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서울시 관악구 한 산부인과의 신생아실 안내판. 허지원 기자 "분만하는 병원은 서울에 구마다 하나 정도만 남았어요."
지난 11일 서울시 관악구에서 가연관악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신인환 원장은 산부인과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 병원 같은 경우 5년 전에는 1년에 2천건 이상 분만을 받았지만 지금은 600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둘러본 병원에는 13개 산모 입원실 중 8개만 차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입원실 자체도 옛날보다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신생아실에서 일한 지 8년 됐다는 또 다른 간호사는 "처음에는 분만 건수가 많고 아기들에게 손길이 많이 필요해 업무 강도가 강했다"며 "숫자로 치면 대학병원 중환자실과 같은 100이었다면, 현재는 50 정도밖에 안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84. 한 명의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자녀의 수가 1명이 채 안된다는 뜻이다.
0명대 출산율은 2018년부터 시작됐으며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63명의 반토막 수준이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이른바 '데드크로스'도 시작됐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의 줄폐업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서울 지역 산부인과 30여 곳에 분만 접수를 받는지 문의한 결과, 절반 넘게 "수년 전부터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분만 건수가 적고 전공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산과' 이름은 달았지만 분만을 받지 않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산부인과는 41곳으로, 신규 개원한 34곳을 앞질러 총 7곳이 줄었다. 2019년 한 번 3곳이 늘었을 때 빼고 최근 5년간 산부인과 수는 감소세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11곳, 13곳, 8곳이 줄었다.
광진구 SC제일산부인과 홍재식 원장도 "관내 유일한 분만 병원인 우리도 5년 전보다 20% 정도 분만이 줄었다"며 "주변 산부인과들은 경영을 이어나가기 위해 부인과 진료만 하거나 비급여 진료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산모들은 고령화… '고위험 임신' 가능성 커져
서울시 관악구 한 산부인과의 비어있는 산모 입원실. 허지원 기자 지역 산부인과가 줄어들면서 뜻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도 파생됐다. 통계청이 조사한 산모 평균 출산 연령은 2019년 기준 33.01세였다. 이는 10년 전보다 2.04세 많은 나이다. 평균 결혼 시기가 점차 늦어지면서 산모들이 고령화된 셈이다.
하지만 주변 산부인과가 없어 대형병원 산부인과를 힘겹게 찾아야 하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고위험 임신'은 산모가 만 35세 이상인 경우를 포함해 산모나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임신을 말한다. 고령 임신이 꼭 고위험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전치태반, 임신성 당뇨·고혈압 등과 같은 임신과 관련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홍 원장은 "고령 임신으로 내과적 협진이 필요한 경우 3차 의료기관으로 전원 보내게 되는데 확실히 과거보다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김광준 교수는 "일반적인 출산 입원이 20%라면 고위험 산모 입원이 80%"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의료원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준호 교수도 "산모의 몸이 안 좋으면 내과, 아기는 신생아과·소아외과 등에 가야 하는데 지역 병원에 해당 과들이 다 있더라도 산부인과가 없으면 여기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저출생 시대에는 고위험 산모의 산전 관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 원장은 "보험 급여로 가능한 초음파 횟수 제한을 풀어주고 태동 검사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출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나마 버티려면 임신 전에 산부인과에서 기본 검사를 하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줘야 고위험 임신이 감소하고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수가 및 의료진 보호 문제도 지적됐다. 이 교수는 "고위험 임신이면 훨씬 더 많은 자원·비용·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급자 입장에서는 병원이 유지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결국 비급여 진료를 늘리거나 과잉진료를 하게 돼 장기적으로 환자들에게 손해"라고 덧붙였다.
홍 원장 역시 "향후 분만 인프라가 붕괴될까 우려된다"면서 "무과실 사고 책임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해 산모와 아기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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