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청문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박범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석수 감찰누설’ 관련 라디오 인터뷰中 |
진행자 "이른바 감찰내용 누설 금지를 위반했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범계 "예" 진행자 "신문기자하고 통화는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박범계 "별로 시빗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감찰관법 제가 뭐 대표 발의해서 만든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요. 거기에 말하고 있는 누설금지 조항이란 것은 지금 일반 형법상 있는 피의사실 공표죄와 같은 취지의 것입니다. 지금 그 서울중앙지검의 대변인격인 차장 검사들의 브리핑이 매주 있습니다. 소위 티타임이란 형태로 기자들과 자주 진행 중인 주요 수사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합니다. 그런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소위 십상시 사태가 있었을 때 정윤회 문건과 같이 문건 자체가 유출되는 경우에도 법원에서 무죄가 났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 그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기자와 통화내용은 이미 언론에 한 달째 이상 보도 된 내용들에 관한 것이고 오히려 핵심은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방해 받았다 라는데 저는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것은 수사거리도 되지 않고 설령 이것이 수사한다 하더라도 검찰이 매일 같이 또는 혹은 뭐 정기적으로 하는 수사브리핑 수준이기 때문에 그것은 검찰수사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2016년 8월 당시 박근혜 청와대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보낸 SNS 내용이 MBC를 통해 보도되면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이 감찰관은 조선일보 기자와 SNS를 통해 "(우병우 수석 처가가 차명 보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화성 땅은) 아무리 봐도 감찰 대상 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별감찰 활동이 19일이 만기인데, 우 수석이 계속 버티면 검찰이 조사하라고 넘기면 된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주고 받았다. 이 감찰관은 이미 특별감찰관제 도입 이후 첫 감찰 대상으로 우 수석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터였다.
보도가 나가자 여권은 총력을 기울여 이 감찰관을 비난했다. 특히 이 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누설한 것은 특별감찰관법을 위반한 위법행위라며 사법처리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대한 박 의원의 진단이 흥미롭다. 당시 박 의원은 기자들과 차장 검사들의 브리핑이 매주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검찰 수사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국정농단특검법 해설집 95페이지 |
특별검사가 처리하는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의혹을 가지고 있어 공정하게 처리됨으로써 의혹을 해소할 것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러한 의혹사건의 수사진행상황을 공표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특별검사의 수사 공정성을 국민이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중략)…특별검사라고 하여 항상 수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언제나 국민의 감시 하에 있어야 한다. 특히 특별검사의 수사에 있어서 국가권력이 비밀리에 방해를 하거나 특별검사팀원들의 신체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수사팀은 언제나 국민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행위와 방법으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방해하는지는 언제나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수사진행상황을 공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
‘촛불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 11월 17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 합의로 마련된 '최순실 특검법안(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원안대로 의결하고 이날 개의된 국회 본회의에 바로 회부했다.
역사적인 박근혜 특검법에는 흥미로운 조항이 삽입돼 있었는데 바로 ‘사건의 대국민 보고권’이었다. 박영수 특검팀이 훗날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배포한 ‘국정농단특검법 해설’은 이 조항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시 법사위 소속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두 야당이 사실상 특검을 임명토록 한 이 법안이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지만 법안은 여야 합의로 본회의 처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범계 의원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였다.
2021년 4월 6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 국무회의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 中 |
기자 "SNS에 피의사실 공표 관련해서 짧은 글 남겼는데 어떤 이유이신가요?" 박범계 장관 "오늘 특정 언론에 특정 사건과 관련된 피의사실 공표라 볼만한 그러한 보도가 되었습니다. 요 며칠 그러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관은 이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고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에는 자세한 내용을 적지 않았지만 그 내용과 형식 그리고 시점 이란 측면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검찰의 일부 수사 문화가 저는 반영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얼마 전 대검이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에 관한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달라. 그 지침에는 수사상황과 협의과정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유출하지 말아달라는 그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간밤에 이런 보도와 관련해서 대검이 이러한 보도 경위를 알고 있었는지, 서울중앙지검이 기관으로서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려 합니다" |
‘야당 국회의원’ 박범계는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 문제에 대해서 일관되게 강한 비판 기조를 이어오던 정치인이었다. 반면 정치권력을 독점한 집권당과 청와대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빌미로 박근혜 정부 당시 여권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압박하자 이를 적극 방어했고 국민의 알권리를 법제화 시킨 ‘국정농단 특검법’을 앞장서서 통과시켰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헌법적으로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 권리’가 상충하는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검찰과 기자간의 잘못된 취재관행이 문제가 됐던 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야당 의원 박범계는 권력 핵심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권리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런 점에서 4년 뒤 ‘법무부 장관’ 박범계의 논리는 당혹스럽다. 야당 의원 박범계는 “검찰의 기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브리핑은 수사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했지만 장관 박범계 밑의 검사들은 기자들과 접촉만 해도 ‘죄인’이 된다. 국정농단 특검법은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행위와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하는지는 언제나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며 국민들에 대한 정기적인 브리핑을 명문화했지만 정작 ‘촛불정부’의 검찰에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뒤바뀐 기준이 매체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된다면 정치인의 생리려니 이해라도 하련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한 매체는 아예 한명숙 수사팀에 대한 대검 감찰부 조사 '기록'을 입수했다고 당당하게 보도했지만 법무부 장관의 진상조사 지시는 없었다. ‘의원’ 박범계에게 이름을 가리고 ‘장관’ 박범계의 행적을 알려준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갑자기 얼척없는 의문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