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로부터 금품을 받고 내부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환경부 공무원에 대해 앞서 무죄로 판결된 뇌물수수 일부를 '유죄'로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환경부는 즉각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참위는 4일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환경부 공무원이 가해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환경부가 아직까지도 공식 사과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이 범죄가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특별법이 제정되고 2018년 사참위가 활동을 한 시기와 겹침을 주목한다"며 지금이라도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 의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정보유출 혐의로 기소된 환경부 서기관 A씨의 상고심에서 수뢰후부정처사 혐의를 일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수뢰후부정처사'는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부정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혐의로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 뇌물수수(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돼있다.
환경부 내 가습기살균제 대응 TF에서 근무한 A씨는 지난 2017~2019년 애경산업으로부터 2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네받고 이들에게 정부 자료를 넘겨준 혐의를 받았다. 유출자료에는 가습기살균제 건강영향평가 결과보고서,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 및 피해자들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SK케미칼·애경 前대표를 비롯한 모든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한형 기자
원심 재판부는 A씨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사실로 보고 수뢰후부정처사죄를 적용했지만, 마지막 2건의 뇌물수수는 무죄로 보고 단순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개월에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은 "단일한 범죄 목적 아래 일련의 뇌물수수 행위와 부정행위가 있고, 피해법익도 같다면 마지막 뇌물수수 행위도 이전의 뇌물수수와 함께 수뢰후부정처사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사참위는 "이번 판결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환경부가 참사 가해자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피해질환 확대 지연, 과다한 피해 인정기간 등 참사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사참위는 그동안 환경부 등의 진상규명과 실태조사를 근거로 제도개선 권고 등 일부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이 끝났고, 피해지원이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에 사참위의 가습가살균제 관련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며 "더 나아가 최근 사참위 개정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해지원과 제도 개선 등에 대해서도 대통령령이 마련되지 않았단 이유로 사참위 조사를 위한 자료제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 애경산업·SK케미칼 등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대상인 환경부가 사참위의 조사권한 축소에 동분서주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기관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명심하고, 사참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며, 피해지원과 제도 개선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