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그 쪽이 서운할 듯" 임성근 당부에 4시간 뒤 바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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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명예훼손' 주심 판사가 증언한 '재판부 합의'
행정처→형사 수석→재판장→주심 거쳐 스며든 '윗선 의중'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1.5.25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 中
검사 "사법행정 사무라는 이유로 증인 자격을 취득한 후 선서하면 증언의무가 생깁니다. 증언의무를 면제하기 위해서는 거부사유가 소명돼야 하는데 (재판부 내) 합의는 증언거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은 공무상 비밀을 엄수할 의무를 가집니다. (합의가 증언거부 사유가 된다면) 이 공무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증언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 되는데 형사실무와도 맞지 않는데다 증언 거부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증인신문이 시작된 후 합의에 관한 사안이라고 증언 거부를 증인이 할 경우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검찰의 입장입니다."

재판장 "이 부분에 대한 변호인의 입장이 있습니까?"


변호인 "방금 말씀하시는 증인 자격을 갖게 된다고 하면 신문사항이 뭐가 되든 사법행정에 관한 것으로 요약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증인 "죄송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25일 서울고법 중법정에서 진행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항소심 공판에는 30년 터울의 후배 판사가 증인으로 섰습니다. '세월호 7시간' 관련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주심을 맡았던 임현준 전주지법 판사입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박종민 기자
재판장의 호명에 임현준 판사가 증인석으로 걸어오는 동안 피고인석에 앉은 임성근 전 판사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맞은 편 자신을 기소한 검사석 쪽에만 시선을 뒀습니다. 7년 전 같은 건물의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 부장판사와 일선 판사였던 두 사람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불리는 형사재판에서 각각 피고인 그리고 증인 신분이 되어 법정에서 처음 만난 순간입니다.

임성근 전 판사가 받는 혐의는 '재판개입' 혐의, 구체적으로 2015년 '세월호 7시간' 관련 칼럼 기사를 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이하 '세월호 7시간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로 하여금 특정 방향의 결론을 내도록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입니다. 그리고 당시 임성근 전 판사가 관여한 이 사건 재판의 판결문 그리고 법정에서 낭독할 판결이 요약된 구술본을 작성한 주심 판사가 바로 임현준 판사입니다.

당시 해당 사건 재판부 내에서 이뤄진 판사들 사이의 합의가 증언거부 대상이 되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그리고 재판장 사이 설왕설래가 이어지던 중 임현준 판사는 "스스로 합의에 관한 사항이라고 증언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며 모든 과정을 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21.5.25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 中
검사 "2015년 11월 18일 자로 이메일에서 '이유 변경'이라는 제목으로 가토 다쓰야에 대한 판결문 수정본을 첨부해 보냈는데 종전과 다르게 결론이 "이 사건 기사는 박근혜의 수인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 명예훼손이 된다. 그러나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 관한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로 이유가 변경됐습니다. 이 메일을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보내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됩니까?"

증인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사건이 선고기일이 한번 변경이 됐는데 아마 이때가 변경 전이었을 겁니다. 판결 선고를 얼마 안 앞두고 있던 때에 이동근 부장판사가 배석판사 방에 들어와서 '기존 판결처럼 이유가 돼 있는데 이걸 바꿔서 양쪽 모두에 대해 명예훼손은 인정되는 데 비방 목적이 없는 것으로 무죄를 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장님 그건 제가 원래 얘기하던 거잖아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별 대답을 안 하고 나가셨습니다. 요청하셨고 저로서는 그걸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2015년 11월 18일 오전 10시 13분 임성근 전 판사가 세월호 7시간 사건 재판장인 이동근 전 부장판사에게 '가토_말미(재수정판).hwp'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 한 통을 보냅니다. 약 4시간쯤 뒤인 오후 2시 29분 임 판사는 '일단 이렇게 바꾸어보았습니다'라며 '편집용-1.hwp' 파일을 첨부해 이동근 전 판사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10월 19일 이 사건 변론이 종결되고 이틀 뒤인 21일 재판부 내 합의로 정해진 판결 이유가 4시간 만에 바뀐 겁니다.

당초 합의된 판결 요지는 가토 전 지국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쓴 기사의 허위성은 인정되나 대통령의 공적 지위를 인정하면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아울러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였습니다. 그런데 변경된 판결에서는 공적 존재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되고 다만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한다는 취지로 설명돼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윤창원 기자
명예훼손죄는 ①해당 내용이 알려지며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는지 ②비방의 목적이 있는지에 대한 입증을 구성요건으로 합니다. 무죄라는 결론은 동일하지만 당초 두 요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명예훼손은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바뀐 것으로 법률적으로 '판결 이유'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임성근 전 판사의 요청 한 번에 말입니다.

