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의 사진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정인이' 양부모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요."아동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숨진 '정인이' 양부모의 첫 공판이 열린 13일, 대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유치원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박화경(38·여)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앞서 입양을 한 전국입양가족연대 오창화 대표가 출연한 방송을 보면서 '셋째'를 키워보기로 마음먹은 '예비 양부모'다.
"주로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관계가 많다 보니 피로 맺어진 관계 외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가 돼버린 게 우리나라 실정이더라고요. 저도 어렸을 때 교회나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고, 나누고 사는 게 맞겠다 싶었죠."'남자·여자아이 구분치 않고, 주시는 대로 양육해보겠다'며 대한사회복지회의 문을 두드린 박씨는 지난해 10월 사망한 '정인이'의 비극에 새삼 관심이 쏠리면서 요즘 의도치 않은 이야기들을 듣는다고 고백했다.
"친언니한테 얼마 전 전화가 왔어요. '정인이 사건 봤지?', '(입양 후) 아이가 혹시라도 다쳐오면 어떻게 할 거냐', '네 몸도 사려야 하고 조금 더 고민해보는 게 어떻겠냐' 등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입양을 고민하는 사람도 이미 '잠재적 아동학대자'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같은 시각은 실제 '양자'를 대하는 대다수 입양부모들의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입양을 하면 오히려 (친자식보다) 더 조심스럽죠. 보통 입양을 하게 되면 아이가 다치기만 해도 혹시 남들이 그렇게(학대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친아이는 바깥에서 혼내도 입양아는 그렇게 잘 하지 못해요. 저도 공개입양을 결심했는데, 나중에 아이가 제게 혼나게 돼도 '친부모가 아니라서 날 더 혼낼까' 같은 생각은 안 하게 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내가 뭔가를 해 준다'는 마음으로 입양을 맘먹지 않는다. 보이는 건 잠깐이고, 집에서 생활하며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 24시간, 보이지 않는 게 훨씬 많다"며 "(양부모들은) 잠깐 놀아주고 '끝'이 아니라 이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겠단 마음으로 입양을 한다. 뱃속에 아기가 생기면 하는 생각과 같이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일념뿐이고, 그 하나로 힘든 것도 이겨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입양 이후 상당기간을 아이들과 함께해온 양부모들은 "입양이나 출산이나 다르지 않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둘째 딸 '예나'(現 생후 30개월)를 생후 7개월 당시 입양한 이현수씨 가정.
40대 중반에 태어난 지 7개월 된 '예나'(現 생후 30개월)를 둘째로 맞이한 이현수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친자식하고 같냐', '내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얼마나 힘드냐' 등인데 이런 말 들으면 저는 너무 화가 난다. 정말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나가 오고 나서 저희 가정은 너무 행복해졌고, 계속 웃을 수 있게 됐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아이가 결혼하는 것까지 다 봐야 한다는 생각에 더 잘 챙겨먹고 운동도 하게 됐다. 예나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복지사 분들이 말씀하시는 애로사항 중 하나가 (입양아로) '이 아이다' 싶은 느낌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기를 데리고 와 키우다 보면 '내 새끼'란 걸 알게 된다. 아이는 기르는 정"이라며 "배 아파 아이를 낳을 때 아이 성격이나 성향을 (부모가) 정할 수 없고, 아이가 100% 엄마·아빠를 닮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입양하는 건 낳는 것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예나를 입양하기까지 꼬박 1년을 고심했다. 현재 고1인 첫딸 '한나'가 어려서부터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라 시험관 시술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했을 뿐 아니라 "아기도 별로 안 좋아하고, 조카들도 예쁜 줄 모르던 사람"인 자신이 입양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2018년 초부터 연말까지 '입양톡 사랑톡 톡톡' 등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을 통해 입양에 대한 정보를 소화하고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씨는 "무조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데려온다'는 게 아니라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생각했다"며 "아이를 9~10개월 임신해 낳는 것도 쉬운 과정은 아닌데 그만큼의 노력도 안하고 아이를 얻으려 하면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친자인 둘째를 제외한 세 자녀를 각각 23세(現 32세)·생후 6개월(現 20세)·생후 4개월(現 17세)일 때 입양한 김인옥씨 가정.
성인이 다 된 '첫째'를 입양한 김인옥(53·여)씨 가정도 있다. 남편이 목회자인 김씨는 친아들인 둘째(現 24세)를 제외한 세 자녀를 각각 23세(現 32세)·생후 6개월(現 20세)·생후 4개월(現 17세)일 때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미 두 자녀를 입양해 키우고 있던 김씨에게도 성인입양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김씨는 "이미 장성해 자아와 주관, 개념이 생긴 성인을 일반 가정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서로 살아온 세계가 다르다보니 입양을 한 이후에도 고비고비를 많이 넘었다"고 말했다.
김씨와 첫째 아들은 교회에서 만났다. 신입생으로 교회를 찾아온 아들은 졸업을 앞두고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스승과 제자, 목회자와 성도로 3년 정도를 알고 지내며 서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
김씨는 아동학대에 대한 제도 개선은 필요한 점이라고 짚으면서도 정인이 사건이 '양부모'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일반화하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저희 셋째를 공개입양한 지 이제 20년이 다 돼가요. 연예인 중에서는 신애라씨가 공개입양을 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인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입양부모들을 통틀어 '돈 때문에 입양한 것 아니냐', '주택청약 받으려고 그런 것 아니냐'하고 함부로 말하는 댓글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김씨는 "아동학대에서 시스템적인 부분이 미흡했다면 현장에서 잘 돌아가도록 보완해야 하는게 맞다"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입양특례법 강화만 외치는 것은 능사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며 "좋을 때는 입양이 알려지지 못하고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주목을 받게 된 점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이현수씨 또한 '정인이 사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다만, 사건의 본질은 '아동학대'임에도 부수적 요소인 가정의 특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데 우려를 표했다.
이씨는 "'정인이 사건'이 터졌을 때 (정인이의) 웃는 얼굴 사진, 막판에 아이 몸에 멍든 걸 보고 사나흘 동안 잠을 못 잤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은 도저히 볼 수가 없더라"며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아동학대'"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저로 인해 입양을 진행 중이던 한 언니도 주변에서 '이렇게 시끄러운데, 꼭 해야겠냐'고 만류한다 하더라"며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아이의 상태가 분명히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그냥 두고 올 수가 있나. 사건이 접수되면 (피해아동과 부모를) 무조건 분리시키는 등 사후처리를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궁극적으로 '정인이 사건'으로 인한 일각의 편견이 가정을 찾고 있는 아동들에게 피해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입양 전도사'를 자처해온 김씨는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큰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마음일 것"이라며 "이러한 사건이 커지면 한 생명이 가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없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