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벌써 8개월…기약 없는 장기전에 짙어지는 '코로나 블루' ②'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지치지 않게…"심리 방역 관건" (끝) |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본부장은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체 줄넘기'에 비유해 화제를 모았다. 정 본부장은 "함께 뛰는 동료를 믿고, 또 서로 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줄넘기를 이어갈 수 있다"며 '한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이 반년을 훌쩍 넘기면서,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던 '심리 방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이와 세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영향을 끼치는 코로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심리 방역에도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15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이 부분 통제돼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공원 방역대책의 경우 여의도·뚝섬·반포한강공원의 일부 밀집지역 통제는 당분간 유지되나 주차장 진입 제한(오후 9시~새벽2시)은 해제되고 공원 내 매점과 카페 운영은 정부 지침에 따라 21시 운영종료 조치가 없어진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시작은 있는데, 끝은 없는 코로나"…피해범주도 '광범위'코로나가 가진 가장 구별된 특징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피해자의 범주가 없다는 점이다.
'확진자'와 유가족이라는 직접적 피해자는 있지만, 밀접접촉자로 분류될 수 있는 직장동료를 비롯한 주변인, 정부의 방역수칙에 협조하며 고통받는 자영업자, 상시 감염 위험에 노출된 국민 등 '피해자'의 범주가 넓어질 수 있는 확장성이 다른 재난에 비해 현저히 크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느끼는 우울감 등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를 국민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정상적 스트레스 반응으로 정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는 "천안함 사태 등 국민적 슬픔을 준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다"면서도 "감염재난은 장기적,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대부분의 국민에게 경제적 파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짚었다.
아직 치료제나 백신 등 근본적 해결책이 없어 필연적으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의 발생 규모와 속도를 현재 의료시스템이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억제 전략을 펴왔지만, 실제 상황은 '유행'과 '완화'의 반복이었다. 이단 신천지, 이태원 클럽,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 등 증폭 집단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확산이 이어졌다.
확진자들의 심리 지원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핫라인'을 총괄하고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코로나가 다른 재난과 다른 건 '감염'이라는 첫번째 충격이 시작된 이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산발적인 감염양상이 지속되면서 충격이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차적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오는 사회적 고립감과 경제적 문제 등 각종 이차적 스트레스가 병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인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현진희 교수는 "힘든 시기이니만큼 우리가 왜 이런 답답함을 참고 방역에 협조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란 점을 다 같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회의가 올 때 국민들에게 이것이 나와 내 가족, 나라를 위한 적극적 방역활동이란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자꾸 보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수도권에 적용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 조정된 14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 PC방을 찾은 시민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고위험시설'로 분류돼 영업이 중단됐던 PC방은 '고위험시설'에서 제외돼 오늘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심리방역 놓치면 '혐오 감정' 전이 쉬워…물리적 방역에도 '치명타'문제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켜켜이 누적되는 스트레스 반응이 적절히 해소되지 못할 경우 '혐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쉬이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 부장은 최근 확진자·격리자에 대한 '혐오반응'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감염자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이 대상에게 잘못이 있다고 추론을 하게 된다. 심적인 억울함과 불만족감이 그대로 '조심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방역수칙을 제대로 안 지켰다' 등 확진자에게 화살로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이후, 확진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계속해서 문제가 돼왔다.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가 폐업을 하거나, 확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사례까지 나올 정도였다.
심 부장은 "사실 확진자 또한 누군가로부터 감염이 됐다는 점에서 피해자인데,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심리적인 안정감이 낮아지게 된다"며 "확진자들은 만약 직장이나 가족 내 감염일 경우 원망과 복귀 후의 걱정, 감염에 대한 우려,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을 보인다"고 전했다.
혐오와 불안이 난무하는 사회는 물리적 방역에도 '치명적'이다. 비난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방역당국에 순순히 협조하기보다는 음지로 숨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확진자를 배척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궁극적으로 '나'에게도 안전한 사회란 인식이 절실한 이유다.
확진자를 줄이고 감염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물리적 방역의 지속성을 가능케 하는 전제는 마음의 안정성인 만큼 심리방역에 대한 주목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 교수는 "사실 심리방역이 무너지면 실제 방역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심리지원은 가능한 조기에 개입하는 게 (대상자의) 회복에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지난 3월에도 대구에서 심리방역을 강조했지만 그 당시엔 물리적 방역에 급급해 큰 관심을 못 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인 만큼 개개인들이 포기하고 견뎌야 하는 부분은 가시적으로 분명한 반면, 이에 뒤따르는 성과나 보상은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도 애로점으로 꼽힌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심 부장은 "방역지침이란 게 사람을 만나도 안 되고 마스크를 써야 되는 기본 원칙부터 더 나아가면 격리를 2주 당하거나 (확진 시) 내 동선이 노출되는 등 자신의 인권이 침해되는 걸 참아야 한다"며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 권리'를 희생하는 데서 인정과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가게를 운영 못 하는 자영업자들의 불만족 등이 쌓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지난 5월 말 전국 시·도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 2차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구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 정도와 고위험 비율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고 대구시 지역 확진자는 한 자릿수 정도로 떨어진 상태였음에도 신천지 유행으로 겪은 '내상'이 깊게 남아있다는 증거다.
현 교수는 "트라우마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이 이를 재경험하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며 "이 같은 실태조사를 한 이유도 이후 심리지원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적시'에 이뤄져야 하는 심리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일상 유지하며 할 수 있는 일 찾기"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8개월이 흐른 지금, 전반적인 심리 건강을 다시 한번 재정비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마인드 컨트롤이 권장됐다.
심 부장은 "초기에 우한 교민, 이탈리아 유학생 같은 분들을 상담하면 졸업계획 등이 없어져 '인생의 계획이 다 뒤바뀌었다'는 표현을 많이들 했다"며 "멀리 내다보았자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꾸 짐작하려 하는 시도조차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 '발밑을 내려다보는 데 집중하자'고 상담할 때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상적인 루틴(routine)'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해법으로 꼽혔다. 감염 우려를 잊기 위해서라도 수면과 기상 시간 등 일상생활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 교수는 "계속 집에 있다 보면 늦잠을 자고 밥도 거르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규칙적 식사, 정해진 시간에 자고 깨기가 중요하다"며 "또 마음건강과 신체적 움직임은 연결돼 있어 몸을 의도적으로 움직여 산책하고 가벼운 스트레칭하기, 집안의 가벼운 소일거리를 하다 보면 기분이 전환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심 부장 또한 "내가 예전에 하던 것 중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도리어 바빠서 못했던 일 중 할 수 있는 일도 있게 마련"이라며 "스킨 케어, 염색, 수염 기르기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평상시 고마웠던 사람에게 '감사 편지' 쓰기, 단골 가게에 디파짓(Deposit·예금) 해두기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의외로 많다"고 거들었다.
지난 5월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 공동 제작한 '생활 속 거리두기와 함께하는 마음건강지침'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음건강지침에는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것 △자부심과 희망을 가질 것 △필요할 경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 △도움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 것 등이 명시돼있다.
나아가 이른바 언론과 지방자치단체장, 인플루언서(influencer) 등이 계속해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교수는 "내가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며 긍정적 활동을 늘리고 규칙적 루틴을 잘 해내면 도움이 된다는 걸 반복적으로 누군가 알려줘야 한다"며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많은 곳에서 이런 긍정적인 해결 방식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도 "지자체 단체장 등 영향력 있는 이들이 코로나로 힘들고 외롭다면 도움을 요청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