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선별진료소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된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세계적 유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교적 국내 상황은 안정적이지만 가을 재유행은 필연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재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연말까지 호흡기전담클리닉 500개 설치를 공언했지만, 의료현장의 반응이 냉담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큰 상황이다.
◇ 재유행 대비 핵심 의료체계 '호흡기전담클리닉'코로나19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른 감염병과 구별할만한 특이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장마철에 유행하는 수인성 감염병인 장티푸스, 노로바이러스감염증 등은 초기 증상으로 복통과 설사, 발열 등이 나타나는데, 코로나19의 주요 증상도 발열이고 확진자들이 복통을 호소한다는 보고도 꾸준하다.
가을이 되면 계절성 인플루엔자도 함께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독감과 코로나19는 초기 증상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는 "어떤 감염병에 가깝겠다고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한 명의 환자가 여러 감염병에 동시에 걸릴 수도 있다"며 "코로나19 유행상황에서는 코로나19가 맞는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또 날씨가 추워지면 감기 환자와 같은 호흡기 환자도 급증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 감기를 의심해 집근처 의료기관을 찾았다가 확진자로 판명되면 해당 기관은 폐쇄되고, 주변 병·의원의 업무가 가중되는 등 의료체계의 과부하는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코로나19와의 연관성이 적은 일반 감기 환자가 코로나19를 의심해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오히려 노출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심한 발열·호흡기 증상이 나타났는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따라서 환자들이 근처 병원이나 선별진료소를 찾기 전에 코로나19와의 연관성을 파악해 의심환자는 선별진료소로 보내고, 나머지 환자들은 그들의 증상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호흡기전담클리닉이다. 발열·호흡기 증상이 나타난 환자에게 호흡기전담클리닉과 전화상담을 하게 만들고, 의료진이 14일 이내 확진자 접촉 여부나 국내 집단발생과의 연관성 등을 파악해 의심환자 여부를 가려낸 뒤, 연관성이 적은 환자만 사전예약을 통해 진료하는 것이다.
만약, 진료과정 중 의료진이 코로나19를 의심하게 된다면, 별도의 공간에서 검체를 채취하거나 선별진료소를 안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체계가 갖춰지면 일반 병·의원의 코로나19 노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고, 선별진료소의 업무 부담도 낮아지고, 코로나19 이외의 호흡기환자들이 제때에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호흡기전담클리닉 설치에 500억을 투입해 연말까지 전국 500군데에서 가동할 계획인데, 가을 재유행이 코앞이라는 점에서 준비가 매우 더디다.
일단 정부는 광역지자체별 최소 1군데 확충을 목표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겠다는 입장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윤태호 방역총괄반장은 지난 16일 "3차 추경 예산이 통과되면서 호흡기전담클리닉 설치를 위한 국고보조금 교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예산 교부가 안 돼 지자체가 바로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더 속도를 내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치료 환자 수만큼 비용 준다는데, 현장에선 "그러면 누가 참여하나"정부가 구상하는 호흡기전담클리닉은 개방형과 의료기관형, 2가지로 나뉜다. 개방형은 지자체가 보건소나 도서관 등 별도의 공간을 제공하고, 해당 장소에서 지역 의사들이 돌아가며 근무하는 방식이다.
의료기관 클리닉은 운영을 원하는 의원·병원급 의료기관에게 신청을 받아 정부가 지원금을 제공해 칸막이를 설치하는 등 호흡기환자를 별도로 진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형태다.
문제는 의료현장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대변인은 "의료기관클리닉은 병원에 1억원 씩 지원한다는 것인데,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기존 진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라 굉장한 모험이 될 수 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병원의 일부를 개조한다는 결정은 쉽사리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다른 의료인은 "1억 원이라는 지원금이 병원을 리모델링하기에도 빠듯하다"며 "정부를 믿고 호흡기전담클리닉으로 전환했을 때 방문하는 환자가 적으면 오히려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의료기관 클리닉보다는 보건소·공공기관의 공간을 활용하는 개방형클리닉 설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마저도 의료계의 환영은 받고 있지 못하다.
의사가 개방형 클리닉에 출근한 시간당 임금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돌본 환자 수만큼 진료비가 제공되는 체제기 때문이다.
의협 김대하 대변인은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찾는 환자가 많은 날에는 많은 돈을 벌고, 환자가 없으면 돈을 못 버는 체제"라며 "대부분 의사들은 본래 직장이 있기 때문에 참여를 유도하려면 대구·경북 유행 당시 의료진에게 지급했던 것처럼 환자 수에 관계 없이 시급이나 일당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갑 교수도 "공공성이 강화된 전담클리닉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운영비나 임금을 제공하는 등 공공성을 살려야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며 "2차 유행을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호흡기전담클리닉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가지고 나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