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요양원인 크라운 하이츠 센터 직원이 22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4억회분(화이자 2억회분, 모더나 2억회분)을 23일(현지시간) 확보하게 됐다. 총 2억 명이 맞을 수 있는 물량이다.
미국의 인구가 3억 2천만 명이고, 16세(모더나는 18세) 미만은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사실상 인구 대비 필요 이상의 백신을 확보한 셈이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남는 백신의 경우는 세계 각국에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모처럼 세계의 지도 국가다운 풍모를 보이고 있다.
통상 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을 10개월만에 마치고 전국민 백신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미국의 '백신 신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백신 개발만큼은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2020년말까지 3억 개의 코로나 백신을 보급하겠다는 이른바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지난 5월에 하달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의 말은 허풍처럼 들렸다.
그러나 모더나에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화이자에는 19억 5천만 달러(2조 원)의 선매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금지원과 민관협력, 관료주의 타파로 '초고속 작전'을 성공시켰다.
이 때문에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사인 '아틀랜틱'도 지난 14일 정부 지원이 백신 개발 신기록 달성을 가능케 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역시 트럼프의 공을 인정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21일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자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워프 스피드 작전'을 순조롭게 실행에 옮기는 등 어느 정도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백신 보급이 실현되자 비로소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미국이 여기까지 온 데는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올해 봄 코로나19가 들불처럼 퍼지자 3T(test, trace, treat)로 불린 우리나라 방역(K방역) 체제를 모델 삼아 대응에 나섰다.
미국 조야에서 코로나19 대응은 한국처럼 하면 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을 때다.
몇몇 주(州) 정부들은 한국과의 인연을 활용해 우리기업들로부터 진단 장비를 발 빠르게 구매해 코로나 '불'을 끄기도 했다.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의 경우는 미국산 장비 대신 한국산 진단 키트 50만 개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지역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음에도 최근 "한국에 감사하다"며 100만 개 추가 구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관계자들이 지난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단키트 구매분을 전달받고 있다. (사진=래리 호건 미 메릴랜드 주지사 트위터 캡처/자료사진)
우리 정부 역시 지난 4월 15일 국가 차원에서 60만 개의 진단 키트를 미국 정부에 가장 먼저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국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때문이기도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당시 '한미동맹은 공고하다'는 징표로 해석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 역시 "미국인을 지원해줘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미국은 그로부터 2달 만에 세계 제1의 코로나19 '진단 국가'가 됐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보낸 수백만 개의 진단 키트는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마중물이 됐다.
그리고는 8개월이 흘렀다.
우리정부가 미국정부에 진단키트를 실어보낸지 정확히 8개월이 되던 12월 15일 미국에서 첫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백신 개발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백신을 아직 만들지 못해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다.
우리 정부는 민간 회사들과 함께 백신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행히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 정부가 화이자 및 얀센과 백신 구매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의 경우 내년 3분기에 수입된다고 해서 여전히 성에 안찬다는 목소리가 많다.
우리 정부는 화이자 백신 조기 인도를 위해 미국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의 대변자가 돼 주지 못했다.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측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은 그나마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낫기 때문에 백신이 시급하다고 보고있지 않다고 한다.
사실 지금의 미국 상황을 놓고 봐도 한국의 현재 상황은 미국에게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남한 면적과 비슷한 버지니아주에서만 이날 하루 3591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버지니아주 95개 카운티 가운데 1개 카운티인 페어팩스 카운티(인구 110만)만 놓고 봐도 이날 하루 36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엄살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미국의 현실이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K방역의 후광은 이렇게 우리의 백신 확보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화이자 백신.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