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이한형 기자
'박사' 조주빈(25)과 그를 추종했던 일당들이 항소심에서 적게는 징역 7년 많게는 징역 42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내내 각자 범행의 강제성을 부인하거나 수사의 위법성을 부각하며 법적 책임을 덜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이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9부(문광섭 부장판사)는 1일 범죄집단조직 등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의 항소심에서 징역 42년을 선고했다. 공범으로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 거제시청 공무원 천모씨와 전직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는 각각 징역 13년, 조씨에게 가상화폐를 지급한 임모씨와 장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이들 중 유일한 미성년자인 '태평양' 이모(17)군도 마찬가지로 1심과 같은 장기 10년‧단기 5년형이 선고됐다. 소년법은 미성년자에게 2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때는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씨와 '박사방' 주요 구성원들이 지난해 4월 재판에 넘겨진 후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보인 태도는 대체로 '반성 아닌 반성'으로 요약된다.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유포했다는 물적 증거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범행에 이른 경위나 범행의 정도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과장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조씨의 경우 일부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 혐의에 대해 피해자에게 돈을 주겠다고 속이고 성적 행위를 하고 이를 촬영 및 제작했을 뿐 협박은 아니라고 부인해왔다. 약속된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주장으로 성착취 범행의 강제성을 희석하면서 더 나아가 일부 책임은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논리로 해석됐다.
그는 지난 5월 항소심 결심에서도 "최초 피해자를 속여서 촬영물을 받아냈지만 이후에는 유포하겠다고 협박해서 점점 더 높은 수위 협박 후 강간까지 했다는 게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인데, 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피해자와의 연락 기간이 만 하루도 안 되는데 협박을 해서는 연락을 구조적으로 이어갈 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씨 주장과 달리 1심 법정의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피해자는 이미 신상 정보와 신체 노출 사진을 가진 피고인(조주빈)에게 협박 받는 상태였고 이후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공범 한모씨와 유사 성행위를 계속하며 동영상 및 사진이 촬영됐고 이후 신상유포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고인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조씨의 책임을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반성 없는 태도'로 비춰 재판부가 형을 정하는 데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목을 콕 집어 언급하며 "범행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것을 인정하는 한편, 피해자들을 속였을 뿐 협박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는 등 범행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뉘우치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물론, 함께 기소된 박사방 구성원들이 공통되게 부인한 '범죄집단'도 항소심에서 다시 한번 인정됐다. 조씨는 구성원들 대부분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는 이유로, 다른 구성원들은 조씨가 혼자서 박사방을 운영했다는 논리를 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박사방'이 법률상 범죄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근거를 하나하나 들며 기각했다.
법률상 범죄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목표한 범행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고 △일정 숫자 이상의 구성원이 있어야 하며 △조직 내 일정한 체계 또는 구조가 존재해야 한다.
이를 언급하며 재판부는 "이들이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것이 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목적으로 모였다"며 "구성원들이 조주빈을 도와 개인정보를 조회하고 성착취 영상 제작 명령을 이행하고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며 박사방이 범죄집단에 해당하는 근거를 차례로 설명했다.
범행 자체 외에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적법성을 두고서도 공방이 있었지만 사실관계 판단에 큰 영향을 줄만한 것은 아닌 것으로 다시 한번 판단됐다. 이는 N번방 중 하나인 '시민의회방'에 참여한 공범 천모씨 측의 주장으로 경찰이 1차 압수수색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발부 받았고 그 당시 압수 대상 전자정보의 상세목록을 교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재판부는 이중 경찰이 천씨에게 상세한 목록을 교부하지 않은 점은 일부 부적절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위법의 정도가 경미하고 적법절차 준수 절차를 실질적으로 침해한 수준은 아니었고, 더 나아가 이러한 증거능력을 피고인 주장의 이익을 들어 배제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사법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궁극적으로 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주빈과 박사방 구성원 모두 "반성한다"는 형식적인 책임 인정과 동시에 각자 형을 낮추고자 서로에게, 때로는 피해자나 수사기관에게 책임 소지를 돌렸지만 1심에 이어 마지막 사실심인 항소심을 거쳐 대부분 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들로 정리됐다. 다만 조씨를 비롯해 피고인들이 이번 항소심 판결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검찰도 구형한 형량에 합당한 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어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