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신뢰받던 당대표가 취임 석달여 만에 소속 국회의원을 성추행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구성원 전체가 실의에 빠졌다.
21대 총선에서 절망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뒤 차근차근 준비하던 '날갯짓'도 당분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안팎에선 '해체론'까지 거론된다.
◇'탈당 러시'에 논평도 올스톱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은 배복주 부대표와 정호진 대변인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철 당대표 성추행 사건 관련 대표단회의 결정사항을 발표를 마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
"많이들 놀랐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참담한 심정입니다"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에 관한 당내 반응을 묻자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5~6초간 뜸을 들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밝혔다. 25일 오전 당 대표단 회의 직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였다.
정의당은 젠더 이슈, 특히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 같은 권력형 성범죄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댔던 터라 타격이 크다. 온라인 당원 게시판에는 김 대표를 향한 성토와 탈당 선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은 이밖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대표단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했고 그동안 원내 쟁점은 물론 노동, 인권, 환경 등 전방위적 영역을 다루던 대변인단 논평도 '올스톱' 됐다.
양측 당사자와 정의당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김 대표는 지난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서 같은 당 장혜영 의원과 식사한 뒤 차량을 기다리던 중 성추행을 저질렀다.
김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함으로써 명백한 성추행의 가해를 저질렀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사건 직후 장 의원은 항의했고, 김 대표는 사과했다. 정의당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출신 배복주 부대표 비공개 조사 결과를 근거로 김 대표를 직위에서 해제했다.
◇지지율 5%에 핵폭탄급 헛발질까지
정의당 김종철 대표. 윤창원 기자
이로써 김 대표는 향후에도 정치적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 대표는 1999년 정계에 입문한 뒤 노회찬·윤소하 전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맡는 등 실무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동안 서울시장, 국회의원(서울 동작을, 비례대표)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다 지난해 전당대회로 당에 간판에 섰지만 당분간 정계에 발을 들이기 어렵게 됐다.
김 대표에게 '포스트 심상정', '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던 정의당 또한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정의당은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 5석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의석수로 따지면 20대와 같은 6석이었지만 20석을 확보해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는 당초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창당 8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선명한 비판을 내지 못해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듣고도 거대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전략에 순진하게 끌려간 결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후 김 대표 중심 리더십 재편과 당 차원에서 사활을 걸었던 중대재해법 통과로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했으나 결국 성추행이라는 핵폭탄급 헛발질에 존폐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그나마 총선 때 정당 득표율이 10%에 가까웠지만 최근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5%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정의당은 당규에 따라 김윤기 부대표에게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김종철 대표 잔여 임기가 상당했던 터라 보궐선거를 준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