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연합뉴스백신 수급 불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청와대 내부에서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무 부처 장관이 사과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 접종 목표를 앞당기겠다고 발언해 메시지가 엇갈린 것이 대표적이다.
백신 수급 문제로 초반부터 여러 비난을 받았던 만큼 이 문제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통일되고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관 사과 발표 시점에 文대통령은 백신 목표 상향…엇갈린 메시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지난 9일 오후 2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모더나사의 백신공급 차질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모더나사(社)의 사정으로 이달 들어오기로 했던 850만회 분량의 절반에 못미치는 물량만 공급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이달 중순 이후 진행될 2차 접종부터는 모더나·화이자 등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의 접종 간격을 기존 4주에서 6주로 한시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특히 모더나 백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모더나 CEO와의 화상통화를 통해 1000만 명분 계약을 이끌었던 만큼 당국에 충격이 컸다. 이에 복지부 2차관을 중심으로 모더나사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기로 하는 등 상황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같은날 같은 시각 청와대 여민관에서 진행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모더나 백신 차질에 대한 구체적 언급없이 오히려 백신 접종 목표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집단 면역의 목표 시기도 앞당기고, 백신 접종의 목표 인원도 더 늘릴 것"이라며 "백신 수급을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확보한 백신 물량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해 반드시 목표 달성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9월까지 전국민의 70%인 3600만 명이 1차 접종을 하고 11월에는 2차접종을 완료해 집단면역을 이루는 것이 목표였지만, 문 대통령이 3600만 명 1차 접종 완료를 추석 전까지 실행하겠다고 하면서 일정이 2주 정도 앞당겨졌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집단면역 목표 일정을 당기겠다고 한 것이다.
백신 수급 불안정으로 접종 간격까지 조정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오히려 자신감을 보이자 현장에서는 혼선이 커지고 있다.구체적 계획 질문엔 답 못하는 靑…"대통령 발언 그냥 나왔겠나" 반론도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문제는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정부의 명확한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9일 문 대통령이 발언이 나온 직후, 접종 목표치가 언제로 앞당겨지는지에 대한 질문에
"복지부와 질병청이 주관 부서로 (접종 목표치는) 특정해서 말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다음날 비슷한 질문이 나오자 이 관계자는 "모더나 백신 도입 상황 변경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추석연휴 전 3600만 명 1차 접종 달성을 위해서 신속한 백신 도입, 접종속도 제고를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역당국이나 보건의료계, 대통령님 모두 다같이 노력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총체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정부가 집단면역 목표를 앞당길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반복될 뿐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델타변이 확산으로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의 기준마저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근거가 약한 자신감은 오히려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 복지부 차관까지 미국으로 가서 항의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한데 청와대는 무조건 접종목표를 높이겠다며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솔직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고 충고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공언한 것은 현실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며 "접종 주기 재조정 등을 통해 11월 이전까지 목표를 앞당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