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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브이]밑바닥부터 시작된 '한국 명품 장갑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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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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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전차만 있었어도...” 한국전쟁 당시 막강한 북한군의 T-34 전차를 맨몸으로 막아내던 한 국군용사의 일기장에 쓰여있던 말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북위 38도선에서는 계속 크고 작은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전면전 확대를 우려한 미국은 전차와 같은 중화기를 우리 군에 거의 공여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당시 우리 군의 기갑전력은 전차 0대, 반궤도 장갑차로 유명한 M3A1 24대, 차륜형 장갑차인 M8 그레이하운드 24대가 전부였습니다.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는 38선 부근에서 ‘아군 전차’로 홍보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T-34 전차와 ‘대전차전’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근본적으로 전차와 싸울 수 없는 차량을 ‘대전차전’에 투입했기 때문에 피해는 막심했습니다. 빈약한 장갑에 북한군 대전차 소총에도 구멍이 뻥뻥 뚫렸으며, T-34 전차 한 대를 격파한 전과 외에는 특별한 활약이 없었습니다. 최후까지 생존한 마지막 1대도 흥남 철수 때 수송선의 피난민 수용 공간 확보를 위해 부두에서 그냥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1967년에는 한국군에 최초로 무한궤도식 장갑차가 도입됩니다. 이때까지도 우리 군은 한국전쟁 때 쓰던 반궤도식 M3A1과 차륜형 M8 그레이하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베트남에 파병된 부대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은 당시 최신 장갑차였던 ‘M113’ 86대를 인도 했습니다. 파병 부대 중 하나였던 ‘맹호부대’가 M113 장갑차를 우리 군 최초로 실전에서 사용했습니다.

이후 주한민국 제 7사단이 철수하며 보유하고 있던 M113 장갑차 273대가 인도됐는데요. 이때 M113계열인 M125 81mm 박격포 탑재 장갑차, M106 4.1인치 박격포 탑재 장갑차, M577 지휘용 장갑차, M546 탄약운반장갑차, M578 구난 장갑차 등이 속속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1968년 북한의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70년대 후반까지 북한의 위협을 겪은 우리 군은 새로운 장갑차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70년대 후반 이탈리아 ‘FIAT’사의 FIAT6614 차륜형 장갑차를 도입해 면허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제식명 ‘KM-900’을 부여해 498대를 생산했는데요. 당시 뛰어난 기동성을 보였지만 방호력이 떨어졌고, 생산기술 부족과 분산배치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양산이 중단 됐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앞서 미군에게 공여받았던 M113 장갑차마저 도태되면서 대체 장갑차 개발이 시급해 졌습니다. 정부는 국내 순수 개발로 가닥을 잡았고, 당시 대우중공업과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하는 ‘두꺼비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M113의 개발사인 FMC(Food Machinery Corporation)는 M113의 가격인하를 제시했지만, 정부는 국내 순수 개발을 고집했고, 그 결과 최초의 국산 보병전투차인 K-200이 탄생했습니다.

K-200은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됐으며 단종될 때까지 총 2500대 이상 양산되면서 본격적인 국군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K-200 장갑차를 개발한 대우중공업은 당시 2000가지의 문제점을 찾아내 고쳐나가겠다는 의지로 만들었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개발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힘들게 제작한 K-200은 험한 야지에서의 운행은 물론이며, 양호한 노면에서도 고속주행이 가능하고 우수한 방호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반도 지형에 많은 깊은 강이나 호수를 도하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습니다. 놀라운 것은 항공수송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장갑차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한국형 보병전투차(IFV)로 개발됐지만, 포탑을 갖추지 못해 보병수송장갑차(AFV)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예산 부족 탓에 30mm 기관포를 장착은 실패했고, 대신에 총안구를 설치해 보병이 내리지 않고 전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포탑이 없던 것 외에는 나머지 성능이 이전에 운용하던 M113을 전부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군의 핵심전력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특히 말레이시아에 수출됐던 K-200 장갑차들은 실제 교전에서 우수한 기동성과 12.7mm의 중기관총탄을 막아내는 방어력을 보여줘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K-200의 성공에 힘입은 국군은 보병수송장갑차를 넘어서 보병전투장갑차의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신형 장갑차의 개발보다는 K-200 장갑차에 중구경 무기체계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업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IMF 사태’를 겹치며 K-200의 설계를 담당하는 대우중공업이 흔들리자 이 계획은 전면 무산됐습니다.

결국, 처음 계획했던 새로운 보병전투장갑차를 개발하게 됐고,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과 러시아와의 ‘불곰사업’을 통해 얻은 BMP-3 장갑차의 기술을 합쳐 ‘K-21’이라고 불리는 장갑차를 제작하게 됩니다.

K-21은 전반적으로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보다 우수한 스펙을 갖고 있는데요. 우수한 사격통제 시스템 덕분에 “헬기 잡는 장갑차”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맺힌 한 때문이었는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K40 40mm 주포를 장착해 최대 220mm의 강철판까지 관통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70년대 후반 차륜형 장갑차 개발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세계적인 수준의 차륜형 장갑차인 K808 장갑차를 완성해냈습니다. 차륜형 장갑차는 정비도 쉽고 가격도 무한궤도 차랑의 절반 정도로 저렴하며, 기동성이 좋고 궤도형 차량보다 가벼워 같은 양의 연료로 더 빠르게 멀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자체 도하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 항공수송도 가능해 유사시 적진에 빠른 투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K808은 420마력 국산 상용 디젤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시속은 100KM에 달하는데요. 야전에서 무한궤도 차량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진다 평가받았던 차륜형 장갑차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해 냈습니다.

60%의 종경사 및 30% 횡경사 등판력과 함께 폭 1.5m의 참호를 통과할 수 있으며, 런플랫 타이어를 장착해 파손 시에도 48km의 속도로 1시간 동안 운행이 가능합니다. 또한 1.2m의 하천 도섭이 가능하며 장착된 수상추진 장치를 활용하면 8km의 속도로 호수 및 강을 도하할 수 있습니다.

화력은 K4 고속유탄 기관총(40mm)과 K6 기관총(12.7mm)을 장착해 보병들을 지원합니다. 거기에 무한궤도 차량보다 월등한 승차감을 자랑하며, 혹서기 혹한기를 대비해 에어콘과 히터를 장착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1861년 미국 남북전쟁 수준이다”였습니다. 소총하나 만들지 못해 미국에게 무기를 받아가며 싸웠던 한국이 이제는 자체개발한 장갑차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미 성공적으로 수출이 완료된 K-200을 비롯, 오스트레일리아 수출을 겨냥한 장갑차 K-21의 파생형 ‘레드백’은 무기의 명가 독일을 압도하고 있고, 미국의 브래들리 장갑차 교체 사업의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명품 장갑차’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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