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안나경 기자
모르는 여성을 골프 연습장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폭행해 살인에 이르게 한 남성이 범행을 저지른 지 20여년 만에 신원이 특정돼 재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망을 피했지만 현장에 남긴 유전자(DNA)에 뒤늦게 덜미가 잡힌 것이다. 해당 남성은 별도의 강도 살인 범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잔혹하게 발견된 피해자, 잡히지 않은 범인…미제 사건으로22년 전인 1999년 7월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피해자(당시 20살)는 머리와 신체 곳곳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됐다.
겉옷과 속옷이 벗겨져 있는 등 성폭행 흔적이 명확했고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발견 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피해자는 의식을 끝내 찾지 못하고 나흘 뒤인 10일 숨졌다.
해당 지역을 관할하던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건 접수 후 곧바로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피해자는 당시 상황을 진술하지 못한 채 사망했고 상황을 흐릿하게 본 일부 목격자의 진술 만으로는 범인 특정이 어려웠다. 당시는 CCTV 도입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라 동선 추적에도 애를 먹었다.
수사 결과, 피해자가 기다리던 차량과 외관이 같은 다른 차량에 실수로 탔고 이 차의 운전자와 동승자가 그를 인적이 드문 골프 연습장으로 끌고 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사건 개요는 파악했다. 하지만 끝내 범인을 특정하지는 못했고 해당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분류돼 서울지방경찰청에 넘어갔다.
황진환 기자
◇17년 만에 DNA로 특정한 피의자…알고 보니 '무기징역' 선고된 살인범
이렇게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뻔했던 이 사건 범인은 약 17년 만에 '유전자(DNA)'에 덜미를 잡힌다.
2010년 'DNA법'으로 불리는 DNA 신원확인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 시행 후 강력범죄 사건의 경우 검찰은 수형자의, 경찰은 미제사건의 DNA 정보를 각각 데이터베이스화해 정기적으로 서로 일치하는 DNA가 있는지 교차 분석해왔다.
그리고 2016년 12월 피해자의 신체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와 당시 교도소에서 수형 중이던 A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2002년 서울 곳곳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별도의 강도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형량이 확정돼 복역 중인 상태였다.
DNA 정보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고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은 2017년 초 A씨를 피의자로 정식 입건해 재수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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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증거에도 혐의 부인…시효 연장에 21년 만에 법정行
A씨는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한 혐의만 일부 인정할 뿐 피해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는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수사기록을 분석하고 주변인의 진술을 들은 결과 A씨가 범행을 주도한 것이 맞다고 보고 그해 7월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3년에 걸친 보완 수사 끝에 A씨를 지난해 11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사건이 발생한 지 21년 만이다.
1999년에 발생한 이 사건 공소시효는 원래 15년으로 2014년에 만료될 위기에 놓였었다. 하지만 DNA와 같은 죄를 증명할 과학적인 증거가 발견되면 시효를 최대 10년 연장하는 성폭력처벌법 제21조 2항이 적용된 끝에 재판에 넘겨질 수 있었다.
현재 A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공판기일에서는 당시 골프장 관계자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그는 검찰 수사 및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경찰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 일부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