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
국회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 본회의를 열고 민생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최근 전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일명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한 법안도 처리한다.
◇산업현장 안타까운 사망자 없애자…처벌대상과 수위는 후퇴지난해 정기국회에 이어 올해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가장 많이 머리를 맞댄 법안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다.
중대재해에 대한 정의와 처벌대상, 처벌수위 등을 놓고 노동계와 재계의 첨예한 입장을 청취해온 정치권은 법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적기 입법을 택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인이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윤창원 기자
내년부터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조치가 미흡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국회 법사위는 7일 법안소위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8일 오전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되고, 오후에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법안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나 책임자는 '징역 1년 이상, 벌금 10억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된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여러 명이 크게 다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형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법인은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각각 처해지도록 했다.
하지만 중대재해 사망자 발생시 경영책임자 등을 최소 징역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 엄한 처벌로 산업현장의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는 당초 입법 취지는 재계의 기업경영 현실론 앞에 대폭 완화됐다.
5인 미만 사업장도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재해가 아닌 대형참사인 '중대시민재해'도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동일한 수위로 처벌받지만, 처벌 대상에서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업소 등은 제외됐다. 학교시설과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도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여기에 사업주가 '위험 방지' 의무를 5년새 세 차례 위반했거나, 증거 인멸 혐의로 수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을 때 사업주의 책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하자는 일명 '인과 추정' 조항도 삭제했다. 과잉처벌 논란으로 공무원 처벌 특례규정도 빠졌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중대재해법은 공포된 지 1년 뒤 시행되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후로 적용이 유예됐다.
정의당은 해당 법안이 당초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있어 이날 본회의 불참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국 사업체 중 5인 미만 기업이 79.8%, 50인 미만이 98.8%를 차지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기업측 우려만 반영한 '누더기 중대재해법'으로 전락했다는 입장이다.
◇늦었지만 이제야 내놓는 '정인이법'…아동학대 막을 수 있을까'정인이 사건'의 되풀이를 막기 위한 법들도 소위를 통과했다.
이날 법안소위에선 아동학대처벌법 18건을 병합심사했다.
아동학대 신고 즉시 조사를 의무화하고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현장조사를 할 때 출입 가능한 장소를 확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피해아동의 즉각 분리 등 응급조치를 할 때 가해자의 주거지나 자동차 등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도 담았다.
다만 가해자의 법정형을 상향하는 법안은 빠졌다.
지난 4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법사위 간사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처벌 강화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오히려 아동학대 범죄를 은폐할 수 있고 법원 심리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을 인정하는 조항을 삭제해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도 이날 소위 문턱을 넘었다.
현행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이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택배상자 분류작업은 회사 고유업무?
살인적 노동강도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지난달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일명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도 이날 본회의에 오른다.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해당 법안은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 위탁계약 갱신청구권을 6년간 보장해 고용불안을 덜어내고, 표준계약서 작성 및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민생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함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꼽기도 했다.
다만 해당 법안으로 택배노동자의 노동강도가 현저히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택배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노동 악화 주범으로 꼽는 일명 '까대기', 택배상자 분류작업을 택배회사의 고유 업무로 볼지, 아니면 택배노동자의 업무 범주에 포함시킬지가 해당 법안에 명확히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분류작업이 택배사의 책임'이라는 합의가 도출됐지만 법률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
이에 따라 택배회사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택배노동자들에게 분류작업을 지시할 경우, 피고용인인 노동자들 입장에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 '과로사' 정국은 끝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15일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회의 때 '분류작업은 택사사의 업무'라는 데 합의했지만, 같은 달 29일 택배사 대표로 참여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본회의에 오르는 생활물류서비스법은 택배서비스 종사자를 '화물의 집화,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했지만 '집화, 배송 등'에 분류작업이 포함되는 지를 두고 현장에서는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