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황진환·박종민 기자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 설치 여부가 당내 갈등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당 경선준비위원회가 "역선택 방지 조항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며 도입하지 않기로 했지만 해당 조항 설치가 경선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윤석열·최재형 캠프가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뇌관 '역선택' 둘러싼 논란 살펴보니
18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는 최근 윤석열·최재형 캠프가 주장하고 있는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보이고 있다.
경준위가 검토 끝에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최고위원회에서 의결까지 받은 사항을 두 캠프가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역선택은 A정당 지지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B정당 경선 여론조사에 개입해, 상대적으로 약체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역선택 방지조항이란, 전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힌 응답자나 무당층에만 묻는 것을 가리킨다.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 회의. 연합뉴스
앞서 경준위는 역선택 방지 조항이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준위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의도연구원 소속 여론조사 전문가가 경준위 회의에 계속 배석해 의견을 모았고, 이전 사례도 참고해 이견 없이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며
"역선택이 여론조사에 왜곡을 주기 어렵고, 오히려 우리당이 (다른 지지층에) 배타적이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국민의힘 전신 정당부터 일반 국민이 투표로 뽑는 공직 선거와 관련해, 역선택 방지조항이 설치된 적이 없기도 하다.
앞서 유권자만 1200만 명에 달해 '미니 대선'으로 불렸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역선택 방지 조항은 도입되지 않았다. 당시
공관위원장이었던 정진석 의원도 "역선택 문제가 확인된 적이 없고, 100% 시민 경선의 취지가 완성돼야 한다는 점에서 만장일치로 100% 시민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체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선거에서, 보수·중도층의 의견만 반영해 후보를 선출하면 대표성, 확장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진영과 이념에 따라 유권자의 성격이 강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역선택의 실체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동안 한국 정치와 대선은 진영과 이념으로 나뉘어 이뤄졌다. 보수 정당 지지자가 진보 정당을 지지하거나, 진보 정당 지지자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바뀌는 경우는 드물었던 만큼 반대 지지층을 포함한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尹·崔의 당원 표심 자신감?… 홍준표·유승민 강하게 비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는 모습. 황진환 기자
윤석열 캠프는 전날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당에) 국민의힘 지지층의 지지보다 범여권 지지가 월등하게 높은 후보들이 있다"며 "역선택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고 역선택 방지 조항을 요구했다. 최재형 캠프도 최근 들어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박대출 전략총괄본부장은 "대선후보를 결정짓는 여론조사에선 반드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며 "한일 축구를 앞두고 일본 사람에게 국가대표 선수를 뽑아달라고 하는 것"이라도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최재형 후보의 지지율은 보수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반면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은 보수·중도·진보층의 비중이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할 경우 보수층 지지도가 높은 윤석열·최재형 캠프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KBS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유권자 1000명에게 물은 결과를 보면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분포는 보수(42.4%), 중도(22%), 진보(9.4%), 무당(16.8%)였고, 최재형 후보는 보수(10.4%), 중도(5.4%), 진보(2.9%), 무당(0%)로 나타났다. 반면 홍준표 후보는 보수(12.7%), 중도(14%), 진보(17.6%), 무당(5.8%)로 나타났고, 유승민 후보는 보수(3.8%), 중도(13.8%), 진보(16.2%), 무당(2.4%)였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확장성이 중요한 대선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이같은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헌당규에서 최종후보를 당원 50%, 국민 50%로 뽑기로 한 것도 국민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취지이고, 실제로 여기에 근거해 지난 선거들이 치러져 왔다는 것이다. 윤석열·최재형 캠프를 제외한 다른 캠프에서 역선택 방지조항 주장에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희망캠프 관계자는
"역선택 방지 조항은 국민의힘을 청년층과 호남에서 멀어지게 하는 '고립 조항'일 뿐"이라며 "당대표 선거는 당원 의견을 모으는 게 맞지만 지금은 대통령 선거"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이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주장하고, 윤석열·최재형 캠프가 최근 들어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경준위 관계자는 "최고위에서 의결까지 끝난 상황"이라고 일축했지만, 조만간 출범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관련 문제가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