청해 고성이 오가는 등 난타전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론 원 전 지사와 이 대표 간 녹취록 진실 공방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유력 대선주자인 윤 전 총장과 이 대표 간 힘겨루기가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 게 당내 중론이다. 지난달 30일 이 대표의 지방일정 도중 윤 전 총장이 기습 입당을 택하면서 '지도부 패싱' 논란에 이어 '경준위 토론', '전화통화 사과', '녹취록 유출' 파동 등 곳곳에서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은 충돌했다. 이 때문에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간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 전 지사가 윤 전 총장을 돕기 위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내 한 재선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원 전 지사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건 누가 봐도 대선주자로선 자연스럽지 않다"며 "윤 전 총장 편을 들면서 향후 당권이든 뭐든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사적 통화 내용을 유출하는 이런 행위가 원 전 지사의 대선 가도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으로 윤 전 총장 입장을 편드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경선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다중분열' 양상이 펼쳐지자, 당 안팎에선 자칫 내년 대선에서 야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야권 내부의 주도권 싸움이 격화될 경우, 대선주자와 당 대표 모두 내상을 입고 결국 정권 탈환은 무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당내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어디나 당내 주자들 간 정당한 경쟁이란 게 있고 대권자리를 쉽게 먹는단 게 말이 안되지만, 그만큼 당내 경선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며 "지금 상태로 계속 가면 결국 예선에서 이기고, 본선에서 지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선관위 출범을 앞두고 선관위원장 인선이 양측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내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선관위원장 임명과 관련해 안팎에서 많은 의혹을 받고 있으니, 외부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방안을 찾고 경선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직 의원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토론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니까 상대방은 그걸 약점이라고 생각해 공격 수위를 높인 것"이라며 "
윤 전 총장 본인이 일단 토론을 꺼리지 말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