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너도나도 입맛대로'…주민소환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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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압박 목적 주민소환 변질 우려
과천시, 유일무이 시장 잇단 소환 추진
무분별한 소환, 지역 이기주의 경계
사전 공론화, 구체적인 소환 사유 관건

주민소환투표 관련 기자회견하는 김종천 과천시장. 연합뉴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쫓겨난 겁니다."

미국의 닉슨, 한국의 박근혜에 대한 한 정치평론가의 진단이다. 닉슨은 도청사건 관련 거짓말로 탄핵이 추진되자 자진 사임했고, 박근혜는 국정농단으로 파면당했다.

비단 대통령만이 아니다. 자치단체장도 부정, 부패가 있을 시 유권자가 파면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제가 지난 2007년 도입됐다.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지방자치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반대와 압박' 수단으로 변질된 주민소환제

이런 취지와는 달리 특정 정책을 반대하거나 지역에서 원하는 사업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주민소환제가 자주 '소환'되는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최근 경기도 내에서는 지자체 정책 방향에 반발하면서 잇따라 시장, 군수를 상대로 주민소환이 추진되고 있다.

주민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천시와 가평군 등은 화장장 건립에 대한 반발로 엄태준 시장과 김성기 군수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청구인 서명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이다.

반대로 수도권광역철도노선인 GTX 유치 등에 사활을 건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이 유치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주민소환 추진설이 나돌기도 했다.

◇정부사업 반대로 과천시장 소환 시도만 두 번째 '유일무이'

지난 4일 과천청사 주택사업부지 계획변경 당정협의에 입장하고 있는 김종천 과천시장. 윤창원 기자

 

더 노골적으로 주민소환제를 '압박카드'처럼 꺼내든 지역은 과천이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지난해 발표된 정부과천청사부지 주택계획 반대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소환 심판대에 올랐다.


정부, 여당에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출하고 해당 부지에는 주택이 아닌 종합병원을 비롯한 생활 기반시설 등을 조성하는 대안을 내놓아도 소용없었다.

최근 정부가 기존 계획 대신 과천 내 다른 곳에 집을 공급하겠다고 한발 물러서 다수 시민단체까지 반겼지만, 이번엔 주택 추가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라며 거듭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인접지역에 공공주택 건립으로 부족한 공급을 채우고 수도권 집값 안정을 도모한다지만, 이로 인해 인구과밀과 교통난 등 과천 지역이 피해를 입는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다.

결국 지난 8일 주민소환투표가 정식 발의되면서 김 시장의 직무는 정지됐다. 김 시장에 대한 파면 여부는 오는 30일 투표로 최종 결정된다.

과천시에서는 2011년에도 시장 소환이 추진된 전례가 있다. 그때도 여인국 당시 과천시장은 정부의 무주택 서민을 위한 지식정보타운 보금자리주택 지정을 수용해 주민소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투표율이 청구인 총수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해 끝내 주민소환은 무산됐다. 결과가 어떻든 자치단체장 주민소환 추진이 두 차례나 이뤄진 건 과천이 유일하다. 모두 시장 개인의 비위나 독선이 아닌 공공성을 지닌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국내 자치단체장의 주민소환 성공사례는 없다. 소환이 성사된 경우는 주민 사전 동의 없이 공동 화장장 건설을 추진했다는 등의 이유로 해임된 하남시의원 2명이 전부다.

◇"지역이기주의 경계, 충분한 공론화·소환 사유 명문화해야"

지난 7일 과천회 등 38개 과천 지역 단체들이 정부의 과천청사 일대 주택공급 계획 철회에 대해 환영 성명서를 발표했다. 과천회 제공

 

그렇다고 주민소환제 취지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방자치의 민주성 확보와 선출직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단체장의 심각한 독선이나 비위가 아닌, 전 사회적으로 종합적인 가치 판단이 필요한 정책 방향성 등을 놓고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주민소환제가 남용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주민소환이 잦아지면 시민 간 갈등 심화는 물론, 10억 원 안팎에 달하는 선거비 발생 등 지역사회의 부담만 가중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는 주민소환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선거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해야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구나 공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이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번번이 주민소환이 추진되면, 자칫 관련 정책을 발목 잡기 위한 지역이기주의로 내비칠 수 있다.

공론화 수단으로 '주민투표'라는 제도를 활용하거나 지방의회의 비판·견제 기능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사안들을 무분별하게 주민소환제로 재단하려 한다는 지적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구체적인 소환 대상 조건이 명시되지 않다 보니 독단적인 행정이나 부정부패에 대응하려는 본래 취지에 비해 주민소환제가 다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안을 공론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단체장을 탄핵하는 쪽으로만 가는 것은 경계해야 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주민소환법이 직접적인 정치 참여라는 두루뭉술한 취지만 명시했을 뿐, 소환 사유에 대한 세부규정을 제시하지 못한 게 제도 오남용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주민소환제의 문턱을 낮추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투표결과 확정 기준을 완화하고 전자 서명청구를 도입해 투표율을 올리자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의 명확한 사유는 여전히 빠져 있다.

주민소환제의 올바른 '사용설명서'나 '모범사례'도 없이 활성화에 나섰다가 자칫 지역사회 갈등과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커다란 사회적 비용만 지불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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