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호정, 경계에 서서 '프랑스여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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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프랑스여자' 미라 역 배우 김호정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나는 내 선을 잘 그리고 사는 걸까?"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프랑스여자'(감독 김희정)에서 미라(김호정)는 자신에게 묻는 것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묻는 것처럼 말한다. 20년 전 배우를 꿈꾸며 떠난 곳, 프랑스 파리. 그곳에서 미라는 배우의 꿈을 접고 프랑스인 쥘(알렉산드르 구안세)과 결혼해 통역가로 살아간다. 그런 미라는 '경계인'이다.

미라는 자신의 후배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했다. 그 후 오랜만에 찾은 서울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던 미라 앞에 파리로 떠나기 전, 1997년이 펼쳐진다. 이후 미라는 현재와 과거, 꿈과 현실, 기억과 환상을 넘나든다. 또렷하지 않지만 과거를, 기억을, 자신을 조금씩 더듬으며 나아간다.

현재와 과거, 꿈과 현실, 기억과 환상을 오가는 장면과 과정은 딱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 듯 나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넘나든다. 이 혼란스러운 듯 자연스러운 경계의 넘나듦 속에서 미라의 심연은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진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라 역의 배우 김호정은 "영화를 본 다음에 글로 정리한 것 같이 정말 쉽게 쫙 펼쳐져서 끝난다"며 '프랑스여자'의 매력을 극찬했다. 김호정에게서 '프랑스여자'와 미라라는 인물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로서 경계에 선 김호정, 경계인 미라를 만나다

김호정은 '프랑스여자'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좋았다. 읽는데 정말 흥미로워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며 "너무 하고 싶어서 빨리 불어 레슨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바로 알아보고 프랑스 선생님과 불어 대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어 연기를 '프랑스여자'답게 소화해내기 위해 남편 쥘 역의 배우 알렉산드르 구안세와 매일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하고, 자신의 대사를 알렉산드르에게 부탁해 녹음한 뒤 반복해서 보며 연습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인들이 싸우거나 흥분할 때 말이 빨라지는 모습이라든지, 프랑스에서 오래 생활한 미라가 평소에 어떤 옷을 입을지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찰하고 연구해 '미라'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연기한 미라라는 인물에 관해 김호정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미라처럼 자신도 무대와 스크린, 그리고 TV 사이 경계에 걸친 배우였다. 동시에 중년 여성 배우로서 어떠한 역할의 경계에 서 있는 배우였다. '경계'에 놓인 존재라는 점에서 김호정과 미라는 닮은꼴이었다.

"미라가 자기 뜻대로 안 돼서 통역사가 되고, 경계인이 되어 친구들을 지켜보는데 그게 너무나 나 같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영화와 연극을 하다가 TV 쪽으로 처음 왔던 시점이거든요. TV로 오면 내 또래 배우가 맡는 역할이 '엄마'가 많죠. 난 아직 엄마가 아닌데.(웃음)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고,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 나의 위치와 맞닥뜨린 부분이라 공감도 많이 됐죠. 그래서 그걸 잘 표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김호정의 '경험치'가 말해주는 것들

김호정은 영화감독 영은(김지영), 연극 연출가 성우(김영민)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연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배우와 연기할 때는 연기하지 말자는 게 내 목표였다"며 "미라처럼 '경계인'으로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영은과 성우, 그리고 연극배우 현아(류아벨)가 연기에 관해 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우는 나이에 따르는 삶의 경험치가 있어야 특정한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펼친다.

김호정은 알아야 연기를 한다, 나이가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는 엄청난 열정을 다 쏟아낼 수 있다. 가장 왕성하게,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는 아티스트를 보면 20대가 많다"며 "어느 순간이 지나가면 그때는 연륜으로 포장하는 거다. 인생이 그렇다. 그렇게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어떤 역할이든 다 하면서, 피가 되든 살이 되든 망하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잘 되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미라가 주는 위로, 김호정이 주는 위로

지난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한 이래 무대와 스크린을 비롯해 안방극장까지 진출한 김호정이 연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이다. 엄청난 열정을 쏟아내던 시기를 거쳐 다양한 인물,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배우가 됐다. '작가주의 감독'이 사랑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봉준호, 임권택, 신수원 감독 등 이른바 작가주의 감독들이 자신을 왜 자주 찾겠느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보니 '낯섦'이었다고 한다.

"모두에게 알려진 배우가 아니니까, 철저하게 '역할'이 주는 느낌으로 가고 싶어서 날 찾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그 인물로 들어가고, 보는 관객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성공한 거죠."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의 말마따나 연기 인생은 그렇게 왔고, 그렇게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 곳에서든 늘 역할에 꼭 들어맞는 모습으로 나타나 관객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김희정 감독이 "미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김호정밖에 없다. 프랑스 여자 같다"고 말한 이유다.

김호정은 영화를 찍은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프랑스여자'를 하며 위로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영화의 내용은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관객도 조금은 위로받기를 바랐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라는 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잖아요. 나만 인생을 이렇게 사나 했는데, 주인공이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게 나오면 나랑 똑같구나 하면서 열광하고 공감하잖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위로도 받고, 고민 등을 떨쳐낸 것도 있어요. 영화를 통해 긍정의 마음을 갖게 됐죠.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 같아요."(웃음)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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