이 요청을 들은 재판장 이동근 전 판사는 어디서 지시가 왔는지는 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의견을 임현준 판사에게 전달합니다. 이처럼 중요 사안의 변경을 요청하는 이유에 대해 임현준 판사는 당시는 임성근 전 판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자체를 몰랐고 이동근 전 판사의 요청 자체에도 별다른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동근 전 판사가 이날 자신이 있던 배석판사 방에 찾아와 자신에게 "명예훼손은 되는데 비방 목적은 없는 것으로 무죄를 쓰자"고 말했고 원래 이러한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가까웠기에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임 판사의 말입니다. 4시간 만에 판결문을 다시 작성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재판장과 합의하기 전 이러한 방향으로 작성해 놓았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임현준 판사는 당시 알지 못했고 자신의 뜻과 같아 그대로 수긍해 고치게 됐다고 했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 그가 고친 판결 이유는 결론적으로 당시 형사수석이었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 더 나아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행정처의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임성근 전 판사가 수정한 '세월호 7시간' 가토 사건 판결 구술본
이에 대해 본 재판부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피해자 박근혜 대통령의 공적 지위를 고려하면 이 사건 기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또한 이 사건과 관련된 제반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피해자 박근혜 대통령 등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 단락 부분에서 가토의 이 사건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의 명예가 결과적으로 훼손되었다는 점을 설시한 다음, 그렇지만 언론의 자유의 범위 내에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이후에 다음 단락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인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공적 사안에 관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 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 할 듯…)
검찰 수사를 거쳐 1심 판결문 등에서 인정된 사실에 비춰보면 임종헌 전 차장은 세월호 7시간 사건 변론이 종결된 후 그해 11월 임성근 전 판사에게 이 사건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며 유무죄야 알아서 하겠지만 △기사가 허위인 점 △가토 전 지국장의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점과 허위 기사를 작성한 점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청합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연합뉴스
이에 임성근 전 판사는 이 부탁을 이동근 전 판사에게 전달하고 이동근 전 판사는 11월 11일 판결 구술본 초안 말미를 임성근 전 판사에게 보냅니다. 윗선의 요청이 일선 재판부에 구두로 영향을 미친 것도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지만 여기서부터 더욱 노골적인 재판 관여가 시작됩니다. 임 전 판사는 이 구술본 문단 문단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에 줄을 긋고 고쳐야 할 방향까지 언급하며 '첨삭'합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기재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이라 적으며 해당 문장 전체를 빼라는 취지로 중간줄을 그어두기도 합니다. 오늘 기사에서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재판이 종결되기 전에 해당 기사에 적힌 내용이 허위로 드러나면 그 부분을 법정에서 언급하고 갔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도 고스란히 위 판결 이유 수정과 같은 경로로 전달됐는데요.


두 사안 모두 재판에 관여한 것 그 자체가 부적절하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혹은 행정처가 이 재판을 챙기며 관심을 갖은 사안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방향이 '어디'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무렵 11월 20일 법원행정처에서는 △가토의 기사는 허위지만 부득이하게 법리상 무죄가 예상됨 △보도의 목적이 공공을 위한 것으로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음 △무분별한 보도에 대한 재판부의 엄중 질책이 있을 것 등 판결 방향이 그대로 적힌 보고서가 작성되고 이를 임종헌 전 차장이 보고받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한 달 후인 같은 해 12월 17일에야 이뤄졌는데 말이죠. 그리고 실제 선고는 보고서에 적힌 예상 내용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20.2.24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1심 판결 中

이러한 피고인의 구술본 말미 수정요청, 판결 내용에 대한 언급, 선고기일에서 외교부가 선처를 요청한 공문을 보낸 것을 언급해달라는 요청 및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선고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 자체로 계속 중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재판의 절차진행에 간섭하는 재판 관여 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이다.

여기까지가 임성근 전 판사를 피고인으로 하는 '재판개입'의 대략적인 경위입니다. 법원행정처→중앙지법 형사 수석부장→재판장→배석 주심판사의 각 단계에서 어느 누구도 윗선의 지시에 이의를 할 생각이나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은 새 이에 행정처의 의중은 자연스럽게 일선 재판부의 재판과 판결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연합뉴스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다투고 있는 이들은 이 경로에서 일선 재판부에 지시를 내려보낸 상급자들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경로에 있던 판사들의 주장은 지시를 내린 사람이나 수용한 사람이나 대체로 비슷합니다. 부정한 지시가 아니었고 그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다소 의아한 점은 있어도 받아들일 만한 내용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때로는 독립적이어야 할 재판의 방향에 관여하는 내용이기도, 법치 사회에서 중대한 무게감을 갖는 판결 근거를 변경하는 내용이기도 했는데 말이죠.

이러한 점들이 부적절하다 하여 1심과 마찬가지로 이제 마무리 되어 가는 임성근 전 판사의 항소심의 유·무죄 판단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됩니다. 임성근 전 판사의 1심에서도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재판 관여'라고는 인정했지만 직권남용의 법리상 형사수석 부장이 다른 재판부의 사건에 개입할 '직권'이 없다는 법리적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시를 내려보낸 쪽이나 한 차례의 의심 없이 수긍하는 이들의 모습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은 이 재판을 지켜보는 기자만의 생각일까요? 임성근 전 판사의 1심 재판부도 이를 "재판 관여행위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로 규정한 만큼 이제 본격 막 오른 탄핵 심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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